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배우고, 계속 깨달으며 사는 게 인생
[나이 먹고 깨달은 인생의 진리]
1. 조금 과감하게 살아도 된다
2. 살다보면 주변 사람들은 계속 바뀐다
3. 물건을 사지 말고 추억을 만들어야 한다
4. 인생의 목적은 나다운 것에 있다
5. 가슴에 꿈 하나 정도는 품어야 한다
6. 지나친 편안함은 인생의 독이다
7. 걱정은 시간 낭비일 뿐이다
8. 모르는 건 절대 창피한게 아니다
9. 모든 사람은 만족시킬 수는 없다
10. 인생은 절대 공평하지 않다
조금 과감하게 살아도 된다 (그런데 진짜 조금만)
젊었을 때는 무모하게 살다가, 30대가 되면 갑자기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는 신중파로 변신한다. 그러다 40대가 되어서야 깨닫는다. "아, 내가 너무 조심스럽게 살았구나."
마치 게임에서 체력 포션을 아껴두다가 게임이 끝나버린 기분이다. 인생이라는 게임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모든 것을 아껴두다가, 정작 그 '혹시 모를 상황'은 오지 않거나 아예 다른 형태로 온다. 아끼다가 x된다는 말이 괜히 있는 말이 아니다.
물론 무작정 과감하게 살라는 건 아니다. 대출받아서 비트코인 올인하거나, 회사 때려치우고 유튜버가 되겠다고 선언하라는 게 아니라, 그냥 평소보다 조금만 더 용기를 내보라는 얘기다. 새로운 취미에 도전해보거나, 평소 가보고 싶었던 여행지에 가보거나, 관심 있던 사람에게 먼저 연락해보거나 하는 정도 말이다.
어릴 때는 "평생 친구"라는 말을 진심으로 믿었다. 졸업앨범에 "우정 영원히"라고 써주고, 정말로 평생 연락하고 지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이를 먹어보니 알겠다. 사람들은 정말로 계속 바뀐다.
초등학교 친구들과는 성인식 이후로 연락이 끊어지고, 중고등학교 친구들과는 대학 가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진다. 대학 친구들과는 취업하면서 뿔뿔이 흩어지고, 직장 동료들과는 이직하면서 관계가 정리된다. 심지어 결혼해서도 육아맘 친구들, 아이 학부모 친구들이 새로 생기고 또 바뀐다.
처음에는 이게 서운하고 씁쓸했다. '나만 이렇게 혼자가 되는 건가?' 싶어서 우울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이를 먹고 나니 이해가 된다. 사람들은 각자의 인생 단계에 맞는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정말 소중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남게 되어 있다.
지금 내 주변에 남아있는 사람들을 보면, 시간과 거리를 견뎌낸 진짜 소중한 사람들이다. 양보다는 질이 중요하다는 걸 이제야 알겠다.
옷장을 열어보자. 작년에 "이거 없으면 못 산다"며 산 옷들이 태그도 떼지 않은 채 걸려있다. 서랍 속 각종 가제트들도 마찬가지다. 살 때는 "이걸로 내 삶이 바뀔 거야!"라고 생각했는데, 정작 사고 나면 금세 시들해진다.
반면 여행에서 찍은 사진, 친구들과 함께한 시간, 새로운 경험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소중해진다. 물건은 사용할수록 낡아지지만, 추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빛난다.
그런데 여기서 딜레마가 있다. 추억을 만들려면 돈이 든다. 여행도 가야 하고, 친구들과 맛있는 걸 먹기도 해야 하고, 새로운 취미를 배우려면 도구도 사야 한다. 결국 '의미 있는 소비'와 '무의미한 소비'를 구분하는 안목이 중요하다.
내 경험상 "이걸 사면 내가 변할 거야"라고 생각하며 사는 물건들은 대부분 실패작이다. 대신 "이걸로 뭔가 재밌는 일을 해볼까?"라는 마음으로 사는 것들은 의외로 좋은 추억을 만들어준다.
"너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니?"라는 질문을 들으면, 20대에는 "성공한 사람", 30대에는 "안정적인 사람"이라고 답했다. 그런데 40대가 되어서야 깨달았다. "나다운 사람"이 되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걸.
문제는 "나다운 것"이 뭔지 알아내는 게 생각보다 어렵다는 점이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남들이 원하는 모습, 사회가 기대하는 모습으로 살아오다 보니, 정작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모르겠다.
친구들과 모여서 "나는 원래 어떤 사람이었지?"라고 물어보면, 의외로 명쾌한 답이 나온다. "너는 원래 이런 걸 좋아했잖아", "예전에는 이런 말을 자주 했는데" 같은 피드백을 듣다 보면, 내가 잊고 있던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나다운 것을 찾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하기 싫은 것"부터 정리하는 것이다. 소거법으로 접근하다 보면, 남은 것들이 진짜 내가 원하는 것들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꿈이 점점 현실적으로 변한다. "세계 평화를 이루고 싶다"던 꿈이 "내년에 승진하고 싶다"로, "소설가가 되고 싶다"던 꿈이 "독서모임에 참가하고 싶다"로 축소된다.
물론 현실적인 목표를 세우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가끔은 말도 안 되는 꿈 하나 정도는 마음속에 품고 있어야 한다. 그게 삶에 활력을 준다.
내 친구 중에 50대인데도 "언젠가 카페를 차리고 싶다"는 꿈을 품고 있는 사람이 있다. 현실적으로 보면 힘든 일이다. 하지만 그 꿈 때문에 그 친구는 주말마다 여기저기 카페를 찾아다니며 공부하고, 바리스타 수업도 듣고, 정말 즐겁게 산다.
