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뀌지 않구나 다시 실감하다.
여행 둘째 날이다. 아들, 딸 집에 이틀째 머무는 날이기도 하다. 베트남 음식은 입에 맞지 않으신지 쌀국수 한 번으로 족하다고 하신다. 친정아빠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삼겹살을 저녁에 먹자고 하신다.
넓은 돌판에 콩나물, 김치, 삼겹살을 구워 먹을 수 있는 곳으로 선택했다. 방이 따로 마련되어 있어서 오붓한 공간이다. 첫째 아이와 친정아빠, 내가 나른히 앉고 맞은편에 어머님과 둘째 아이와 남편이 앉았다. 모둠고기를 시키자 , 돌판에 다양한 고기부위가 올려졌다. 6명이 젓가락질을 한 번씩 해도 고기는 순식간이었지만 고기를 구워주는 언니의 손놀림은 빨랐다. 어머님 앞에 첫째 아이가 앉았다. 아이가 한번 먹을 때마다
" 많이 먹어라."
" 많이 먹어라."
" 많이 먹어라."
옆에 앉은 친정아빠가 고기가 익으면 첫째 아이의 접시에 먼저 고기를 올려놓으셨다. 아이의 접시가 비면 반찬, 고기를 채워주셨다. "많이 먹어라"라는 말은 안 하신다. 아이의 속도에 맞게 그냥 올려주신다. 천천히 음미하면서 아이는 식사자리를 즐기고 있다.
돼지고기 6인분, 더해서 2인분 총 8인분을 먹고 있는 중이다. 대화주제가 먹는 이야기로 넘어가고 있다.
" 왜 애들이 말랐냐? 또래보다 키가 작지 않니?"
" 적게 먹어서 그런 거 아니니?"
어머님의 목소리 톤이 올라가고 말투가 딱딱해진다. 쩌렁쩌렁한 목소리는 방안을 가득 메운다. 며느리한테 하는 말인지, 첫째 아이한테 하는 말인지 구분이 안 간다. 어머님의 낯빛이 울그락불그락하기 시작했다.
'뭐가 불만이실까?'
화기애애하게 대화하면서 양껏 잘 먹고 있는데 뭐가 불편하실까?
배가 찼지만 어른들은 탄수화물이 빠지면 섭섭하니 냉면이나 밥을 시키기로 했다. 6명이지만 후식 냉면으로 5개만 시켰다. 나는 남편 거를 조금 덜어먹을 작정이었다. 냉면이 나왔다. 냉면 가락이 조금 질긴 편이었다. 첫째는 부정교합으로 냉면 가락을 잘 씹지 못하고 있었다.
" 넌 왜 그렇게 깨작거리면서 먹고 있니?"
" 왜 그렇게 잘 먹지 못하니 , 그러니깐 살도 안 찌고...."
어머님의 불편한 음색이 방안에 가득 퍼진다.
드디어 터졌다. 눌러왔던 부정적인 멘트가 거침없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는다. 아이들에게는 아무 이유 없이 비난을 받게 하기 싫다. 남편과 나는 동시에
" 어머님 !"
"아이가 잘 먹고 있는데 , 그만하세요."
라면서 정지를 시켰다.
그 순간 어머님은 5개 냉면 그릇을 보고 화가 더 나신 듯 소리를 지른다.
" 왜 너는 맨날 , 아이들을 양껏 먹이지 않냐? 저번에 청와대 갔을 때도 수제비도 적게 시켜서 아이들 굶기지 않았냐?"
벌써 1년전의 일이다. 청와대 구경가고 싶으시다고 , 서울 아들집에 놀러오셨을때이다. 양이 많든 적든 3명이면 남겨도 3개의 음식을 시키셔야 하는 분이다. 나눠서 먹였다고 며느리한테 머리가 그렇게 안돌아가냐는 폭탄 발언을 하셨다.
어머님의 신경질적인 목소리와 화는 온방을 감싸 안았고 시한폭탄 같은 뒷말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결국은 아이의 먹는 것은 또 내 문제이구나. 며느리한테 하고 싶었던 이야기였다. 어머님의 앞에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사돈어르신 친정아빠가 앉아있으셨는데 말이다.
" 어머님!! "
하면서 나도 목소리톤을 높였다.
그러자 남편은 나를 보고 눈치를 주면서 , 본인이 어머님과 상대를 하겠다고 신호를 주었다.
"잘 먹고 있는데 뭐가 문제이냐?"
" 쟤는 왜 아이들 거는 적게 시켜서 나눠먹게 하냐? "
" 고기 8인분이나 먹었는데 왜 적게 먹었냐 , 그리고 애 엄마는 내 것 덜어주려고 했다."
라고 남편이 반격하였다.
화가 끝까지 나신 어머님은 우리의 말이 들리지 않고 , 본인의 화가 풀릴 때까지 소리를 높였다. 아무것도 눈에 보이지 않으신 것 같다.이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 비행기 6시간 타고 아들 만나러 온 귀한 시간인 것을 , 더욱이 본인이 사돈어른과 함께 여행도 제안했는데 말이다.
나는 친정아빠 볼 면목이 없었다. 아빠의 눈치를 보니 당황도 하셨고 속도 많이 상하신 것 같았다. 본인이 딸이 시어머님한테 이유없이 당하고 있는것을 목격하였으니 말이다. 남편은 강경하게 어머님한테 정지할 것을 요구하였고 , 그렇게 식사자리는 마무리되었다.
나는 어머님을 보고 싶지 않았다. 또 반복되는 거구나. 바뀔 줄 알았고 조심할 줄 알았는데 실망감이 컸다.
잠시나마 잘해드려야겠다는 마음이 저 멀리 달아났다. 남은 여행기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도 난감했다. 친정아빠에게 이 상황을 어떻게 이야기해드려야 할지...친정아빠는 아무런 말도 없으시고 입을 닫으셨다.
집에 도착해서 어르신들은 각자 방으로 들어가셨다. 어머님은 아들이 본인한테 큰소리쳤다고 서운하다는 것이 가장 컸다. 당장 오늘밤이라도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가고 싶다고 하셨다. 역시 본인 위주이다.
이해해 보려고 노력했지만 이 순간이 오면 어렵기는 매 한 가지다. 고쳐질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또다시 반복되니 지치기도 한다. 내 마음은 자꾸 멀어지게 되면서 안부전화의 횟수가 적어지게 되었다. 마주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쳐지기나 할까? 어머님이 어렸을 때 먹는 것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으셔서 그렇다는 이야기는 전해 들었다.
그래서 이해해보려고 하였다. 하지만 앞뒤 보지 않고 급발진하시니 항시 불안하고 좌불안석이다. 몸속에 지뢰를 가지고 다니는 기분이다. 자주 보지 않는 것이 답인지 모르겠다.
17년이 되니 부부가 많이 바뀌었다. 예전은 속상함에 남편을 향해서 원망을 쏟아내었고 싸움의 발단이 되기도 했다. 이젠 남편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이런 상황에서도 잘 자란 남편을 보니 안쓰럽기도 했다. 동지애가 더욱 짙어지게 되었다. 하루 일과를 마친 우린 집 앞 생맥주집으로 갔다. 수고했다고 서로를 응원해 주기로 했다. 마음속에 응어리로 가지고 있으니 나만 상처가 되고 아팠다. 상대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이고 또 반복되었다. 상처 받지 않고 결혼생활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궁리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