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무실에 학부모 한분이 오셔서 "내 돈으로 월급 받고 있는 주제에"라는 말을 하셔서 "저희도 학부모님과 똑같이 세금을 내고 있으니 학부모님께서 저희 월급을 주신는 것은 아닙니다. 진정하시죠"라는 말을 하시는 선생님을 보고 '대단하다. 멋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스트레스는 많고 열심히 일한 만큼 돈을 많이 주는 것도 아니고 박봉에 출장비, 초근비와 같이 정당하게 일하고 받는 수당도 관리자 눈치를 엄청 봐야 합니다.
혜택은 없는데 무한 책임만 요구되는 게 교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저기서 "열심히 일해라"라는 말을 하지만 그에 따른 보상은 없습니다.
아이를 바른 길로 이끌겠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아이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이렇게 해야하는거야"라고 말하면 아이에게 1차로 욕을 먹고 학부모님께 2차로 욕을 먹습니다. 아이가 수업시간에 자서 깨우고, 시험 문제는 풀고 자라는 정당한 요구를 했음에도 학교로 민원 전화가 걸려옵니다.
시험기간만 되면 다양한 종류의 민원이 학교로 들어옵니다. "아이가 시험을 계속 볼 의지가 있는데 왜 종이 치자마자 답안지를 걷었냐", "본종이 울리고 시험지를 나눠줘서 20초 늦게 시험지를 받으니까 20초 늦게 걷어야 하는데 왜 종이 치자마자 답안지를 걷었냐", "시험보는 중에 방송으로 오류를 정정하는 바람에 집중력이 흐트러져서 제대로 시험 문제를 풀지 못했다"라는 민원이 들어옵니다.
해당 교시 시험에 응시하는 모든 학생들이 다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하고 없다면 어디에 있는지를 찾아나서야 합니다.
잘못된 것을 민원으로 제기해 주면 이해도 되고 수정을 하는 것이 맞겠으나 모든 민원에 예민하게 반응해 "이런 민원이 들어왔으니까 각별히 더 조심해주세요."라는 말을 듣는게 불편했습니다. "아닌거는 아니다"라고 말말하는게 맞으나 고객님이라는 이유만으로 말하지 못하는 상황이 답답했습니다.
학생이 "저는 선생님이 되는 게 꿈이에요"라고 말하면 "세상에는 좋은 직업이 많단다. 지금은 학교를 다니고 있어서 주위에 있는 어른들이 대부분 선생님이어서 그렇지 좀 더 시간을 두고 넓게 다양한 직업들을 찾아보렴"이라고 말하는 편입니다.
이런저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저는 아직도 교사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탈출은 지능순이다.", "교사 말고 다른 할 일을 찾으면 바로 때려치울거다"라고 노래 불렀던게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다른 일을 할 기회가 생겨도 교직을 그만두기보다는 겸직을 생각할 것 같습니다.
교사라는 직업의 가치는 아이를 낳고 나이가 들수록 높아지는 것 같습니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출산을 하면 경력이 단절된다는 것을 글자로만 이해했지 피부로는 실감하지 못했습니다.실제로 아이를 낳고 키워보니 너무나 다양한 변수들이 생겨 연차를 써야만 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아이를 봐줄 곳이 없기 때문에 일찍 어린이집에 등원을 해서, 혼자 늦게까지 남아있는 아이를 보니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아이 옆에 엄마가 꼭 있어야 할 시기에 내 아이를 외롭게 만드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직은 휴직을 하면 그 자리를 기간제 선생님을 채용해서 채우기 때문에 내 일을 다른 사람이 나눠서 하지는 않지만 일반 회사는 다르더군요….
예전에는 아이가 아파서 관리자에게 조퇴를 하기 위해 보고를 하면 "누구는 아이 안 키워본 줄 아세요. 뭐 어쩌겠어요. 가세요"라는 한소리를 들었지만 요즘은 저출산이 심해서인지 "어서 가세요. 선생님이 아이를 낳고 키워줘서 우리가 지금까지 일할 수 있는 겁니다. 눈치 보지 말고 가세요"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아이를 낳고 복직하면 일반 회사에서는 "감이 떨어졌다"라고 말하며 알게 모르게 눈치를 주지만 교사는 아이를 낳아 본 뒤에 제대로 일힐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출산을 하고 아이를 키우다 보니 학생들의 돌발 행동에 좀 더 너그럽고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교사이면서 학부모이기 때문에 어떤 부분에서 부모님들이 스트레스를 받는지도 알 것 같습니다.
