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 발령을 받고 앞으로 일하게 될 학교를 찾아갔습니다. 전교사 출근일이기도 하고 업무 인수인계를 받는 날이라 전임자 음악 선생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 학교를 옮길 때는 반듯이 갈 수 있는 곳으로 써서 한 번에 가셔야 해요"라는 말씀을 해주셨는데 그때는 그 말의 뜻을 잘 몰랐습니다.
교사는 한 학교에 최대 5년간 근무할 수 있고 1년이 지나면 내신을 쓸 수 있습니다.
현 학교에서 1년만 근무한 후 내신을 내면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고등학교에서 중학교로 급을 바꿔서 근무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물론 이것도 자리가 있다는 전제 조건에서 이루어집니다.
공식적인 용어는 아니지만 1년 만에 내신을 내서 이동하는 것을 "부적응 내신"이라고 부르는데 이 자체를 좋게 보지 않는 분들이 계시기 때문에 보통은 1년 만에 내신을 쓰지 않습니다.
평소 부모님께서 "너무 멀리 살아서 우리 딸 얼굴 한번 보러 가기 힘들다"라는 말씀을 자주 하시고 "1년 만에 내신을 쓰면 사람들이 안 좋게 본다"는 말을 들어서 2년을 근무한 뒤 후에 매년 관외(청간) 내신을 냈습니다.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일해보고 싶다고 하니 감사하게도 여기저기에서 "○○ 지역은 일이 많다", "△△ 지역은 여기랑 비슷한 분위기다" 등의 말씀을 해주셔서 저의 운을 믿고 가기 어려운 곳만 골라서 썼습니다 :) 인사이동은 운이 필요한지라 운대만 잘 맞으면 들어가기 어려운 곳도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한번 찍은 곳 주변으로 주야장천 문을 두드렸습니다.
-3년 차-
"선생님 올해는 꼭 갈 수 있는 것 맞죠?"
"작년에는 ○연차 선생님께서 들어가셨으니 저도 갈 수 있지 않을까요?"
-4년 차-
"선생님 가고 싶은 곳 보다는 갈 수 있는 곳을 쓰세요"
"작년에 저보다 현임교 근무 경력이 낮은 선생님들도 들어가셨으니 올해 저는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요?"
"올해는 꼭 가셨으면 하네요…"
신규 발령지와 유독 인연이 깊어서 그런지 매년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인사이동 명단을 확인해 봤는데 제 이름 세글자가 없어 학기말에는 내신을 쓰기 위해 연수를 듣고 내신서를 제출하는 일을 몇 년간 반복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작년 기준으로 올해도 그렇겠지…'라고 생각해서 작년기준으로 봤을 때 여유 있게 들어갈 수 잇는 곳으로 썼음에도 불구하고 떨어지는 사람이 있잖아요. 그게 저였습니다. "올해는 꼭 가라"는 말씀에 하향지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떨어졌습니다.
어떤 업무를 맡던지 큰 의미를 두지 않았고 비담임을 주는 게 저를 배려한 학교의 결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인사이동 서류를 제출하러 갈 때마다 "올해는 갈 수 있죠?"라고 물어보는 다 저를 생각해서라고 착각했습니다.
담임을 할 사람은 부족한데 교권 보호 위원회에서 학급교체 결과를 받아본 경험도 있고, 학부모에게 탄원서도 받았고, 학생들을 무섭게 휘어잡지 못한 모습들 때문에 저는 담임을 할 자격이 없다고 판단하셨던 것 같습니다.
"어떤 업무든지 최소 3년 이상을 해봐야 그 일을 했다고 할 수 있다"라고 말하셔서 하기 싫지만 똑같은 업무를 3년 동안 했습니다.
"선생님은 비담임이어서 좋겠어요."
"선생님께서 이 자리 지원하시면 비담임하실 수 있죠. 저는 이제 다른 부서로도 가보고 싶어요."
"그 자리는 음악 선생님이 해야 줘"
"다른 학교에서는 음악 선생님 말고 다른 과목 선생님도 하신데요…"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라는 말이 있듯이 확실히 똑같은 업무만 3년을 하니 자연스럽게 지원단 활동도 하고 여러 장학사님들과 함께 교육청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노예도 대감집 노예가 낫다"라는 말이 있듯이 확실히 제가 일하는 분야와 관련된 다양한 교육청 활동들을 하다보니 돈이 어디에 있고 어떻게 해야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4년 차에는 가장 화려하게 대규모 인원과 예산으로 축제를 진행했습니다. 평소 예산이 부족해 사비로 초코파이, 자유시간 등을 구입해서 학생들에게 나눠줬는데 이런 걱정 없이 학생들에게 "너희가 일한 만큼 정당한 대가를 받아야지"라고 말하며 틈틈이 많은 간식을 사줬습니다.
