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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아이로 키우고 싶으신가요?

by yuri Mar 2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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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저기서 영재 관련 프로그램을 어린아이 때부터 진행해서 그런지 중학교에 근무하다 보면 "우리 아이는 ○○영재예요"라는 말씀을 하시는 부모님들을 종종 만납니다. "우리 아이는 ○○고에 가야 되니까 생기부를 신경 써서 써주세요."라고 요구하시지만 담임 혼자서 학교생활기록부를 쓰는 게 아니기 때문에 결국에는 본인이 그 분야에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공부해 왔는지를 독서, 교과, 진로 등의 특기사항란 고르게 잘 나타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 아이가 친구를 많이 사귈 수 있게 주인공으로 만들어주세요. 초등학교에서는 담임 선생님이 그렇게 해주셨어요"라고 요청하셔도 요즘은 학생인권조례 때문에 반장을 불러다 "누구 누구랑 같이 다니면서 친하게 지내라"라는 말을 섣부르게 할 수 없습니다. 담임 선생님이 교실에 자주 올라가 보면서 혼자 앉아 있는 친구에게 말을 걸고 상담을 진행할 수는 있으나 여러 명이 함께하는 단합 프로그램을 초등학교처럼 수시로 진행할 수는 없습니다. 방과 후에 반 아이들을 학교에 남겨서 단합 프로그램을 진행하면 바로 학부모님에게 전화가 옵니다. "선생님 지금 시간이면 애가 학원에 가 있어야 되는데 아직까지 학교에서 잡아두시면 어떻게 해요. 애 학원비가 얼마인 줄 아세요?"


  "우리 아이는 이런 걸 힘들어하니 선생님께서 각별히 신경 써 주세요."라고 이야기하셔도 아이가 학교에 있는 모든 시간을 담임 선생님과 함께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결국 나 스스로 자신을 챙길 수 있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부모가 원하면 언제든지 아이의 학교생활을 관찰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부모의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순간 즉각적으로 개입해서 문제를 대신 해결해 줄 수 없기 때문에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십문 공감하나 아이가 클수록 아이를 향한 부모의 관심과 개입은 줄여주시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청소년기 이전의 아이들은 확실히 부모가 아이에게 많은 관심을 가져주고 사랑을 표현해 줄수록 잘 자랍니다. 하지만 자아정체성이 형성되는 청소년기에도 부모가 아이의 모든 일거수일투족을 관리하고 통제하며 아이 스스로 이겨내야 할 슬픔까지 미연에 차단해 버리면 아이는 온전한 성인으로 자랄 수 없게 됩니다. 


  "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실 고생은 안 하는 게 좋지만 그렇다고 고생을 전혀 하지 않은 것 역시 문제가 됩니다. 사람은 한계에 부딪힐 때 나에 대해서 잘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답을 맞추면 기분이 좋지만 내가 뭘 모르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아이가 힘들때 부모와 선생은 함께 있어주고 조언을 해줄 수는 있지만 문제에 대한 해답은 반듯이 아이 스스로 찾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머님 저희가 초등학교처럼 아이와 모든 시간을 함께하지는 못합니다. 과목별 준비물과 수행평가가 일정은 아이 스스로 챙겨야 합니다. 어른이 되면 결국 아이 본인 스케줄 관리는 본인이 스스로 해야 되는데 중학교부터는 이를 미리 연습해 보는 것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어떨까요. 학급에 수행평가 일정을 공지해 주는 학생을 한 명 두기는 하겠지만 그 친구가 실수로 누락할 수도 있으니 부모님께서 한번 더 체크 부탁드립니다."라고 말씀드립니다.


  "선생님 우리 애가 제 말은 전혀 듣지 않아요. 집에 있는 시간보다 학교에 있는 시간이 더 많으니 선생님께서 잘 이야기해 주세요."라고 요청하시지만 사실 그날 저희 반 수업이 없으면 공식적으로는 조회, 종례 때만 아이를 만나기 때문에 부모님 보다 담임이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더 적을 수 있습니다. 같은 장소에만 있을 뿐이지 저희도 부모님처럼 아이 얼굴 보고 이야기할 시간이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 1명의 아이만 케어하는 것이 아닌 28명 이상의 아이들을 케어해야 하고 중간중간 수업도 하고 행정업무도 처리해야 합니다.