수능 감독을 하고 학교를 나오는데 교문에서 자녀를 기다리고 있는 학부모님을 보자마자 눈물이 왈칵 날 뻔했습니다. 하루종일 시험 보고 있는 아이들이 안쓰럽고, 그런 자녀가 시험을 잘 봤으면 하는 마음에 하루종일 기도하고 계셨을 학부모님의 모습이 상상되었습니다.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원로 선생님께서 "이 나이에 주위를 둘러보면 이렇게 일하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이 나이에 일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게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구 때부터 이런저런 일이 있었기 때문에 정년까지 일하는 것은 생각도 안 해봤고 '학부모에게 고소를 당해서 직위해제나 안 당하면 다행이지…'라고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버티는 심정으로 교직생활을 보내 당시에는 그 말이 확 와닿지는 않았지만 연차가 쌓이고 요령이 늘고 주위에 정년퇴직을 하신 분들을 만나면서 '어쩌면 내가 그만두지 않는 한 정년까지 근무할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사 생활을 하면서 가장 뿌듯한 순간은 학생들에게 "선생님 수업을 듣고 음악이 좋아졌어요", "선생님 덕분에 힘든 학교 생활을 버틸 수 있었어요"라는 말을 듣는 것입니다.
스승의 날이면 매년 잊지 않고 간식을 들고 제가 일하는 학교로 찾아와 주는 아이가 있습니다. 지금은 어느덧 성인이 되어 "선생님 술 사주세요"라고 전화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내가 나이를 먹기는 했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교사라는 직업은 보수나 복지면에서 보면 추천하고 싶지 않은 직업이지만 다른 직업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뿌듯함"이 있는 것 같습니다.
말썽만 피우던 아이가 철이 들고, 나이를 먹고 찾아와 "선생님 그때는 제가 참 철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라는 말하면 '내가 인생을 잘못 살지는 않았구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하는 모든 일들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의미 없는 일인 줄 알았는데 나이를 먹은 만큼 한 뼘 성장해 있는 아이들과 만나 이야기를 하면서 '내가 한 일들이 전혀 의미가 없던 것은 아니었구나…'라고 생각합니다.
서로 내 말을 하기 바쁘고, 때에 따라서는 내 말을 하기 위해 돈을 내야 하는 이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내 말에 귀를 기울여주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면서 월급을 받는 교사라는 직업은 참 매력적인 것 같습니다. '학교가 아니면 나보다 한참 어린 아이들이 내 말에 귀를 기울여주지도 않을 것이고, 학교가 아니면 내 인생 이야기나, 노잼 개그에 재미있게 웃어주는 아이도 없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학교니까 선생님 말이 재미가 없어도 웃어주고, 수업이 지루해도 열심히 듣기 위해 노력해주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합니다.
오늘도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라때는 말이야"를 시전 하며 학창 시절에 겪은 다양한 일화를 이야기하며 재미있게 수다를 나눴습니다. "선생님이 학생일 때 말이야. 드라마가 너무 보고 싶어서 방송실에서 몰래 들어가서 드라마를 보다가 실수로 음량을 최대로 해서 전교에 방송을 하는 바람에 선생님들한테 엄청 혼났다"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도 좋지만 너희들만의 추억을 학교에서 많이 만들었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끝으로 수업을 나왔습니다.
예전에 어떤 분께서 "교사는 불법만 아니면 되도록 많은 경험을 해봐야 합니다. 그래야 아이들을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라고 하셨는데 수업시간에 몰래 학교 담을 넘어 땡땡이를 치고, 물파스로 눈을 빨갛게 만든 다음에 눈병이라고 속여서 학교에서 빠져나오고, 눈 밑에 분필가루로 다크서클을 만들어 아픈 척 조퇴를 했다는 저의 이야기에 눈을 반짝이며 들어주는 아이들을 보고 '난 재미있는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하며 콧대를 높이 치켜듭니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사람으로 치유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로 교사는 참 마약 같은 직업인 것 같습니다. 학생과 학부모, 동료 선생님에게 상처를 받아도 결국은 학생과 학부모, 동료 선생님께 위로받고 치료를 받게 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