어찌어찌해서 5년 차에는 담임으로 다시 복귀했고, 학년부에서도 일할 수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저는 제가 가고 싶었던 지역에서 다 떨어져 경쟁이 낮은 지역으로 이동했습니다.
지금 근무하고 있는 지역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를 하도 들어서 '적응을 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라는 걱정을 했지만 지금은 '더 빨리 들어올걸…'하는 후회를 합니다.
'내가 왜 이런저런 싫은 소리를 들어가며 거기에 남아있기 위해 아득바득 발악을 했나…'하는 생각이 종종 들지만 그래도 좋은 점은 처음을 매운맛으로 시작해서 그런지 지금은 뭐든 감사하고 '더한 것도 견뎠는데 이것 하나 못 견디겠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면 전 전임자 선생님의 조언에 따라 무조건 갈 수 있는 곳으로 이동할 것 같습니다.
사실 아직 관리자가 되지 않아 봐서 모르겠지만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위해 내신을 썼다가 못 가게 되는 게 왜 그렇게 민폐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학교는 매년 나가는 사람만큼 들어오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새로운 사람들 인사배치를 할 때 이동하지 못한 사람들도 같이하면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관리자를 해봐야 관리자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하는데 아직까지 저는 관리자가 꼭 되어야겠다는 마음이 없어서 그런지 그분들의 크고 넓은 뜻을 이해할 여력도 생각도 없습니다. 단지 한번 사는 인생 남한테 크게 폐 끼치지 않고 재미있게 잘 살다가 가고 싶을 뿐입니다.
요즘 뉴스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한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종종 접합니다. 그분들과 저의 경험이 같지는 않겠지만 비슷하게나마 겪어봤고 얼마나 힘든 상황인지 이해가 가고 공감이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친한 친구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너는 그래도 정규직이잖아"라는 말을 듣고, 동료 선생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어쩌겠어요. 다 그런 거죠…"라는 말과 함께 한숨을 쉬면서 술을 마시게 됩니다. 부모님께 고민을 말하면 혹시라도 제 입에서 "그만둘래요"라는 말이 나올까 봐 전전긍긍해 하는 부모님을 보게 됩니다.
"남의 돈 받는 게 쉬운 줄 알아?", "다 그렇게 살아", "너만 힘든 거 아니야", "우울증은 한가하니까 걸리는 병이야. 우울하다고 하는 거 보니까 배가 불렀구만…"이라는 말을 들으면서 이 시기를 보냈고 출구 없는 터널을 지나는 것 같은 답답함이 밀려왔습니다. 때로는 악에 받쳐 반듯이 승진해야겠다는 결심을 했고, 몇 년이 걸리더라도 나도 남들이 좋다고 곳에서 일하고야 말겠다는 쓸데없는 생각과 욕심이 생겼습니다.
지역을 바꾸고, 학교를 바꾸고, 급을 바꾸다 보면 '사람들이 나를 부적응자로 보면 어떻게 하지'라는 걱정이 듭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생각보다 나에게 별 관심 없고 환경을 바꾸면 생각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면 나를 둘러싼 많은 고민들이 해결됩니다.
일만 터지면 손이 발이 되게 싹싹 빌고, 학부모의 말에 눈물을 흘리며 공감하고 들어주라는 분이 계십니다. '이 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아이들을 올바르게 키우기 위해서 교사가 된 거지 누군가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기 위해 그 긴 시간을 공부한 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듭니다.
민원이 접수되면 주위에서는 잘 이야기해서 덥으라는 말을 합니다. 그런데 자꾸 덮어버릇하면 그 속에서 섞어 가래로 막을 일이 호비로도 막을 수 없게 되기도 합니다.
문제아들을 지도하다 보면 특정 분야에 대해서는 저보다 더 교칙을 잘 알고, 특정 법령을 꿰뚫고 있습니다. 모든 법령을 다 숙지할 필요는 없지만 내 업무와 관련된 법 몇개는 잘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법을 알고 매뉴얼을 잘 숙지해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아닌 일을 명확히 구분할 수 있게 되면 상대방의 무례한 태도에 잘 대처할 수 있게 됩니다.
오늘도 힘내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