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내려놓아야 할 완벽주의라는 짐

나는 어떻게 내 인생을 이렇게 복잡하게 만들었나

by 카미노

[당장 내려놓아야 할 생각들]


1. 책을 읽으면 다 알아야 한다는 생각

2. 뭐든 꼭 끝을 봐야 한다는 생각

3. 모든 게 내 잘못이라는 생각

4. 내 단점을 보완해야 한다는 생각

5. 주변에 실망을 주면 안 된다는 생각

6. 투자 이상의 결과가 나와야 한다는 생각

7. 성공이 아니라면 다 쓸모없다는 생각





안녕하다, 나는 완벽주의라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지 오랜지간이 되었다. 내가 얼마나 심각한 환자인지 궁금한가? 방금 전에도 키보드 자판을 누르기 전에 "이 제목이 정말 최적의 선택일까?"라며 10분간 고민했다. 그렇다, 이 정도면 중증 환자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 완벽주의 환자들이 당장 버려야 할 독성 사고에 대해 이야기해보겠다. 혹시 읽다가 "헉, 이거 완전 내 이야기잖아"라며 식은땀이 흐른다면, 환영한다. 당신도 완벽주의 병원의 정식 입원 환자다.


책을 읽으면 다 알아야 한다는 생각

완벽주의자의 책장은 참으로 독특하다. 절반은 "언젠가는 완독할 것"이라는 희망으로 가득한 책들이고, 나머지 절반은 "이미 읽었지만 다 기억 못 하니까 다시 읽어야 할" 책들이다.

나는 한때 책을 읽을 때마다 형광펜 세 색을 준비했다. 노란색은 중요한 내용, 초록색은 아이디어, 분홍색은 명언용이었다. 책 한 권 읽고 나면 무지개 같았다. 나중에 그 책을 다시 펼쳐보면 "내가 왜 이걸 칠했지?"라는 의문과 함께 새로운 형광펜 색깔을 찾아 나서곤 했다.

가장 웃긴 건 책을 읽다가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사전을 찾아보고, 그 사전에서 또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또 찾아보고... 어느 순간 원래 읽던 책이 뭔지 까먹는 상황이었다. 마치 위키피디아를 클릭하다가 "내가 처음에 뭘 검색하려던 거였지?"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깨달았다. 책은 스펀지가 아니라 샤워기다. 모든 물을 다 흡수할 필요 없이, 필요한 만큼만 맞으면 된다. 그리고 때로는 책장을 넘기는 소음만으로도 충분한 지적 체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뭐든 꼭 끝을 봐야 한다는 생각

완벽주의자의 넷플릭스 시청 목록을 본 적 있는가? "내가 찜한 리스트"가 "이미 본 콘텐츠"의 4배는 된다. 그리고 미드를 보다가 재미없어도 "시즌8까지는 봐야지"라며 고문을 자처한다.

나는 한때 심지어 게임도 100% 달성해야 직성이 풀렸다. 숨겨진 아이템을 찾기 위해 게임 속 구석구석을 샅샅이 뒤지며 "이게 진짜 게임을 즐기는 건가?"라는 의문이 들면서도 멈출 수 없었다. 급기야 공략집까지 사서 체크리스트처럼 활용했다. 게임이 숙제가 된 순간이었다.

식당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양이 너무 많아서 배부른데도 "돈 주고 샀는데 다 먹어야지"라며 위를 혹사시켰다. 나중에는 배가 아프면서도 "역시 끝까지 해냈다"는 기묘한 성취감을 느끼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때로는 중도 하차가 현명한 선택이라는 것을. 재미없는 드라마는 1화에서 멈춰도 되고, 맛없는 음식은 남겨도 되고, 지루한 모임은 일찍 나와도 된다. 인생은 너무 짧아서 억지로 끝까지 볼 시간이 없다.


