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어린이집-유치원-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대학교 순으로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딱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젊을수록 에너지가 넘쳐서 뒤돌아서는 순간 사라지고, 뒤돌아서는 순간 사고를 칩니다.
중학교는 8시 40분, 고등학교는 9시까지 출근하지만 대부분은 훨씬 더 일찍 출근을 합니다. 등교지도, 독서지도, 봉사활동 지도 등 할 일이 많습니다.
담임을 하면 아침을 산뜻하게 "선생님 저 오늘 학교에 늦게 갈 것 같아요"라는 문자로 시작합니다.
신규 때는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매일 밥 먹고 앉아서 공부만 하다가 몸을 쓰는 일을 하다 보니 더 피곤했던 것 같습니다.
아침 8시에 출근을 해서 등교지도나 독서지도를 하고 교무실에 앉아서 지각생, 결석생 파악을 하고 8시 40분부터 아침 조회에 들어갑니다.
9시까지 이 말, 저말 저희 반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하고 1교시 수업 준비를 위해 음악실로 이동합니다. 절대 선생님 없이 애들만 있는 시간을 최소화하라는 엄명에 쉬는 시간 틈틈이 교실, 교무실, 음악실을 오갑니다.
과목이 음악이다 보니 가창 수업이 있는 날이면 안 그래도 말을 많이 해서 힘든데 노래까지 불러야 해 감기는 눈꺼풀을 커피로 달래며 에너지를 충전합니다.
최대한 빨리 점심을 먹고 교실에 가서 앉아있습니다. 분리수거가 있는 날이면 3분 컷으로 밥을 먹고 분리수거장으로 향합니다.
쉬는 시간, 공강시간 틈틈이 학생 상담을 하고 자체휴강을 하고 있는 아이에게 연락을 합니다. 청량감 있는 물소리와 짹짹이는 새소리가 반겨주는 통화 연결음을 들으며 시간을 보냅니다. 좋은 소리여도 오래 듣기 위해서는 인내심이 필요하기에 순간순간 올라오는 빡침을 억누르며 통화 연결음을 감상합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여보세요"를 들으며 얼마나 반갑고 '이놈의 시끼를 그냥'이라는 분노가 함께 올라오는지 모르겠습니다.
음악 선생님을 담임으로 둔 지라 특별실 청소가 많은 우리 반 아이들이 도망가지 않고 청소를 잘하고 있는지 여기저기 학교를 한바탕 휙 돌아본 후에 하교를 시킵니다.전달사항은 쿨하게 단톡방에 올려줍니다.
아이들을 하교시킨 후에 만보계를 확인하면 자랑스럽게 1만 보가 찍혀있습니다.:)
퇴근하면 잠들기 바빴던 것 같습니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와 잠을 자고 나면 어느덧 8시~9시가 넘어있습니다. 분명히 파란 하늘을 보고 집에 왔는데 눈떠보니 검은 하늘이 되는 마법을 만납니다.
주섬주섬 저녁을 먹고 스트레스 해소 차 드라마를 보면 11시, 12시가됩니다.
일요일 밤이면 지나가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붙잡기 위해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sign"을 부르며 '시간아 가지 마'라고 울부짖습니다.
처음에는 매우 의욕적으로 일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아침 등교맞이를 하면서 자울자울하는 제 모습을 보신 동료 선생님께서 한 말씀하십니다.
"선생님 혹시 운동하세요?"
"아니요. 운동을 할 시간이 없어요. 집에 가면 자기 바빠서요"
"선생님 교직은 체력전이에요. 살기 위해서는 운동을 해야 해요"
그 뒤로 스피닝, 킥복싱, 필라테스 등 열심히 운동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씩 퇴근길에 운전을 하며 자울자울하기 때문에 남편이 사고 날까 봐 차에 온갖 전자장비를 달아두었습니다. :)
어렸을 때는 학교마다 음악선생님이 한분씩 계셨기 때문에 음악 선생님은 순회 교사를 안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학생 수가 줄어들고 교사 수도 줄어들면서 이 학교, 저 학교 3개 이상의 학교를 돌아다니면서 음악수업을 해야 되는 년도를 종종 만납니다.
