4화 아빠와 10년 만의 마트

그 평범한 장보기 시간이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다

by 소윤담

어쩌다 보니 어느 주말,
아빠와 나는 집에 단둘이 있게 되었다.

우리 집은 주말이면 종종 마트에 장을 보러 갔다.
아빠는 매우 가정적인 사람이었고, 쇼핑하는 것도 무척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날도 자연스럽게 아빠와 둘이 마트에 장을 보러 가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빠와 단둘이 그렇게 시간을 보낸 것이 정말 오랜만이었다.

거의 10년 만이었을지도 모른다.

같은 집에 살면서도 우리는 서로를 피해 다니듯 지냈다.

대화를 거의 하지 않았고 마주치면 어색하게 지나가기 일쑤였다.


그래서였을까.

마트로 향하는 길에서 우리는 조금 데면데면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괜히 카트만 밀고 필요 없는 물건들을 집어 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어색하지만 그래도 아빠와 함께 있는 시간이라는 것이 마음 한쪽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날이 너무 평범해서 더 아프다.

그때는 몰랐다.


그 평범한 장보기 시간이 아빠와 함께한 마지막 평범한 시간이 될 줄은.

만약 그때 알았다면 나는 카트를 조금 더 천천히 밀었을 것이다.


아빠에게

쓸데없는 질문이라도 하나 더 했을 것이다.


"아빠 이거 살까?”
“아빠 요즘 뭐 재밌어?”

그런 사소한 말이라도 조금 더 했을 것이다.


그리고 마트를 나와서는
“아빠 커피 한 잔 하고 갈까?”
이 말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그때의 나는 신입사원이라는 핑계로 늘 바쁘게 살고 있었다.

회사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집에 돌아오면 지쳐 쓰러지기 바빴다.

그래서 아빠와 보내는 시간은 자꾸 뒤로 미뤄졌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이었다.

새벽 출근을 해야 해서 평소보다 조금 일찍 눈을 떴다.

방 문틈 사이로 거실이 보였다.

그리고 나는 그 장면을 보게 되었다.


아빠가 거실에 앉아 있었다.

불도 켜지지 않은 어두운 거실에서 아빠는 그릇에 물을 떠놓고
무릎을 꿇은 채 기도를 하고 있었다.


나는 순간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살면서 아빠가 그렇게 기도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아빠는 늘 강한 사람이었고 늘 가족을 지키는 사람이었다.

그런 아빠가 어두운 거실에서 혼자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낯설었다.

그리고 이상하게 너무 슬퍼 보였다.


아빠는 그때 무슨 기도를 하고 있었을까.

너무 힘들어서 이제는 그만 살고 싶다는 기도였을까.

아니면 돈 때문에 가족에게 짐이 되는 것이 두려웠던 마음이었을까


나는 문틈 사이에서 그 모습을 한참 바라보고 있었다.

심장이 이상하게 쿵쾅거렸다.

너무 놀랐고 왠지 모르게 무서웠다.

하지만 나는 거실로 나가지 못했다.

그저 조용히 문을 닫고
다시 방 안으로 들어왔다.


지금도 그 장면을 떠올리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때 내가 거실로 나갔다면 어땠을까.


“아빠, 뭐 해?”

그렇게 한마디만 했어도.

아빠의 이야기를 조금은 들을 수 있었을까.


아빠가 혼자 버티고 있던 시간을 조금은 나눌 수 있었을까.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집 안에서 힐끗힐끗 보이던 아빠의 얼굴이
조금씩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안색은 점점 안 좋아졌고

몸도 예전 같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그 사실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았다.


각자 너무 바빴고 각자의 인생이 중요하다는 이유로

가장 중요한 사람 한 명을 조금씩 놓치고 있었다.

우리 집에서가장 중요한 사람.

아빠라는 그 한 사람을.

그리고 나는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그날 새벽문을 열고 나갔더라면

아빠의 기도는 조금 달라졌을까.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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