모든 게 내 잘못이라는 생각

완벽주의자는 타고난 사과 전문가다. 비가 와도 "제가 우산을 안 가져와서 죄송해요", 지하철이 늦어도 "제가 일찍 안 나와서 늦었네요"라며 온 세상의 책임을 혼자 짊어진다.

동료가 업무 실수를 해도 "내가 더 꼼꼼히 확인했어야 했는데"라며 자책하고, 친구가 늦어도 "내가 약속 장소를 잘못 정했나?"라며 되돌아본다. 심지어 식당에서 음식이 늦게 나와도 "내가 복잡한 걸 주문해서 그런가?"라고 생각할 정도다.

가장 황당했던 건, 회사에서 시스템 오류가 났는데도 "혹시 내가 어제 뭔가 잘못 건드린 게 있나요?"라고 물어본 적이다. IT팀에서 "선생님, 그건 서버 문제예요"라고 할 때까지 계속 자책했었다.

그런데 깨달았다. 내가 그렇게 대단한 존재가 아니라는 걸 말이다. 세상의 모든 일이 나로부터 시작되지도, 나로 인해 끝나지도 않는다. 때로는 그냥 운이 없거나, 타이밍이 안 맞거나, 다른 사람의 문제일 수도 있다. "내 탓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어깨가 한결 가벼워진다.


내 단점을 보완해야 한다는 생각

완벽주의자의 자기계발서 서가는 마치 종합병원 같다. 시간 관리, 대인관계, 프레젠테이션, 리더십... 내가 부족한 모든 영역의 책들이 빽빽하다. 그리고 각 책마다 "이번엔 진짜 달라질 거야"라는 메모가 붙어있다.

나는 한때 내향적인 성격을 고치려고 무진 애를 썼다. 강제로 모임에 나가고, 먼저 말을 걸어보고, 심지어 연기 수업까지 들었다. 그 결과?

더욱 지쳤을 뿐이었다. 가짜 외향성으로 포장된 진짜 내향성은 더욱 빛을 발했다.

수학을 못해서 성인이 되어서도 수학 인강을 들었다. "이번엔 진짜 이해할 거야"라며 중학교 수학부터 다시 시작했는데, 여전히 삼각함수만 나오면 머리가 하얘졌다. 그때 깨달았다. 나는 수학을 못하는 게 아니라 수학과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말이다.

운동을 못해서 헬스 PT를 받은 적이 있다. 트레이너가 "스쿼트 10회 해보세요"라고 하면 나는 각도기로 무릎이 정확히 90도가 되는지 확인하려는듯 조심스럽게 했다. 당연히 다른 사람들이 벌써 다음 동작을 배울 때 나는 여전히 첫 번째 스쿼트 자세를 교정하고 있었다.

내가 못하는 것들은 그냥 못하는 거라고 말이다. 대신 내가 잘하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수학 대신 글쓰기에, 요리 대신 맛집 찾기에 특화되었더니 훨씬 행복해졌다.


주변에 실망을 주면 안 된다는 생각

완벽주의자는 24시간 무대 위에 서 있는 배우 같다. 항상 누군가가 보고 있고, 평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기대에 못 미치면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다.

가족 모임에서 "요즘 어때?"라는 질문에 "잘 지내요"라고 답하려면 정말로 모든 게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이 조금이라도 안 풀리거나, 연애가 잘 안 되거나,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 "실망시키는 건 아닐까" 걱정부터 했다.

친구들과의 약속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다들 나 때문에 기다렸겠다"며 과도하게 사과하고, 분위기가 조금 어색해지면 "내가 재미없는 얘기를 해서 그런가"라며 자책했다.

가장 웃긴 건 SNS였다. 사진 하나 올리는 데도 "이 사진이 내 이미지에 도움이 될까?"라며 고민했다. 결국 올릴 사진이 없어서 몇 달간 SNS 활동을 중단한 적도 있다. 완벽한 일상만 공유하려다 보니 공유할 일상이 없어진 거다.

