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전으로 거슬러 가다.
2000년 새해 그는 군대 휴가를 나왔다. 초등 5학년때 짝이었던 남자아이 친구를 작은 빵집에서 우연히 만났다. 그 옆에 그가 앉아있었다고 한다. 우린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한 채 5년이 흘렀다.
그는 고향친구 모임에 친구를 따라왔고 몇번의 만남이 있었다. 친구들끼리 무박 2일로 여행을 떠났다. 그는 차에서 온종일 졸기만 하였기에 목소리를 들을 수가 없었다. 저녁에 삼겹살을 구워 먹기 위해서 프라이팬이 필요했다. 집에서 가지고 온 프라이팬을 쑥스럽게 꺼내던 그였다. 여행 마지막날 친구들이 농담을 했다.
고향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던 나, 복학 준비로 고향에 내려온 그... 고향에서 만날 사람 없으니 둘이 영화라도 보라고 했다. 그렇게 우린 친구에서 연인 사이가 되었다. 훗날 고등학교 동창생이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 남녀 공학이었지만, 남녀는 완전히 분리된 학교였다 )
그가 복학을 하고 나는 직장인으로 장거리 연애를 하였다. 친구에서 연인이 되었기에 무엇보다 대화가 잘 통하였다.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충당하던 그였기에 생활력이 강한 모습이 마음이 들었다. 2년 반을 사귀고 그가 취업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결혼을 생각했다. 29살이었다. 장거리 연애이었기에 상대에 대한 집안 환경, 시어머님의 자리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 입에서는 어머님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듣지 못했다. 모든 일을 혼자서 척척 해내는 독립적이고 주도적인 남자였다.
결혼 이야기가 오고 가면서 예비 시어머님과 식사 자리가 있었다. 평소 신지 않은 구두를 신고 갔다. 발가락에 힘을 주고 걸었더니 걸음걸이가 자연스럽지 않았다.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른 채 식사자리는 끝이 났다.
며칠이 지나고 낯선 번호로 전화가 온다. 어머님이시다. 대뜸 본인이 하는 식당으로 오라는 것이다. 그는 타 지역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기에 혼자 갔다.
이유도 묻지 못한 채 어머님과 두 번째 만남이 이루어졌다. 문을 들어서자마자 대뜸 걸어보라고 한다. 다른 직원도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 장애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처음 만남에서 걸음걸이가 이상하게 보였다고 한다. 어떠한 거름망도 거르지 않고 본인이 생각한 것을 표현하는 분이시다. 상대에 대한 생각은 없다. 본인이 맞다고 여긴 것에 대해 확인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몸이 떨리고 눈물로 앞을 볼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후 나는 1박 2일을 꼬박 울음으로 보냈다. 날카롭고 큰 목소리, 무뚝뚝한 표정, 표정 없는 얼굴, 배려 없는 말투 등이 내 몸에 구멍을 내기 시작했다.
딸이 당한것을 보고 엄마와 아빠는 이 결혼에 대해서 깊이 고민을 하셨다. 타인에 대해서 모진소리를 하지 못하시는 분들이다. 내 감정만을 추스리기에 나 또한 급급했다. 친정오빠가 그에게 전화를 하였다. 그는 깊이 사과를 하였고 결혼은 그렇게 진행되었다. 그 또한 결혼을 진행하면서 본인의 엄마에 대한 또 다른 모습들을 알게 된다. 그가 나의 방패막이되어줄 것이라고 여겼다. 어머님의 자리는 컸고 큰 오산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