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날 남편을 보내고 완전한 가장이 되었다.
12.3 계엄이 일어나고 80일이 훌쩍 지났다.
나는 우리 남편과 매일 일 문제로 자주 통화 한다.
요즘 남편의 상태가 말이 아니다. 남자의 갱년기와 우울증이 같이 있는 것 같다.
거기에 하나 더 보태자면 봄도 타나? 하는 생각도 해본다.
남편이 어디 누구와 편하게 속마음을 이야기하겠나? 오롯이 나밖에 없다.
모든 상황을 알고 있는 사람이 나 밖에 없어서 일 것이다. 그러나 내가 잘하는 것이 이야기 들어주는 것이어서 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 어떤 이야기를 해도 수긍해 주고 이해해 주고 비난하지 않는다.
거기에 내가 해결책을 척척 내놓으면 좋으련만 그렇지는 못한다. 나의 능력이 여기까지인 것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남편이 이동하는 중에 전화가 왔다.
나: 여보세요
남편: 응 자기 목소리 듣고 싶어서 전화했어
나: 응. 그래
남편: 그래도 다행이다. 당신이랑 대화할 수 있어서...
나: 응? 무슨 소리야?
남편: 나를 잘 이해해 주고 나를 잘 알기도 하고 이러면 안 되는데 자꾸 당신한테 의지하게 된다.
나: 그러니깐 부부지 그리고 내가 이야기는 잘 들어주려고 하니깐
이런 식의 대화가 오고 갔다. 그러면서 사무실 이야기, 사람과 부대끼는 이야기, 금전적 이야기, 며칠 전 있던 월례 강좌 이야기를 하다가 가장의 관한 이야기를 하게 되면서 12.3 계엄 때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다.
남편은 12.3 계엄이 있기 전 집에 퇴근해서 피곤하다며 진하게 몸을 뜨거운 물에 담그고 싶다고 하면서 욕조에 물을 받기 시작했다. 그렇게 진하게 피곤한 몸을 뜨거운 물에 의지하고 있을 때 나는 막둥이 아들에게 장난감 그만 가지고 놀고 이제 잘 준비하라고 잔소리하고 있었다.
TV는 혼자 사건 사고를 전하고 있었고 그렇게 평범한 하루의 마무리를 하고 있던 우리 식들이다.
갑자기 뉴스 특보라고 나오며 TV에서 윤석열이 나오며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있었다.
나는 응? 계엄? 왜? 왜?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었다.
나는 남편에게 여보! 비상계엄이래!라고 소리쳤고 TV에 나오는 윤석열 비상계엄선포 내용을 듣고 있었다.
어제 뉴스에서 윤석열이 상인들 손을 잡고 힘드시죠? 조금만 힘내라고 했던 생각이 났다.
그런데 지금 내용은 국민들이 힘들지 않게 빠르게 진행할 것이라고 했으며 참아달라고 했던 것 같다.
야! 이게 무슨 소리야? 이렇게 인두껍을 쓰고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다니! 미쳤다.
계엄선포 후 점점 현실로 다가왔다. 내가 역사 이야기로 들었던 계엄 이야기 그 끔찍했던 이야기가 현실로 재현될 것 같았다. 아! 어떻게 해야 하지? 머리는 멘붕이다. 뉴스에서는 계속 비상계엄을 떠들고 있다.
국회의원들이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국민 여러분 국회로 와 주십시오"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남편은 주섬주섬 옷을 입고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준비를 마친 남편이 다녀올게라고 했다.
남편을 말리지 않았다. 내 남편은 그런 사람인 걸 안다.
남편을 말린다고 말려지는 사람도 아니고 누군가 가야 한다면 가고자 하는 사람이 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늦둥이 아들은 무엇을 알았던 것일까? 아빠 앞에서 재롱을 한참을 떨었었다.
남편은 나가기 전 뒤로 한번 보더니 현관을 나가 버렸다.
나는 아들에게 이제 자야 한다고 하며 아들을 재우고 다시 TV 앞에 앉았다. 상황이 더 안 좋아지고 있었다.
저러다 총이라도 한 발 쏜다면 아! 어떻게 되나? 하는 생각을 하며 조마조마하게 TV를 보고 있었다.
남편을 보내고 나는 한편 정말 계엄이 성공한다면 어떻게 되는 건가?
나는 지금 아이들과 무엇을 챙겨야 하며 어디에 전화해야 하고 앞으로 있을 일에 어떤 대비를 해야 하는지 머릿속으로 생각을 했다. 정말 큰 문제가 생겼을 때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곰곰이 생각도 해 보았다.
그러나 막상 특별한 대안은 없다. 잘 버티는 수밖에는 말이다.
남편과 이야기하면서 계엄이 벌어졌을 때 나의 이야기를 처음 하게 되었다.
남편이 나에게 와! 우리 마누라 멋지다!라고 외쳤다.
응?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생각했을 거라고 나는 답변을 했다.
부부는 공동의 가장이다. 그러나 나는 남편을 보내고 온전한 한가정의 가장이 되었다.
남편이 당신이 더 큰 사람이라고 했다. 남편은 그래! 당신이 가장이었겠다. 라며 한숨을 쉬었다.
한가정의 가장이 돈으로만 되는 거라면 돈 잘 버는 사람만 있으면 되는 거 아닌가? 가정이 왜 필요하지? 사람인(人)처럼 부부는 서로 부족한 부분을 밭쳐주는 것 아닌가? 그래서 한 가정의 가장은 부부가 같이 하는 것이 맞다. 우리나라는 가부장적 사회에서 무조건 남자만이 가장이라고 하는데 이건 남자들 스스로를 좀 먹게 하는 것이다. 남성들에게 무조건적 의무를 지워주는 것 또한 차별이다. 우리 스스로 어떤 것이 평등하며 합리적으로 공동생활을 잘해나갈 수 있는지 생각해야 하며 우리 부모세대들부터 변해야 자식들도 부모를 보고 평등한 가정생활을 할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