 

  누군가 저에게 "어떤 아이로 키우고 싶어요?"라고 묻는다면 저는 "기본을 잘 지키는 아이로 키우고 싶어요"라고 말할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쇼팽이나 리스트처럼 역동적이고 현란한 손가락 움직임을 요구하는 곡이 연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탄탄한 기본기를 요구하는 모차르트 곡이 더 연주하기 까다롭습니다. 빨리 치는 것은 손가락 연습을 많이 하면 어느 정도 따라올 수 있지만 모든 소리를 깔끔하게 연주하는 것은 결국 지루하고 귀찮은 하농과 같은 기본기 연습을 얼마나 꾸준히 했느냐에 따라 완성도가 확 갈립니다.

 학교에 축구를 하다 보면 득점을 하는 것은 공격수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아이들은 다들 공격수를 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골키퍼와 수비수가 약하면 대량의 실점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프로로 갈수록 수비수의 역할이 중요해집니다.


  공부만 잘하면 아이가 학교에서 포커를 치든 선생님들에게 대들고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든 상관하지 말라고 하시는 부모님들을 종종 만납니다.

 사회생활도 결국에는 기본이 탄탄한 사람이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존중받고 싶은 만큼 다른 사람을 존중할 수 있는…, 사람 대 사람 간의 관계에서 지켜야 할 선을 지키는 사람만이 위로 위로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적은 좋지만 인간성이 나쁜 사람은 초반에는 잘 나가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결국 어느 순간 한계에 봉착하게 됩니다.


  진로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학교를 다닐 때는 인생에 전부가 공부고, 공부를 잘하는 사람만이 성공할 것 같지만 좀 더 길게 보면 그렇지도 않단다. 나 때는 공부 못하는 사람이 실업계에 가고,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 인문계에 갔는데 실업계로 진학해 컴퓨터와 AI 공부를 한 친구의 친구는 구글에 입사해 선생님보다 몇 배의 연봉을 받고 있단다. 그리고 그 연봉도 본인이 쉬고 싶어서 일을 줄여서 그렇지 원하면 얼마든지 더 늘릴 수 있다는 게 너무 부럽더라고…"라는 말을 했습니다.




  네편, 내편으로 편을 나누기 전에 사람 대 사람으로서 자기 말만 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고 끝까지 들어주는 게 기본이라고 생각하는데 요즘은 그 기본을 지키는게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흑과 백처럼 세상을 이분법으로만 바라보는 경향이 강해지는 것 같습니다. 한남, 한녀로 사람을 나누기보다는 같은 사람 대 사람으로서 서로의 입장을 생각하면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보면 좋으련만 "페미니스트다", "수준 떨어지는 한남이랑은 이야기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깝고 답답함이 밀려들기도 합니다.


  사회가 갈수록 기본을 지키기 힘들어지고 서로 대우받지 못해 안달난 것 같다고 느껴집니다. 대우를 받는 사람이 있으면 대우를 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인데 서로가 동등한 입장으로 서로 서로를 대우해 줄 수는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존그레이, 동녘라이프, 2021)라는 베스트셀러가 있습니다. 사람은 다 자기만의 행성에서 온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남자인데 여자 같은 성향의 사람도 있고 여자인데 남자 같은 성향의 사람들도 있습니다.


  프로의 세계에서는 기본기가 탄탄한 사람들이 살아남는 것처럼 결국에는 인생이라는 긴 스펙트럼에서 보면 사회생활의 기본을 잘 지키는 사람이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들과 잘 섞이면서 늦은 나이까지 사회생활을 계속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란한 기교를 자랑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기간은 초반, 길어봐야 중초반까지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승부는 누가 결승점을 통과했느냐지 초반에 얼마나 빨리 달렸냐가 중요한 것은 아니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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