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듦'이라는 이름의 서바이벌

그럼에도 나는 살아간다

by 카미노

[나이들면 비참하게 무서운 것들]


1. 찾을 사람이 없는 외로움

2. 내 말을 들어줄 귀가 사라졌을 때

3. 몸은 늙었는데 마음만 청춘일 때

4. 돈 없어도 괜찮다 생각했는데 현실이 잔인할 때

5. 아파도 병원비부터 걱정해야 할 때

6. 내가 있는 집이 내 집 같지 않을 때

7. 살아 있으나 존재가 희미해질 때



인생이란 참 묘한 게임이다. 어릴 때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했고, 2-30대는 영원히 이 나이로 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새 거울 속 얼굴이 낯설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문득 깨닫는다. 나이 든다는 것은 단순히 주름이 늘고 머리가 희어지는 것만이 아니라는 걸. 마치 인생이라는 서바이벌 게임에서 새로운 스테이지로 넘어가는 것 같다. 그런데 이 스테이지의 몬스터들은 좀 특별하다. 겉으로 보이지도 않고, 갑자기 등장해서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놓는다.


찾을 사람이 없는 외로움 - "안녕하세요, 택배입니다"가 가장 반가운 소리가 될 때

혼자 있는 시간은 언제나 소중하다. "나만의 시간이 필요해"라며 친구들과의 약속도 취소하고 집에서 뒹굴거렸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그 "나만의 시간"이 점점 길어진다. 처음에는 자유로움을 만끽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핸드폰 연락처를 위아래로 스크롤해봐도 마땅히 전화할 사람이 없다는 걸 깨닫는다.

가장 슬픈 건 택배 기사님이 "안녕하세요, 택배입니다"라고 말할 때가 하루 중 유일한 대화인 날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온라인 쇼핑을 자주 한다. 굳이 필요하지 않은 물건도 주문해서 택배 기사님과 30초라도 더 대화하려고 한다. "날씨가 추워졌네요"라는 평범한 인사말이 이렇게 소중할 줄 몰랐다.

죽고 못살던 친구들은 대체 어디로 갔을까? 다들 바쁘다. 그러다 보니 점점 연락이 뜸해진다. 카톡방도 점점 조용해지고, 결국 "날씨 좋네"라는 메시지 하나로 하루를 버티게 된다. 어쩌다 누군가 "어, 그러네"라고 답하면 마치 로또에 당첨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내 말을 들어줄 귀가 사라졌을 때 - 혼잣말이 일상이 되는 순간

예전에는 친구들에게 하루 있었던 일들을 신나게 떠들곤 했다. 직장에서 있었던 황당한 일, 드라마 얘기, 정치 이야기까지.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점점 줄어든다. 가족들은 "또 그 얘기야?"라며 지겨워하고, 친구들은 자기 얘기하기도 바쁘다.

그래서 요즘은 혼잣말이 늘었다. "아, 이 드라마 정말 재미있네"라고 혼자 중얼거리고, "요즘 물가가 왜 이렇게 올랐지?"라며 혼자 분노한다. 심지어 TV를 보면서 출연자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그래, 맞아. 그 사람이 범인이야"라며 추리 프로그램에 열정적으로 참여한다.

가장 웃픈 건 반려식물에게 말을 거는 것이다. "오늘 기분이 어때? 나는 좀 우울해"라며 화분에 물을 주면서 진지한 상담을 한다. 물론 화분은 대답하지 않지만, 그래도 들어주는 것 같은 착각을 하며 위로를 받는다. 이쯤 되면 반려동물 키우기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최소한 강아지는 꼬리라도 흔들어주니까.


나이는 들었는데 마음만 청춘 - 거울이 거짓말쟁이가 된 날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20대인 것 같은데,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머릿속으로는 "나도 저 아이돌 가수들처럼 춤출 수 있어!"라고 생각하면서 일어났다가 허리가 "삐끗" 소리를 낸다. 그제서야 현실을 받아들인다. 아, 내가 벌써 이 나이구나.

가장 당황스러운 건 백화점에서 쇼핑할 때다. 마음에 드는 옷을 집어 들고 거울 앞에 대보는데, 거울 속 모습이 내가 생각하는 나와 너무 다르다. "이 거울이 이상한가?"라며 다른 거울을 찾아다니지만, 모든 거울이 똑같은 이야기를 한다. 결국 "나이에 맞게 입어야지"라며 체념하고 베이지색 옷을 집어 든다.

클럽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홍대의 추억을 떠올리며 "한 번 가볼까?"라고 생각하다가 입고갈 옷이 없어고 그러다가 귀찮아서 포기한다. 대신 집에서 옛날 음악을 틀어놓고 혼자 춤을 춘다. 물론 3분도 안 돼서 숨이 차지만, 그래도 마음만큼은 20대다.


돈 없어도 괜찮다 생각했는데 현실이 잔인할 때 - 통장 잔고가 인생 잔고?

대학교 학부시절 "돈이 전부가 아니야"라며 멋있게 살았다. 취업해서는 월급이 적어도 "행복하면 되지 뭐"라며 자위했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현실은 잔인했다. 병원비는 점점 늘어나고, 생활비는 계속 올라가는데 수입은 줄어든다.

