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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목소리가 안 나오네

by yuri

교사가 되고 거의 매년 빠지지 않고 걸리는 병이 "목감기"입니다. 그래서 평소 집에 상비약으로 목감기 약을 많이 사놓는 편입니다.

교사들은 평소 분필 가루, 먼지 등을 많이 흡입하는 편이라 호흡기 질환에 자주 노출됩니다. 거기다가 평소 말을 하느라 목을 많이 사용하니 "성대결절은 내 친구요, 나의 반려자요"라고 생각됩니다.

어떤 선생님께서 웃으겟소리로 교사는 물에 빠지면 입만 둥둥 뜰 거라고 하셨는데 동감합니다. :)


오페라 가수들은 공연을 할 때 마이크를 사용하면 작은 성량으로도 큰 공연장을 채울 수 있기 때문에 목에 부담도 덜 가고 체력적으로 덜 힘듦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 성량으로 마이크 없이 only 목소리 만으로 공연장을 가득 채웁니다.

앰프를 통해 소리를 증폭시키듯이 오페라 가수들은 몸을 울림통으로 사용해서 소리를 증폭시킵니다. 허리를 세우고 복식호흡을 하면서 성대를 열어 소리가 앞으로 뻗어나갈 수 있게 하면 안정적으로 큰 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요즘 오페라 가수들은 공연장 크기에 따라서 마이크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오페라가 만들어지고 활성화 되던 시기에는 마이크가 없었기 때문에 전통을 지키고자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물론 제가 수업 시간에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이 이유 때문이 아닙니다.




동안이 있고, 노안이 있듯이 사람들마다 성대 수명이 다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조금만 말을 많이 해도 목이 쉬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하루종일 큰소리로 떠들어도 목이 쉬지 않습니다.


노래방에 갔는데 목이 쉬지 않으면 노래방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 30분에서 1시간 내내 소찬휘의 "Tear"처럼 고음을 내지르는 노래를 부르고 나옵니다.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밖으로 나오면 살짝 목이 칼칼한 상태가 되지만 그래도 물을 마시고 조금만 쉬면 금방 회복되었습니다.


성악과 교수님께서 "자네는 성악을 전공해도 잘했겠네"라고 말씀하시고, 판소리 교수님께서도 "자세는 판소리를 해도 잘했겠네"라고 말씀하셔서 전 진짜 제가 잘하는 줄 알았습니다. 모의 수업을 봐주시던 교수님께서도 "성량이 좋네요. 뒤에까지 쩌렁쩌렁하게 들려요"라고 말씀해 주셔서 전 더욱 목을 막 썼습니다.




목이 좀 불편해서 수업 시간에 마이크를 사용하면 학생들은 어김없이 "잠 와요", "귀에 거슬려요" 등의 말을 합니다. 그러면 전 마이크 전원을 끄고 생목으로 수업을 합니다.

평소 발음이 아나운서처럼 좋은 편이 아니기 때문에 마이크를 사용하면 더 두리뭉실하게 들려 학생들이 느끼기에는 "웅얼웅얼"하게 들렸던 것 같습니다.


데뷔 때만 해도 소리가 시원하게 뻗어나가면서 고음을 잘 불렀던 가수가 경력이 쌓이고 나이가 들수록 목소리가 낮아지면서 고음을 부를 때 목소리가 갈라지는 모습을 종종 봅니다. 이게 큰 소리를 내면서 성대에 스크레치가 많이 생기고 마모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인데 저에게는 절대 오지 않을 것 같던 그 순간이 드디어 찾아왔습니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목이 칼칼하길래 '물 마시고 쉬면 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을 하고 출근을 했는데 이상하게 말을 하면 할수록 기침이 나오고 목소리가 나오지 않더군요…. 그때 알았습니다. 말 못 하는 것이 얼마나 답답하고 힘든 것인지요….


목소리가 안나오는 상황이였기 때문에 할 말이 있을 때는 TV랑 노트북을 연결한 뒤에 한글 파일을 띄워놓고 타이핑을 쳐서 필담을 나눴는데 확실히 학생들의 집중력이 확!확! 떨어지는 것이 눈으로 보였습니다. 수업은 해야 되는데 목소리는 안 나오고 애들은 집중을 안 하고 총체적 난관이였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마이크를 들었습니다.

원래 마이크는 입 앞에 대고 사용을 해야 하나 목소리가 작아서 그런지 잘 들리지 않은 것 같아 마이크를 목에 직접적으로 대고 사용을 했습니다.

그 모습이 웃겼는지 고맙게도 학생들이 수업을 열심히 들어주더군요….




지금 생각해 보면 제가 일반인들보다 성량이 좋은 건 성대가 튼튼해서라기보다는 관악기를 오래 했기 때문에 크게 의식하지 않아도 복식호흡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고, 잠깐이지만 성악과 판소리를 배워 본 경험이 있어 소리를 앞으로 뻗어서 내는 것이 습관이 되어서 인 것 같습니다. 즉 발성이 좋아서 큰 소리를 내는 것일 뿐 성대가 튼튼해서 큰 소리를 잘 내는 건 아니였던 것 같습니다.


어떤 가수들은 큰 공연이 있는 전날이면 술을 마시지 않고, 대화를 한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술을 마시고 말을 하는 것도 결국 성대에 무리를 주기 때문에 되도록 안하는 것 같습니다.

건조한 환경은 특히 목에 스크래치를 잘 내기 때문에 목이 자주 쉬는 분들은 평소 틈틈이 물을 마시면서 성대를 촉촉하게 적셔줘야 합니다. 그리고 찬물보다는 따뜻한 물을 마셔야 합니다. 결국 성대도 근육이기 때문에 차가운 물을 마시면 근육이 수축하게 됩니다.


관리를 해서 그런지, 성대가 강해져서 그런지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 경험을 한 뒤로는 목에 마이크를 대고 수업을 할 정도로 목소리가 안 나온 적은 없습니다.

예전에 근육통이 심하게 와서 운동을 못하겠다고 하니 관장님께서 "원래 이럴 때 더 열심히 운동을 해야 되는 거야. 그래야 근육도 붙고 강해질 수 있어"라고 말씀하셨는데 성대도 그런 것 같습니다. :)


요즘 목소리가 낮아지고 걸걸해졌다고 느껴지는데 이러다가 아저씨 목소리가 되는건 아니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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