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우리 학교에 경찰차가 들어왔다. 새치기를 지도하던 동료 교사가 아동학대로 신고를 당했다는 소식은 삽시간에 교무실에 퍼졌다. 사건의 경위는 이랬다. 급식 줄에서 새치기를 하던 학생을 지도하는 과정에서 작은 실랑이가 있었고, 분노를 참지 못한 학생이 그 자리에서 경찰에 신고한 것이다. "새치기하면 안 된다"는 상식적인 가르침이 '신체 접촉'이라는 법적 프레임에 갇히는 순간, 교육은 사라지고 수사만 남았다.
조사를 마친 동료는 허망한 표정으로 외쳤다. "내가 왜 밥 먹는 줄 세우다 이런 수모를 당해야 합니까? 그냥 애들 마음대로 먹게 두지, 우리가 왜 서서 어디 앉아라, 줄 똑바로 서라 감시자가 되어야 하나요. 차라리 급식 지도 자체를 없애버립시다!" 그 절규는 단순히 일이 하기 싫다는 투정이 아니었다. 교사로서의 최소한의 권위조차 보호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처절한 방어기제였다.
이 일로 동료 선생님들과 긴 대화를 나눴다. 한 선생님은 이전 학교의 사례를 들며 제안했다. "학생회 아이들에게 지도를 맡기고, 반별이 아니라 그룹별로 묶어서 자유롭게 먹게 했는데 잘 돌아가더라고요." 하지만 다른 선생님은 고개를 저으며 강하게 반박했다. "그렇게 되면 반에서 소외당하는 아이들은 아예 밥을 못 먹어요. 혼자 내려오면 다른 애들이 뒤로 가라고 눈치를 주거나 주위에 아예 안 오려고 하거든요. 반별로 줄을 세워 먹여야 그나마 그 아이들이 밥이라도 편히 먹습니다."
결국 ‘약자 배려’라는 울타리를 어디까지 쳐주어야 하느냐는 고민은 동아리 부원 모집 현장으로까지 번졌다. 어떤 동아리에도 들지 못한 학생을 담당 선생님이 정원이 적은 A 동아리에 강제로 재배정시키면서 갈등이 터진 것이다. 선생님은 기장에게 "부원이 많은 것도 아닌데 왜 이 아이를 떨어뜨렸니? 너희끼리만 어울리려고 그런 것 아니야?"라고 나무랐다. 기장은 "면접을 봤는데 저희 동아리와 이 학생이 생각하는 동아리 방향이 맞지 않아서요..."라고 답했지만, 선생님은 단호했다. "부원들을 보니 다 같은 학원 출신들인 것 같은데, 이렇게 특정 학생을 따돌리면 안 돼."
사실 담임으로서 교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참 마음이 복잡해지는 지점이 있다. 무리에서 배척당하는 아이들 중에는 안타깝게도 '도덕 책'에 나온 대로만 행동하는 아이들이 있다. 이 아이들은 성실하다. 모르는 게 있으면 적극적으로 질문하고, 친구가 떠들면 지적하며, 맡겨진 역할은 완벽히 수행한다. 문제는 '유동성'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눈치 없이 도덕적인 사람보다, 차라리 눈치 있게 비도덕적인 사람이 낫다고 생각한다. 세상일은 수학 공식처럼 딱딱 떨어지지 않는 변수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한 번은 수업 시간마다 질문을 쏟아내는 우리 반 학생에게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모르는 게 생기면 질문하는 게 맞지만, 다른 친구들이 싫어하니까 수업 중에 질문을 조금만 줄여보면 어떨까?" "선생님, 모르는 게 있으면 물어보는 게 맞잖아요. 왜 질문하면 안 돼요?" "질문이 나쁜 건 아니야. 하지만 질문이 길어지면 선생님이 다른 설명을 대충 넘어가게 되거나 쉬는 시간까지 수업하게 되니까..." "그러면 쉬는 시간에 물어보면 돼요?" "음, 선생님들도 쉬는 시간이 필요하니까... 친구들한테 먼저 물어보고 정 안 되면 그때 물어보는 건 어떨까?"
아이는 여전히 억울하다는 듯 답했다. "질문을 하는 게 왜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알겠습니다."
자신은 아무 문제가 없는데 왜 사람들이 나를 힘들어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그 아이를 보며 나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나는 약자를 배려하기 위해 다수가 절대적인 피해를 보는 것에는 반대한다. 약자가 크게 피해를 보지 않는 선이라면, 다수가 원하는 방향을 존중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다시 급식실로 돌아가 보자. 친한 친구들과 먹고 싶은 아이들과 반별로 앉히려는 선생님 사이에서 매일 실랑이가 벌어진다. 일찍 먹고 싶은 아이들은 선생님을 속여가며 다른 반인 척 줄을 서고, 그 과정에서 또 다툼이 일어난다. 테트리스를 하듯 온 순서대로 빈자리에 학생들을 끼워 앉히다 보면 "왜 나만 누구랑 못 앉게 하느냐"는 원망 섞인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물론 이렇게 하면 겉보기에는 혼자 앉아 먹는 아이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황은 다르다. 아이들은 식판을 앞에 두고도 같이 온 무리 쪽으로 몸을 돌려 저희끼리만 이야기한다. 강제로 섞어 앉혀도 보이지 않는 벽은 여전히 공고하다.
어쩌면 무조건적인 배려는 약자에게도 독이 될지 모른다. "네 잘못이 아니야, 네 가치를 사람들이 몰라주는 거야"라고만 말해주는 것이 정말 그 아이를 위한 일일까. 오히려 왜 사람들이 나를 불편해하는지 곰곰이 고민해 볼 기회를 주어야 한다.
내가 수용할 수 있는 부분은 고쳐나가려 노력하고, 도저히 바꿀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타인의 시선에 맞대응하지 않는 '무덤덤함'을 키우는 것. 그것이 그들이 유리 온실 밖으로 나와 진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근육이 된다.
학교는 울타리를 쳐주되, 그 안에서 아이들이 스스로 강해질 수 있도록 지켜봐 주는 공간이어야 한다. 아이가 상처받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부모는 아이에게 날아오는 모든 화살을 대신 막아주고 싶어 한다. 하지만 사람을 가장 크게 성장시키는 것은 위기다. 위기에 맞서 싸우고 그것을 극복할 때 비로소 단단해진다. '보호'라는 이름 아래 모든 위기를 제거해 주는 삶이, 새장에 갇혀 사는 새의 삶과 무엇이 다를까 하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 본다.
p.s 선생님은 언제든지 그 자리에 있을 테니까 대나무 숲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와. 하지만 어려움에 맞서 싸우는 건 결국에 본인 스스로가 해야 할 일이야. 대신 싸워줄 수는 없지만 응원은 누구보다 열심히 잘해줄 수 있단다. 넌 혼자가 아니라는 것만 기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