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서를 지키는 자들

by 이야기여행자

대기는 황혼빛이었다.

오존층의 파편이 하늘을 누렇게 물들이고, 바람에는 언제나 철 냄새가 가득 섞여 있다.

사람들은 모두 은빛 보호구에 갇힌 얼굴로 흐느적거리며 거리를 오간다.

그 누구의 눈빛도 보이지 않는다.

Director의 시선 아래 완벽한 질서가 유지되는 이곳은 지구연합 행정구역 Zone113이라 불리는 곳이다.


KS3019는 번화가의 경계선에서 순찰을 시작했다. 헬멧 HUD에는 오늘의 목표가 또렷이 떠 있었다.


‘적발목표 : 음주 위반자 1명, 복장 위반자 1명, 연애 위반자 2명’


“오늘도 조용했으면 좋겠군. 지난달 우리 구역은 위반율 0.04%로 최우수였지.”

동료 JQ9920이 헬맷을 만지작거리면서 기다란 복도를 걸어 나오다가 그를 바라보며 건조하게 말했다.


“그래. 정말 완벽한 사회가 아닐 수 없어. 그럼 그렇고 말고...”

KS3019도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KS3019와 JQ9920은 모두 30대 중반의 남성이다. 서로의 헬맷을 벗은 얼굴은 본 적이 없으나, KS3019는 경찰국에 근무하는 누구나 그러하듯 JQ9920가 각진 얼굴에 매서운 눈매를 지녔을 것이라 상상했다. 냉철하고 규칙에 절대 충성하는 원칙주의자. 가끔은 그가 진짜 인간이 아닌 휴머노이드가 아닐까 생각하기도 하지만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애초에 Director의 선택에 의해 경찰업무를 맡게 된 사람들은 다들 그런 성격을 지녔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들은 곧장 번화가로 순찰을 나섰다. 1층짜리 건물들이 양쪽에 길게 늘어서 있으나 간판은 규정상 철자가 5개 이상 넘어가면 안 되기 때문에 정형화되어 있으며 절대 요란스럽지 않아 오히려 예전에 경찰국 자료화면에서 본 무법의 서부시대처럼 황량하기 그지없다. 간간히 모래바람이 작게 휘몰아치는 것까지도. 둘은 HUD에 띄어진 정보에 따라 거리 끝에 'Amen'이라 쓰인 낡은 술집 앞에서 일단 멈췄다. 서로 눈빛을 주고받은 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구석 한쪽에 중년의 남자가 막 술을 들이켜려 하고 있었다.

'Amen'의 전경

“멈추시오! 당신은 음주 라이선스를 어기고 있습니다! 술잔을 내려놓고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리세요!”

KS3019은 레이저건을 겨누고 그에게 크고 단호하게 소리쳤다.


남자는 눈길을 돌려 경찰관들의 얼굴을 한 번씩 번갈아 바라보다가 이내 체념한 표정으로 술잔을 내려놓고 순순히 두 손을 머리 위로 힘없이 올렸다. 곧장 JQ9920은 그에게 다가가 술잔을 치우고 남자의 헬맷을 스캔하여 HUD에 표시되는 인적사항을 확인하였다.


‘CK6397. 40대 중반. 백인. 무직. 정부보조금 수령자. 독신남성.’


JQ9920은 남자에게 범칙기록과 벌과금을 부과하고 음주라이선스 정지 등록을 신청했다.

남자가 풀이 죽어 발걸음을 옮기어 술집을 나가자마자 KS3019는 주인에게 다가갔다.


“그의 음주 라이선스를 체크하지 않았나요? 영업정지와 함께 본인 라이선스 중 한 개를 반납하세요.”

아마 주인은 휴머노이드가 아닌 인간인 듯하다. 휴머노이드는 절대 실수하지 않으니까. 이 시대에 실수는 오직 인간만이 한다.


“예전 기록들을 보니 알코올중독은 무척이나 위험한 질병이었다고 하더라고.”

JQ9920가 차창너머 먼 곳을 응시하며 무심히 말했다.

“맞아. 무엇이든 중독은 위험한 것이지만 알코올에 찌들게 되는 것은 특히 힘든 일이지.”

“음주라이선스 덕분에 인간은 알코올중독으로부터 벗어나게 된 거야.”


음주 라이선스는 개인의 주량에 따라 허용된 용량만 마실 수 있는 제도이다. 덕분에 사람들은 더 이상 과음하지 않았으며, 이로 인해 부가되는 음주운전, 폭력, 중독 등의 각종 사고들은 자연스레 감소했다. 지금은 음주 관련 사고는 거의 없다고 무방하지만, 가끔 본인의 라이선스를 어기고 용량을 초과하여 음주하는 사람들의 시도가 있다. 하지만 Director가 통제하는 완벽한 세상에서 이 같은 행위는 사전에 차단될 수밖에 없었다.


둘은 그 후로도 컨티마 거리에서 연애 라이선스 없이 여성을 유혹하려 한 20대 청년 둘을 체포했고, 옐로 타운에서는 레깅스 착용 라이선스가 없는데 레깅스를 착용한 30대 여성에게 벌과금을 부과했다. 이렇게 적발된 경우 대부분 본인이 가진 다른 라이선스 중 하나를 반납하게끔 하는데, 처음에는 대부분 본인들이 필수적이지 않거나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꽃꽂이나 장난감 조립과 같은 취미 관련한 라이선스를 반납한다. 언뜻 보기엔 여러 번의 기회가 있기 때문에 갱생의 여지가 있고, 이후부터는 조심하게 되기 때문에 엄청나게 가혹한 페널티는 아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반납된 라이선스는 절대 재발급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위반이 늘고 본인이 가진 여러 개의 라이선스를 반납한 뒤 대부분 마지막에는 음식섭취 라이선스를 반납하게 되고, 이후에는 굶어 죽을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이 사회가 유지되는 원리이자 힘이다. 처음이 어렵지 그 뒤로는 쉽다고 했던가…


“보이지? 질서는 이렇게 유지되는 거야. 인간은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거든.”

JQ9920가 낮지만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Director의 시선 아래 체제는 완벽했다! 누구도 다치지 않았고, 누구도 불행해 보이지 않는다. 모두가 평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