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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 안 개구리

by yuri Mar 0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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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른들은 종종 "사람은 큰 물에서 놀아야 한다.", "노는 물이 중요하다"라는 말씀을 합니다.

 저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다 동네에서 나왔습니다. 그나마 고등학교는 집에서 버스를 타고 40분 정도를 가야 했으니 그게 당시 제 인생에서 가장 멀리멀리 다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나고 자란 제 고향을 벗어나는 게 참 두렵고 무서웠니다.


  담임 선생님, 부모님도 "어차피 교사가 될 거면 어떤 대학교를 나오는 게 뭐가 중요하니. 그냥 집 앞에서 편하게 다녀"라고 하셔서 대학에서 전액 장학금을 준다는 말에 홀려 집 앞에 있는 방 국립대로 다녔습니다.

 임용고시도 제가 태어난 곳에서 보고 싶었습니다. 이 지역에 대해서 너무 잘 알고, 여기에 친구도, 가족도 있으니 이곳을 떠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방은 수도권에 비해 인구가 적다 보니 일자리도 그만큼 적더군요. 문 앞에서 탈락의 고비를 마시고 1년 더 재수하게 되면서 수도권으로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적은 수의 교사를 뽑는 지역은 합격 커트라인 등락폭이 큰 편입니다. 그 지역이 그해 전국 최고 합격 커트라인을 자랑할 수도 있고 전국 최저 커트라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제가 시험 볼 당시는 그곳은 전국 최고 커트라인을 자랑해 탈락해서 무조건 많이 뽑는 곳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해 수도권으로 올라왔는데 정확히 반대가 되었습니다.

 '사람은 뚝심 있게 살아야 한다'고 하는데 그 뚝심을 지키지 못해서 혼자 외로이 떨어져서 살아야만 하는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올라오고 보니 어느 대학교를 나왔냐는 간판이 매우 중요하더군요. 다들 "어디 대학교 나왔어요?"라고 물어보지 "수석 입학했어요?", "대학교 때 성적이 어땠어요?"라고 물어보지는 않더군요.

 교사들 사이에서도 암암리에 명문대 출신과 아닌 선생님들로 갈렸고 학생들도 명문대 출신 아니면 선생님을 평가절하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대학원만큼은 꼭 서울대로 가리니'라는 다짐을 했습니다.




  혼자 타지에살다 보니 지연. 학연이 직장생활에서 얼마나 강하게 작용하는지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이 지역 출신 선생님들은 한 다리만 걸쳐도 다 아는 사람이었고, 같은 학교 선생님들은 똘똘 뭉치는 게 있었는데 저는 아무것도 없으니 혼자 무인도에 덩그러니 떨어져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물론 같은 지역, 같은 학교 선생님이 몇 분 계시기는 했지만 '남에게 혼날 바에는 나한테 혼나는 게 낫다'라고 생각하셨는지 너무 많은 조언을 해주셔서 오히려 더 위축되고 무서웠습니다.


  신규로 임용이 되고 1은 임용고시를 다시 보기 위해 공부를 했는데 1년 사이에 머리가 얼마나 나빠졌는지 완전 새롭게 공부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외워지지도 않고 공부하기 위해 책을 폄과 동시에 꿈나라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래서 근무년수를 차곡차곡 채워 교환형태로 제 고향으로 돌아가야겠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부모님께서 "서울대 붙어도 난 학비 그 이상은 지원해 줄 수 없으니 레슨비랑 생활비는 네가 알바하면서 해결해라"라고 씀하셔서 고등학교 1학년 말부터 선생님께 "저는 성적이 돼도 서울대에 안 갈 거예요"라고 말했다가 실기 시험 점수를 낮게 주셔서 장학금을 탈 때 약간 고생한 적이 있었습니다.

 악보를 못 외우고 실기시험을 치른 학생보다 악보를 끝까지 다 외우고 연주를 마친 제가 더 낮은 점수를 받은 게 이해가 되지 않았고 그래서 더 필기시험에 집착하게 되었습니다.


  저와는 다르게 서울대, 연대, 고대 나온 신규 선생님들무슨 의견을 제시하면 다들 "역시 명문대는 달라"라고 말하며 귀를 기울여주는 모습을 보면서 속으로 많이 질투했습니다.

 애들도 "선생님 어디 대학 나왔어요?"라고 질문을 한 후에 자기들이 생각하는 명문대 이름이 나오지 않자 은근히 저를 무시라는 모습을 보 혼자 속으로 열받아했습니다.


  '이 모든 건 다 내가 서울대를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야. 그때 부모님이 지원만 해줬어도 내가 이런 취급을 당하지는 않았을 거야'라는 과대망상을 꽤 오랫동안 펼쳤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부모님께서 학비는 지원을 해주겠다고 하셨으니 그때 진짜 서울대를 가고 싶었으면 집 앞에 있는 학교 음악교육과와 서울대 음악과가 같은 학군으로 묶여 있었어도 서울대로 원서를 접수한 후에 합격해서 서울로 올라갔으면 되는 거였습니다. 결국 서울대를 선택하지 않은 건 나였고 탓한 곳이 필요했던 저는 가장 편하고 만만한 부모님께 모든 원망을 쏟아부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애들이 "이 선생님 서울대 안 나왔어요?"라고 하면 "안타깝게도 서울대, 연대, 고대에는 음악교육과가 없단다. 그리고 선생님이 어디 나왔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네가 어디 갈지가 중요하겠지. 서울대 나온 사람에게 배운다고 다 서울대 가는 것도 아니고 그 반대도 아니란다 가장 중요한 건 눈앞에 있는 선생님에게 네 얼마나 배워가느냐겠지"라고 이야기고 넘깁니다.


  이제는 경력이 쌓여서 신규 때처럼 저랑 특정학교 출신 신규 선생님을 비교하는 사람은 없지만 있다고 해도 크게 신경 쓰 않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일은 잘하는 사람이 되야죠

  그럼 전 이만 퇴근하겠습니다."이라고 말하며 그 자리를 나올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대학원으로 라도 학력세탁을 하려고 명문대 대학원만 알아봤는데 지금은 육아로 정신이 없기도 하고 교육쪽 계통보다는 다른쪽에 흥미가 생겨 쪽으로 알아볼 생각입니다.


  초반에는 학연, 지연, 혈연이 강한 영향력을 끼치지 시간이 지나고 경력이 쌓이면 "내가 얼마나 잘하느냐"가 중요해지는 것 같습니다. 포장지가 아무리 예뻐도 포장지는 포장지입니다. 결국 포장지 보다 중요한 것은 안의 내용물니다.

 

  학연, 지연, 혈연이 있으면 초반 적응하는 데는 확실히 도움이 됩니다. 아무래도 기회가 더 많이 오고 실수도 관대하게 넘어가 줄 수 있으니까요. 그래도 결국에 사람은 나한테 도움이 되는 사람을 선택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주위에서 안 챙겨주면 또 어떤가요. 원래 인생은 독고다이 아닌가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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