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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살린 사람들

by yuri

2013년 MBC에서 <여왕의 교실>라는 드라마가 방영했습니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 마여진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성적을 최우선시하며 엄격한 교육 방식을 적용합니다. 학생들에게 시험을 통해 성적순으로 특권을 부여하고, 꼴찌에게는 '꼴찌 반장'이라는 직책을 주어 궂은일을 시킵니다. 여기서 재미있는건 마여진 선생님이 아이들을 힘들게 할수록 반 아이들은 똘똘 뭉쳐 선생님께 대항하며 어려움을 함께 극복해 나갑니다.


신규시절을 생각하면 정말 힘들었지만 그때만큼 동료 선생님들과 끈끈한 관계를 유지한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발령동기가 있고 비슷한 나이 대의 동료가 있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입니다. 매일같이 발령동기인 특수 선생님에게 찾아가 신세한탄을 하고 울고불고했습니다. 국어 선생님, 사회복지사 선생님, 특수 선생님, 저 이렇게 4명이서 일주일에 3번씩은 저녁마다 만나서 놀았습니다. 한번은 술을 마시다 "선생님인 거를 들키면 안 된다"고 서로 "대리님"하면서 회사원인척 학교 이야기를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뭐가 그렇게 재밌고 신나서 매일 같이 만났는지 모르겠지만 덕분에 힘든 학교 생활을 잘 버틸 수 있었습니다.


저보다 1년 먼저 신규 발령을 받은 상담 선생님과 중국어 선생님께도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상담 선생님께 쪼르르 달려가 상담을 받았습니다. 바쁘신데도 제가 가면 언제나 저만의 "대나무 숲"이 되어 주셨습니다. 능력이 좋아서 신규임에도 불구하고 상담 쪽으로 이런저런 상을 수상하셔서 볼 때마다 "레벨이 다르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중국어 선생님과는 같은 학년 담임을 했기 때문에 역시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같은 반을 수업하기도 하고 저희반 금쪽이와 중국어 선생님반 금쪽이가 같이 사고를 치는 경우도 종종 있어서 자주 고민상담을 했씁니다. 교실 선풍기를 어떻게 닦아야 되는지 몰라서 우왕좌왕하고 있으면 옆반으로 오셔서 함께 닦아주시고 운동장 벤치에 앉아 한숨 쉬고 있으면 제 편에서 이야기를 들어주셨습니다.


나이를 먹고 이학교 저학교를 다니면서 그때처럼 비슷한 연령대의 선생님들이랑 밤늦게까지 모여서 논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뭐가 그렇게 애틋했는지 평일에도 만나고, 주말에도 만나고, 방학 때도 만나고 그랬습니다. 술 마시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에도 불구하고 편하고 좋은 사람들이 있는 술자리는 저 스스로 찾아다녔습니다. 집에 혼자 있어봐야 땅을 파면서 부정적인 생각만 할 확률이 높기 때문에 여기저기서 불러주면 열심히 찾아다녔습니다.


발령동기 선생님도, 직속 선배 선생님들도, 친하게 지내는 선생님들 모두 언니, 오빠였기 때문에 제가 투정 부리고, 투덜거려도, 울고불고해도 다 받아주셨던 것 같습니다. 그게 너무 고맙고 감사합니다. 부정적인 이야기만 듣다 보면 한번쯤은 짜증 내고 화낼 법 한데 항상 들어주시고 달달한 거 먹고 풀라고 초콜릿이며 커피며 이것저것 챙겨주셨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운동을 할 수록 근육돼지가 된 것 같습니다. :)




까다롭고 힘든 부장님을 만나기도 했지만 좋은 부장님도 많이 만났습니다.

그날도 선배 선생님께 혼나고 오는 길이였는데 그 모습을 보시고 저희 부장님께서 저를 혼내던 선생님께 따로 언질을 주셨는지 저를 찾아 오셔서 "선생님 그때 미안했어요"라고 사과를 하셨습니다. 저를 막대했던 선배 선생님들 그 누구도 저에게 사과를 하시지는 않았는데 저를 찾아와 사과를 해주시고, 다른 학교로 옮겼음에도 불구하고 결혼식 축의금을 내주셨다는게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그때 저희 부장님을 보면서 '내가 부장이 되면 저런 부장이 되야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좋은 게 좋은 거지 그냥 자기가 참아'라고 다독이는 것으로 끝내는 게 아니라 고년차 선배가 저년차 후배에게 잘못한 부분이 있으면 "사과해"라고 말해주는 든든한 부장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음 부장님으로 모시게 됐을 때 저에 대한 안좋은 소리를 들어서 걱정된다는 말씀을 하셔서 '이분과 함께 1년을 잘 보낼 수 있을까…'하는 걱정을 했는데 누구보다도 든든한 제 편이 되어주셨습니다. 누군가 저에 대해서 안 좋은 이야기를 하는 걸 들으시면 그 자리에서 적극적으로 해명해 주시고 보호해 주셨습니다.


생각해 보면 여러 부장님들께 참 많이 얻어먹기도 했습니다.

그날도 부장님께서 점심시간에 학생지도차 학교를 한 바퀴 돌고 오셨는데 붕어빵을 한 봉지 가득 사들고 오셨습니다. 그래서 그 날은 같은 부서 선생님들과 맛있게 나눠 먹었습니다. 한 번씩 "오다가 주웠어"라는 느낌으로 이것저것을 사오셔서 턱턱 나눠주신 덕분에 퇴근할 때 치킨을 사들고 집에 돌아오는 아빠를 기다리듯이 부장님이 기다렸습니다.



너무 쪽팔려서 이불킥을 하고 싶은데 그때는 저도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에 다음 해에 신규 발령을 받아 온 선생님께 "선생님 저는 교무실에 없으면 음악실에 있으니까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이다 하고 싶으시면 언제든지 오세요. 맛있는 것도 많이 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후임 선생님이 저보다 학교 생활 적응을 더 잘하셨는데 신규 때 저를 생각하고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한 것 같습니다. :)


제가 받아온 사랑만큼 후임 선생님들에게 그 사랑을 나눠주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나름 챙긴다고는 했는데 든든한 버팀목이라기 보다는 같이 흔들리는 갈대가 되고, 선배보다는 그냥 동네 바보 언니 같은 느낌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챙김을 받기보다는 내가 챙겨줘야 될 것 같은…, 상대방이 챙겨주고 있지만 본인은 자기가 챙겨주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지는 않았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다행히 아직까지 자주는 아니지만 저랑 연락을 주고 받고 "보고 싶다"고 말해주는 것을 보면 심한 금쪽이는 아니였겠죠? ^^


생각해 보니 지금 학교에서도 참 많은 선생님들의 도움 덕분에 재미있는 학교 생활을 보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저런 힘든 일이 있어 음악실에서 혼자 울고 있으면 어디서 들으셨는지 쪼르르 저를 찾아와 위로해주시고 맛있는 간식을 제 자리에 슬쩍 놓고 가주십니다.


주위에 친구가 많은… 인복이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부러웠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저 역시 인복이 많은 사람인 것 같습니다. 사주팔자에 외로움이 있다고 하던데 생각보다 괜찮은 것 같습니다.

"신은 한쪽 문을 닫을 때 다른 쪽 문을 열어 놓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사람으로 치유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기도 했지만 여러 사람들 덕분에 오늘도 잘 살고 있습니다.


<치유를 파는 찻집>(모리사와 아키오. 북플라자. 2023)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인간은 말이야, 다른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듣기 위해서 사는거야"

오늘은 유독 감사한 마음이 충만하게 드는 하루인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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