학교에 음악실이 음악 수업을 진행하는 교사 수만큼 있으면 좋겠지만 음악실이 없는 학교는 끌차를 이용해서 매 수업시간 신디사이저를 들고 다녀야 했기 때문에 여러모로 불편했습니다. 거기다가 요즘 애들은 악기를 개인별로 구매해서 가져오는 게 아니라 학교 예산으로 악기를 단체로 구매한 후에 그 악기를 돌려가며 사용하기 때문에 30개에 달하는 개인악기를 매 음악시간마다 들고 다니는 건 매우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었습니다
이런 경우 교과전담 도우미 학생을 두고 "생기부 잘 써줄게"로 꼬시면 되지만 그런 말을 잘하지 못하기도 하고 학생들이 아무도 지원을 안 해서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라는 만화영화 <캔디>의 주제가를 속으로 부르며 열심히 옮겼습니다.
이 학교 저 학교 순회를 나갈 때 제일 안 좋은 점은 방학이 없다는 것 같습니다.
교사로서 최고의 복지이자 거의 유일한 복지가 방학인데 순회를 다니면 학교마다 방학 일정이 달라서 이 학교가 방학하면 저 학교가 개학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특히 3개 학교 이상 다니게 되면 길어봐야 방학이 일주일도 안됩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제가 순회를 다닌 학교들은 음악이 100% 수행평가로 진행됐기 때문에 수행평가만 2배, 3배로 보면 됐습니다. 대신 다른 과목은 시험을 보기 때문에 이 학교, 저 학교 시험감독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운동은 요가나 필라테스처럼 몸매를 예쁘게 만들어주는 것보다는 스피닝, 킥복싱이 더 잘 맞았던 것 같습니다. 체력도 키워지고 고함을 지르며 운동을 하면 스트레스도 일부 해소되는 것 같았습니다.
학교 근처에서 살 때는 근처 킥복싱장을 다녀서 종종 학생들이랑 같이 운동하는데 학교에서 제가 어떤지를 잘 아니까 아이들이 미트를 대주면서 "선생님 ○○이 생각하면서 치세요", "이 정도로는 화가 풀리지 않을 것 같은데요. 더 세게 치셔야 줘"라고 말하며 잘 잡아줍니다. 미트를 잘 잡아주면 "팡" 소리가 나면서 때리는 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좋은 점은 저보다 훨씬 잘하는 애들이 1:1로 붙어서 가르쳐주는 겁니다. 역시 실력이 빠르게 느는 방법으로는 개인레슨만큼 좋은 게 없는 것 같습니다.
지금은 육아를 하느라 학교에서 퇴근하면 집으로 바로 출근을 합니다. 근무 중 운동을 할 수 없어서 틈틈이 걷는 것만이 제가 하는 운동의 전부지만 경력이 늘고 나이가 들수록 요령만 늘어서 누가 "이렇게 해"라라고 해도 안 움직입니다. 제 몸은 천근만근처럼 무거우니까요. :)
작년에 가르치던 아이들이 "선생님 요즘은 많이 편하신가 봐요. 살이 좀 찌셨는데요"라는 말을 들으면 '이러면 안 되지 살을 빼야지'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나이 들었는데 날씬한 것도 예의가 아니야"라고 말하며 가볍게 웃어넘깁니다.
하루 종일 말하고 서있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체력을 요구합니다.
신기한 건 몸도 적응을 하는지 연차가 쌓일수록 덜 힘들더군요. 처음에는 한 시간만 서있어도 힘들었는데 지금은 조금 더 오랫동안 서있을 수 있습니다.
고음을 못 내는 아이들을 지도할 때 최대한 소리를 높게 많이 질러보라고 합니다.
사람들의 한 발작, 한 발작이 모여서 없던 길을 만들어지듯이 고음도 자꾸 소리 내 버릇하면 어느 순간 길이 나서 편하고 자연스럽게 고음을 낼 수 있게 됩니다.
어쩌면 우리네 인생도 마찬가지인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근무하면서 스트레스로 암에 걸리시거나, 우울증으로 정신과 약을 복용하고 계시거나, 과로사하는 선생님들을 종종 만납니다.
"교사라는 직업이 스트레스가 많은 직업이라 일찍 사망해 연금을 열심히 들어봤자 의미 없다"라고 아는 선생님께서 그러셨는데 전 제가 낸 돈만큼은 다 쓰고 죽어야 하기 때문에오늘도 열심히 운동을 해볼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