가장 충격적인 건 마트에서 장을 볼 때다. 예전에는 아무 생각 없이 담던 과일들이 이제는 "이거 꼭 사야 하나?"라며 고민하게 만든다. 계산대에서 금액을 보고 깜짝 놀라서 "잘못 계산된 거 아니에요?"라고 묻기도 한다. 물론 틀린 건 내 기억이었다.

더 서글픈 건 친구들과 만날 때다. "어디서 만날까?"라는 질문에 "근처 대패삽겹 싸고 맛있어"라고 제안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예전에는 "비싸도 맛집에서 만나자"던 내가, 이제는 "쿠폰 있는 데 가자"고 말한다. 그래도 친구들도 비슷한 처지라서 다행이다. 모두가 할인 정보에 밝아졌다.


아파도 병원비부터 걱정해야 할 때 - 몸보다 지갑이 더 아픈 현실

2-3대에는 아플일이 없었다. 요즘엔 별 생각 없이 "어디가 불편하세요?"라는 의사 선생님의 질문에 직히 이제는 머리속으로 계산기부터 두드린다. "검사받으면 얼마나 나올까?"라며 인터넷으로 병원비를 미리 검색해본다.

가장 우스운 건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이 "검사 한 번 더 해보시죠"라고 할 때다. 마음으로는 "네, 선생님"이라고 하고 싶은데, 입에서는 "꼭 필요한 검사인가요?"라는 말이 나온다. 건강보다 병원비가 먼저 떠오르는 슬픈 현실이다.

더 서글픈 건 약국에서다. 의사가 처방해준 약이 비싸면 "이거 말고 비슷한 효과의 싼 약 없나요?"라고 약사에게 묻는다. 그러면서도 "건강이 우선"이라고 자위하지만, 결국 제네릭 의약품을 선택한다. 그나마 효과가 비슷하다니까 위안을 삼는다.


내가 있는 집이 내 집 같지 않을 때 - 우리 집이 남의 집이 된 기분

어느 순간부터 이 집이 내 집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가족들이 각자 생활을 하니 너무 조용해서 오히려 불안해 진다. 예전에는 "조용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정작 조용해지니 무서울 지경이다.

가장 외로운 건 저녁 시간이다. 예전에는 애들이랑 둘러앉아 시끌벅적했던 식탁이 이제는 혼자서 먹기에 너무 크다. 그래서 요즘은 거실 소파에서 TV를 보면서 먹는다. 정식 식사보다는 간편식이 늘어났고, 설거지할 그릇도 줄었다. 효율적이긴 하지만 왠지 모르게 서글프다.

더 우스운 건 집 안에서 길을 잃을 때다. 화장실에 가려다가 다른 방으로 들어가서 "어, 여기가 어디지?"라며 당황한다. 내 집인데 내가 헤매고 있으니 참 아이러니하다.


살아 있으나 존재가 희미해질 때 - 투명인간이 된 기분

가장 무서운 건 사람들이 나를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길에서 누군가와 눈이 마주치기도 했고, 상점에서 점원이 먼저 말을 걸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는 마치 투명인간이 된 것 같다. 나 자신이 조심하는 것도 있다. 그게 편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시선이 나를 지나쳐간다. 어느 쪽도 아닌 애매한 나이가 된 것 같다.

가장 서글픈 건 가족끼리 밥먹을 때다. 예전에는 애들도 내게 의견을 물어보곤 했는데, 이제는 대화에서 자연스럽게 배제된다. 그래서 조용히 앉아서 듣기만 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어쩌다 말하면 "또 옛날 얘기 또 하시네"라는 시선이 느껴져서 입을 다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살아야한다

이 모든 두려움들이 현실이 되어도, 나는 여전히 살아간다. 왜냐하면 나이가 든다는 것은 두려운 일들과 마주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지혜를 얻는 과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살이라도 어릴 때는 몰랐던 소소한 행복들을 발견하게 된다.


택배 기사님과의 짧은 대화에서 따뜻함을 느끼고, 혼잣말을 하면서도 스스로와 친해진다. 한살한살 나이는 먹어가지만 마음만큼은 여전히 20대라는 걸 확인하며 미소 짓는다. 돈이 부족해도 진정한 친구들과 함께라면 김밥 한줄도 맛있다. 병원비가 부담스러워도 건강의 소중함을 더 깊이 깨닫는다. 집이 적막해서 외로워도, 그만큼 자유로운 공간이 생겼다. 존재가 희미해진다고 느껴도,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소중한 사람이다.


결국 나이 든다는 것은 새로운 무대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과정인 것 같다. 청춘의 반짝임은 없을지 몰라도, 나름대로의 깊이와 여유가 생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모든 과정을 유머로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는 것이 나이 듦의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어차피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웃으면서 받아들이는 것이 최고의 대처법이다. 오늘도 거울을 보며 "오, 오늘따라 멎져 보이네"라고 거짓말을 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나름의 생존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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