중요한 건 그 꿈을 꼭 이루는 게 아니라, 그 꿈이 현재의 삶에 의미와 방향성을 주는 것이다. 꿈이 없으면 그냥 하루하루 버티며 사는 느낌이지만, 꿈이 있으면 뭔가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편안함은 마약과 비슷하다. 처음에는 달콤하지만, 너무 오래 탐닉하면 독이 된다. 매일 똑같은 일상, 똑같은 루틴, 똑같은 사람들과의 만남. 안전하고 편안하지만, 어느 순간 무기력해진다.
그렇다고 매일 스릴을 추구하며 살라는 건 아니다. 나이가 들수록 안정감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문제는 '편안함'과 '안주'의 경계선을 찾는 것이다.
내 경험상 가장 좋은 방법은 '작은 변화'를 주기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새로운 길로 출근해보기, 새로운 메뉴 도전해보기,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보기 같은 소소한 변화들이 삶에 활력을 준다.
큰 변화는 부담스럽지만, 작은 변화는 재미있다. 그리고 그런 작은 변화들이 쌓이면, 어느새 인생 전체가 훨씬 풍성해져 있다.
걱정의 95%는 현실이 되지 않는다는 통계가 있다. 실제로 내 경험을 돌아봐도 그렇다. 밤새 걱정했던 일들 중에서 정말로 일어난 건 거의 없다. 대신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터진다.
그런데 걱정을 안 하는 게 쉽지 않다. 특히 한국 사람들은 걱정을 '책임감'이라고 포장하는 경향이 있다. "걱정되니까 미리 준비하는 거야", "이런 것까지 생각해야 어른이지" 하면서 걱정을 정당화한다.
물론 합리적인 대비는 필요하다. 하지만 '대비'와 '걱정'은 다르다. 대비는 행동이고, 걱정은 감정이다.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으면, 나머지는 그냥 흘려보내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
내가 터득한 걱정 끄는 법은 "그래서 어쩌라고?"라고 스스로에게 묻는 것이다. 걱정이 든다면 구체적인 해결책을 찾고, 해결책이 없다면 그냥 받아들인다. 어차피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일이라면 걱정한들 무슨 소용인가?
나이를 먹으면서 가장 후회되는 건, 젊었을 때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런 것도 모르나?" 하는 시선이 두려워서 아는 척했던 순간들이 너무 많다.
그런데 정작 나이를 먹고 나니, 모르는 걸 솔직하게 말하는 사람이 훨씬 매력적이라는 걸 깨달았다. "이거 저는 처음 들어보는데, 어떤 건가요?"라고 묻는 사람이 아는 척하며 헛소리하는 사람보다 백배 낫다.
더 웃긴 건, 모른다고 말했을 때 사람들이 기꺼이 설명해준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아는 걸 설명하는 걸 좋아한다. 그러니 모르는 걸 모른다고 하면, 새로운 걸 배울 수 있고 동시에 상대방도 기분 좋게 만들 수 있다. 윈윈이다.
"나이 먹고도 이런 걸 모르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도 버려야 한다. 세상에는 평생 몰라도 되는 것들이 훨씬 많다. 모든 걸 알 필요도 없고, 알 수도 없다.
어릴 때는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누군가 나를 싫어하거나 비판하면 밤새 고민하며 "내가 뭘 잘못했을까?"를 곱씹었다.
하지만 나이를 먹고 나니 이해했다. 아무리 완벽한 사람이어도 모든 사람이 좋아할 수는 없다. 심지어 마더 테레사도, 간디도, 넬슨 만델라도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평범한 내가 모든 사람의 마음에 들 수 있을까?
더 중요한 깨달음은,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려고 하면 정작 아무도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것저것 다 맞춰주려다 보면 나만의 개성이 사라지고, 결국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
차라리 일부 사람들에게는 확실하게 좋은 인상을 남기는 게 낫다. "모든 사람의 친구"보다는 "특정 사람들의 진짜 친구"가 되는 게 더 의미 있다.
어릴 때는 세상이 공평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열심히 하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어야 하고, 나쁜 짓을 하면 반드시 벌을 받아야 한다고 믿었다. 그런데 살아보니 세상은 전혀 공평하지 않다.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있고, 노력 안 해도 잘 되는 사람이 있다. 착하게 살아도 손해 보는 경우가 많고, 나쁜 짓을 해도 잘 사는 사람들이 있다. 처음에는 이게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났다.
하지만 나이를 먹고 나니 생각이 바뀌었다. 만약 세상이 정말 공평하다면 얼마나 재미없을까? 모든 게 노력한 만큼, 능력 있는 만큼만 결정된다면 삶에 어떤 드라마가 있겠는가?
불공평함 때문에 때로는 예상치 못한 기회가 오기도 하고, 뜻밖의 행운이 찾아오기도 한다. 물론 불운도 있지만, 그것 역시 삶의 일부다. 공평하지 않기 때문에 삶이 예측 불가능하고, 그래서 더 흥미롭다.
중요한 건 불공평함에 화내며 시간을 낭비하는 게 아니라,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남과 비교하지 말고, 어제의 나와 비교하며 조금씩 나아가는 게 답이다.
이렇게 나이 먹고 깨달은 인생의 진리들을 정리해봤다. 이것들도 절대적인 진리는 아니다. 몇 년 후에는 또 다른 깨달음이 있을 것이고, 지금의 생각들을 비웃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것도 괜찮다. 계속 배우고, 계속 깨달으며 사는 게 인생이니까. 완벽한 정답을 찾으려 하지 말고, 그냥 하루하루 재미있게, 의미 있게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결국 인생은 정답을 찾는 시험이 아니라, 나만의 이야기를 써가는 모험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