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은 지능 순이라지만, 나는 아직 이 교실에 산다

by yuri

탈출은 지능 순이라는데

"탈출은 지능 순"이라는 서글픈 농담이 교무실 창가에 유령처럼 떠돈다.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이직하라는 그 서늘한 충고 앞에서, 나는 내가 가진 지능의 무게를 가늠해 본다. 학창 시절 나름 공부 좀 한다 소리 들었고, 지금 대기업에서 고액 연봉을 받거나 의사가 되어 승승장구하는 친구들의 소식을 들을 때면 '내 선택이 어디서부터 어긋났나' 하는 회한이 밀물처럼 밀려오곤 한다.

그저 부모님이 귀에 못이 박히게 말씀하시던 "여자는 교사가 최고야"라는 그 한마디. '선생님' 소리 들으며 번듯하게 사는 게 정답인 줄 알았던 그 시절의 나는 너무나 순진했다.

지금의 나는 육아와 일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느라 책 한 권 읽을 틈조차 없다. 이직이나 탈출은 내게 사치스러운 신기루일 뿐이다. 오죽하면 교사가 되겠다는 제자들에게 "다른 길을 찾아보라"며 도시락 싸 들고 다니며 말리는 냉소적인 어른이 되었을까.


'짠내' 나는 교실의 현실

사실 이 직업엔 복지랄 것이 많이 없다. 회사를 다니는 친구들에게 "우리는 우리가 먹을 과자도 회비 걷어서 사고, 교무실에서 사용할 휴지도 내 돈으로 사서 써"라고 말하면 다들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는다. 경조사비조차 회사 지원금 하나 없이 내 월급에서 꼬박꼬박 떼어간 상조회비로 충당하는 현실. 방학이라는 달콤한 사탕 하나를 빼면, 남는 것은 텅 빈 지갑과 고단한 일개미의 일상뿐이다.

하지만 날씨가 우중충해 마음까지 눅눅해지는 아침이면, 나는 나도 모르게 교실로 향한다. 그곳엔 나의 '유일한 복지'가 있기 때문이다.


사랑을 의심하는 어른

나는 사랑받는 법을 잘 모르는 사람으로 컸다. 한 살 많은 공부 잘하는 사촌 언니와 늘 비교당했고, 아래로는 친동생에게 치이며 무언가에 쫓기듯 자랐다. 칭찬에 인색한 환경은 내 표정을 어둡게 만들었고, 친구들로부터는 "너랑 있으면 숨이 막힌다"는 아픈 말을 듣기도 했다.

그래서 누군가 나에게 호의를 베풀면 "나한테 뭐 바라는 게 있나?"라는 못된 의심부터 고개를 든다. 대가 없는 사랑은 세상에 없다고 믿는, 참으로 삭막한 어른이 되어버린 것이다.


나의 아이돌, 나의 구원

그런데 우리 반의 그 아이는 달랐다. 교실 문을 열기만 해도 "선생님 보고 싶었어요!"라며 세상에서 가장 환한 빛을 내뿜으며 달려온다. "선생님 왜 이렇게 예뻐요? 너무 귀여우세요"라는 말을 매일 같이 쏟아낸다. 옆자리 아이가 "선생님, 얘 생기부 잘 써달라고 저러는 거예요. 다 흑심 있어서 그러는 거라고요"라며 찬물을 끼얹어도, 아이는 굴하지 않고 외친다.

"아니에요! 진짜 선생님이 너무 좋아서 그래요!"

그 순간,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쳐두었던 의심의 빗장이 스르르 풀린다. 나조차 내가 밉고 못나 보이는 날에도, 아무런 조건 없이 나를 '아이돌'처럼 환대해 주는 존재. 그 맑은 눈망울 앞에 서면, "그래, 이 맛에 교사하지"라는 해묵은 문장이 비로소 내 것이 된다.


조금 미쳐도 괜찮은 인생

비록 내 지갑은 얇고 탕비실엔 내 돈 주고 산 비스킷뿐이지만, 매일 아침 나를 향해 쏟아지는 이 순도 100%의 애정이야말로 그 어떤 대기업 성과급보다 귀한 보너스다. 교사들이 제 나이보다 조금 더 젊어 보인다면, 그건 아마도 우리가 매일 아침 아이들의 무조건적인 사랑이라는 방부제를 한 사발씩 들이켜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님의 솔직한 고백에 **'능청스러운 상상'**이 더해지니 글의 맛이 훨씬 깊어졌습니다. "다른 창의적인 칭찬을 가져오렴"이라는 대목은 독자들이 피식 웃음을 터뜨리면서도 작가님의 귀여운 소망에 깊이 공감할 포인트예요.

브런치 스토리의 감성에 맞게 문장의 호흡을 다듬어 보았습니다.


어떤 선생님은 수업 시간에 자기가 들어오면 아이들에게 박수를 치라고 시키던데 솔직히 내 성격에는 죽었다 깨어나도 못 할 일이다. 아이들의 과분한 칭찬에도 머쓱해서 어쩔 줄 모르는 내가, 어떻게 그 당당한 박수갈채를 스스로 요구할 수 있을까.

하지만 가끔은 그런 선생님의 능청스러움이 못내 부러워질 때가 있다. 나도 가끔은 저렇게 정신줄을 살짝 놓고, 아이들과 격의 없이 섞여 즐겁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선생님 예뻐요!"라고 말하는 아이에게 "그걸 이제 알았니? 선생님은 원래 예뻤단다. 다음엔 좀 더 창의적인 칭찬을 고민해 보렴"이라며 장난스럽게 맞받아칠 수 있는 뻔뻔함을 가지고 싶다.

비록 나는 박수를 시키지도, 나를 찬양하라며 너스레를 떨지도 못하는 소심한 '일개미'인 데다, 여전히 교무실 휴지조차 내 돈으로 사 써야 하는 처지다. 하지만 나를 향해 쏟아지는 이 무조건적인 다정함 속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의심 많은 어른의 껍질을 조금씩 깨뜨리는 아이들의 무해한 애정.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교사라는 직업이 나에게 준, 세상 어디에도 없는 '특급 복지'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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