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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마끼끼 Oct 11. 2024

[잡동사니]수레바퀴 아래서

시행착오를 통한 한가지 선택...

  수레바퀴 아래서를 처음 보게 된건 [모여라 꿈동산]이라는 프로그램에서였다. 머리큰 인형들이 그때 어떤 대사와 행동을 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것들이 내 머리와 가슴을 자극한건 분명하다. 난 곧바로 헤르만 헤세라는 이름을 찾아보게 되었으니까... 

  한스 기벤라트는 작은 마을의 천재소년이었다. 모두들 그를 자랑스러워했으며 그에 대한 무한한 기대를 걸고 있었다. 그는 신학교에 차석으로 입학하여 주위의 기대에 부흥하는듯 하였으나 이내 방황하게 된다. 이때 만나게 된 헤르만 하일러의 영향으로 인해 그는 단순한 모범생에서 생각하는 청춘으로 변모해간다. 그의 방황은 결국 신학교를 자퇴하게 만들었으며 결국은 또래 친구들보다 늦게 견습공이 되는 결과만을 불렀다. 그리고 결국은 술에 취해 노래를 읊조리며 죽어간다. 

  한스 기벤라트는 헤세의 자화상이다. 그리고 나의 자화상이기도 하고 모든 사람들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솔직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영화롭던 시절을 떠올리면서 지금의 초라한 모습과 비교를 하곤한다.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의 어렸을적 모습은 누구보다 꿈도 많았고 똑똑했고 가능성많았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어떤 연유로 인해(그것이 피치못할 사정이었든 아니었든 상관없다) 어릴적의 대단했던 모습들을 잃어버리게 되고 그날을 그리워하게된다. 

  한스는 괴팅겐에서 도망치듯 나온 후 고향에서 견습공으로서 나름대로 만족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던중 엠마와 풋사랑을 하기도 하고... 하지만 엠마와의 사랑이 스쳐가는 바람이었듯이 한스의 어린시절도 스쳐가는 바람이었던것을 몰랐을까? 결국 그의 죽음은 과거에 대한 집찹과 현재에 대한 불만족에서 비롯되었으리라 생각한다.


  나의 영화롭던 어린시절도 한순간이였던것을... 왜 나는 항상 과거를 버리지 못하는 것일까? 사실 별로 대단하지도 않은 전성기였음에도 불구하고... 그건 아마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일거다. 점점 평범해지는 나의 삶을 인정하는것이 싫고 남과는 다르길 원했던 내 삶이 이대로 정체되는것이 두렵기 때문일거다. 그것은 결국 내 능력을 넘어선 욕심에 대한 처절한 응징일수도 있겠다. 그러나 난 그 응징을 달게받고 단지 욕심만이 아니란걸 증명해보이고 싶다. 내 능력이 여기가 끝이 아님을 보여주고 싶다. 나중에 더 큰 실망을 하게 될지도 모를일이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해보지않고 실망하는것보단 훨씬 나을것이다. 

  헤세의 [데미안]이나 [유리알 유희], [싯다르타] 등 그의 대표작들에서 난 항상 성장해나가는 인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끊임없는 생각과 주변과의 교류를 통해 자신들을 발전시켜 나간다. 그들의 마지막이 완성된 형태의 완전한 모습을 이루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스스로는 계속해서 능력을 넘어서는 욕심을 채우고있지 않을까싶다. 결국 인간이란 현실에 안주하는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를 갈구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헤세가 신학교를 뛰쳐나오고,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결국 소설을 써온것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시행착오란 참 좋은것이다. 큰 실수도 시행착오란 말로 얼마든지 위로받고 정당화될 수 있다. 어차피 우리 모두가 불완전한 존재라면 시행착오는 엄연히 존재할 수 밖에 없다. 그동안의 내삶은 어떤 시행착오를 거쳐왔고 지금 하는 일이, 앞으로 할 일이 나중에 어떤 시행착오의 한 과정이 될지도 모를일이다. 그러나 반드시 기억해야할 중요한 것은 그중 하나라도 시행착오가 아닌것을 찾아내야만 하고 단 하나라도 올바른 결과물을 도출하고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어떤 CF에서 이런 멘트가 나왔다.

  나는 바꿔야 한다.
  망설이는 나를,

  멈춰서 있는 나를,

  용기없는 나를,

  지금 이순간 가슴에 와닿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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