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들은 믹스커피와 간단한 다과를 회사에서 제공해 주지만 교사들은 십시일반 돈을 모아 사비로 과자를 사고 커피를 삽니다.
학생들에게 "잘했다"라는 의미로 나눠줄 간식도 사비로 구매합니다. 한 번은 학생들에게 피자스쿨에서 피자를 사줬는데 자기들은 도미노 피자 이상이 아니면 안 먹는다고 다른 걸 사달라고 하더군요
농담삼아 담임수당을 받아도 반 아이들에게 나눠줄 피자, 치킨 등을 사고 나면 남는 게 없다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일부 학생과 학부모님께서는 "저희(애) 이런 거 안 먹어요. 다른 거 없어요?"라는 말을 하기 때문에 마냥 싼 과자를 줄 수도 없습니다.
과자를 안 주면 되는 거 아니냐고 반문하시겠지만 체벌이 허용되지 않은 상황에서 학생들을 어르고 달래기 위해서는 먹을 것이라는 당근이 꼭 필요합니다.
교사로서 최고의 복지이자 거의 유일한 복지가 방학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교사들이 교직의 힘듦에 대해 토로할 때마다 다른 직종에 있는 사람들은 "그래도 교사는 방학이 있잖아요. 한 달 가까이를 쉴 수 있는 직업이 교사 말고 또 있을 것 같아요?"라는 말을 종종 하십니다.
"방학 때 외국에 나가봐요. 다 교사예요….", "나도 교사처럼 길게 쉴 수 있으면 다 버틸 수 있어요"라는 말을 주변에서 들으면 답답하고 마음이 아픕니다.
학기 중에는 수행평가를 실시하고 시험문제 출제하며 행정 업무를 처리하느라 매일이 바쁩니다. 학기말에는 여기에 더해 생활기록부를 작성하느라 머리를 쥐어짜며 창작의 고통에 빠져야 합니다.
한 번은 너무 힘들어서 조퇴를 하기 위해 다른 선생님에게 시간표를 바꿔달라고 요청했더니 "선생님만 힘든 거 아니에요. 다 힘들어요. 선생님이 조퇴를 하고 가버리면 그 수업을 다른 사람이 해야 되잖아요."라고 말하셨습니다.
몸이 너무 좋지 않아 병원에서 검사를 받기위해 조퇴를 하겠다고 하니, 옆에 앉아 계신 선생님께서 "어차피 검사 결과가 양성으로 떠도 쉬지도 못할 텐데 차라지 모르고 있는 게 낫지 않겠어요?"라고 말하시더군요. 그래서 '나는 아파도 쉴 수 없는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방학 때 해외에 나가면 교사 밖에 없는 이유는 그때가 아니면 길게 휴가를 쓸 수 있는 날이 없기 때문입니다. 바쁘고 내 수업을 다른 사람과 교환해야만 쉴 수 있기 때문에 학기 중에 여행을 다녀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다행히 주위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여행 전과 후에 수업을 몰 수 할 수 있게 되어도 여행 앞뒤로 수업을 몰아서 해야 하기 때문에 여행을 다녀와서 활력을 얻는게 아니라 몸이 더 피곤한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합니다. 동교과 선생님께서 나 대신 보강 수업에 들어가 주면 좋겠지만 결국 내 일을 남에게 떠넘긴 꼴이기 때문에 눈치가 보입니다.
제 주위는 유독 방학을 이용해서 신혼여행을 다녀오거나, 학기 중에 요양차 신혼여행휴가를 3일 정도 쉬다가 다시 출근하는 분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방학 때 해외여행을 가면 성수기 비용을 내야 되기 때문에 학기 중에 뜨는 특가 상품을 잡아 저렴한 비용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오고 싶지만 거의 불가능합니다.
방학 때 교사들은 여행 가고 집에서 쉬는 줄 알지만 어떤 업무를 맡았느냐에 따라서 방학 때도 출근을 해야 되는 일이 종종 발생합니다.
신입생과 관련된 업무들 예를 들면 교복, 교과서, 시간표 등은 방학 때도 나와 내년에 들어올 새내기들을 위한 세팅을 합니다. 다만 방학 중이기 때문에 출근시간이 조금 여유롭기는 합니다.
선생님들에게 있어서 방학은 요양기간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허리, 목 등 아픈 부위를 방학 기간을 이용해 치료받습니다. 학생, 학부모 등으로부터 받은 스트레스를 풀고 에너지를 재충전하기 위해 여행을 떠납니다. 학기 중에 너무 바빠서 자세히 쓰지 못한 학교생활기록부를 방학을 이용해 수정합니다.
당연한 것이지만 신규때부터 지금까지 연가를 다 써본적이 없고 방학이 있기 때문에 연가 보상비도 못받습니다.
저는 길게 쉬는 것보다는 짧게 자주 쉬는 것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남편이 항상 저에게 쉬는 법도 배워야 된다고 말하지만 아무것도 안 하고 쉬고 있으면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옵니다. 항상 뭔가를 하고 있어야 하고, 할 일이 없으면 찾아서라도 합니다.
한번 부정적인 감정과 생각이 몰려들 때면 이를 잘 차단하지 못해서 땅을 파고 들어가는 일이 종종 있는데 일을 할 때 만큼은 일하느라 바빠 이런저런 생각을 할 겨를이 없기 때문에 부정적인 생각이 쉽게 차단되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을 만나 수업을 하고 선생님들과 재미있게 수다를 떨다 보면 어느 순간 부정적인 감정이 가라앉아 있습니다. 하지만 방학 때는 주로 혼자서 책을 읽거나 영상을 보는 등 정적인 활동을 위주로 하다 보니 감정 컨트롤이 잘 안 돼 한없이 부정적여 질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체력을 보충하고 감정을 정화시킬 수 있는 방학이 없다면 체력적, 정서적으로도 너무 힘든게 교직 생활일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방학 없이 학기 중에 휴가를 쓸 수 있고 연가를 다 못쓰면 연가보상비로 받고 싶지만 이건 무리겠죠….
"선생 똥은 개도 안먹는다"라는 말이 있는데 선생님이란 직업은 스트레스와 체력 관리를 방학을 이용해 얼마나 잘했느냐에 따라서 한 학기를 잘 버틸 수 있느냐, 없느냐가 결정되는 것 같습니다.
방학은 놀기만 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교사에게 있어서 방학은 그나마 힘든 교직생활을 버티게 해주는 꼭 필요한 시간입니다. 너무 나쁘게만 보지 않아주셨으면 합니다. 교사도 사람인지라 스트레스가 풀려야 학생과 학부모님을 웃으며 대할 수 있고 직장 동료들과 원만한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한참 바쁘고 체력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지쳐있는 학기말에 선생님들끼리 사소한 다툼이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경험이 많을수록 아이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줄 수 있습니다. 방학 없이 일만 하는 선생님보다는 방학을 이용해서 이런저런 경험을 쌓고 아이들에게 생생한 경험담을 이야기 해 줄 수 있는 선생님이 스스로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좋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