하지만 깨달았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나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을 말이다. 모두 자신의 삶에 바빠서 남의 실수나 부족함을 그렇게 오래 기억하지 않는다. 그리고 진짜 나를 아끼는 사람들은 완벽한 내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를 좋아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투자 이상의 결과가 나와야 한다는 생각

완벽주의자는 타고난 회계사다. 모든 행동에 투자 대비 수익률을 계산한다. 책을 사면 반드시 그 값어치 이상을 얻어야 하고, 강의를 들으면 즉시 실력이 늘어야 하고, 운동을 하면 바로 몸짱이 되어야 한다.

나는 한때 어학연수를 다녀온 후 "이 돈으로 영어가 이 정도밖에 안 늘었다고?"라며 스스로를 책망했다. 하루하루 영어 실력을 측정하며 투자 대비 수익률을 계산했다. 심지어 엑셀로 그래프까지 만들었다. 당연히 그 그래프는 내 기대치에 한참 못 미쳤다.

헬스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3개월 등록했으니 3개월 후에는 완전히 다른 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매일 거울 앞에서 변화를 찾으며 "아직도 똑같네"라며 실망했다. 운동이 아니라 투자 포트폴리오를 관리하는 기분이었다.

자기계발도 그랬다. 세미나를 듣고 나면 바로 인생이 달라져야 하고, 책을 읽고 나면 즉시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변화가 눈에 보이지 않으면 "돈 낭비했다"며 후회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진짜 가치 있는 것들은 복리로 작용한다는 것을 말이다. 당장 눈에 보이지 않아도 서서히 쌓여가는 경험들이 언젠가는 큰 변화로 이어진다. 그리고 때로는 투자 자체가 목적일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결과보다는 과정에서 얻는 즐거움이 더 소중할 수 있다.


성공이 아니라면 다 쓸모없다는 생각

완벽주의자에게 세상은 성공과 실패 두 가지로만 나뉜다. 1등이 아니면 꼴등이고, 완벽하지 않으면 쓸모없고, 최고가 아니면 최악이다. 중간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한때 글을 썼는데, 등단하지 못하면 의미없다고 생각했다. 공모전에서 상을 받지 못하면 "역시 난 재능이 없나"라며 좌절했다. 글 쓰는 즐거움, 감정을 표현하는 기쁨은 안중에도 없었다. 오직 외부의 인정과 성공만이 가치의 기준이었다.

운동도 마찬가지였다. 목표했던 시간에 러닝을 완주하지 못하면 "오늘은 실패"라며 기록하지도 않았다. 평소보다 5분 늦게 들어와도 "의미없는 운동"이라고 치부했다.

하지만 이제는 중간 지대의 아름다움을 알게 되었다. 70점도 충분히 괜찮고, 2등도 훌륭하고, 시도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완벽한 성공이 아니어도 그 과정에서 얻는 것들이 소중하다는 걸 깨달았다.


불완벽함의 완벽한 아름다움

책은 다 읽지 않아도 되고, 시작한 것을 끝내지 않아도 되고, 모든 실수가 내 책임이 아니어도 된다. 단점은 고치지 않아도 되고, 가끔 실망을 줘도 되고, 투자 대비 수익이 안 나와도 된다. 그리고 성공하지 못해도 충분히 의미 있다. 완벽주의라는 감옥에서 나오면 조금이나마 편안해진다. 이제는 나름 80% 정도의 완성도에도 만족하고, 과정 자체를 즐기며, 실패를 학습의 기회로 받아들인다.


물론 아직도 가끔 완벽주의 DNA가 발동한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자신을 보며 웃을 수 있게 되었다.

완벽주의라는 무거운 짐을 조금씩 내려놓아 보라. 불완벽함 속에서 찾는 완벽한 행복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

keyword
이전 23화혼자 있는 시간이 가르쳐준 인생의 진실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