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8시. 퇴근한 KS3019는 집 안의 낡은 베이지색 2인용 소파에 몸을 눕히고 있었다. 거실 한편에 묵직한 스피커에서 재즈풍의 시티팝 음악이 느릿하게 흘러나오고 있다. 이 세계에서는 음악을 듣는 일조차 ‘라이선스’가 필요했다. 다만 라이선스가 없는 사람들의 경우 개인적으로 음악을 재생하거나 도구를 구매하지 못할 뿐, 길거리나 타인이 틀어 놓은 음악을 듣는 것은 부분적으로 허용이 되었다. 그러나 KS3019의 입장에서 그런 식의 음악감상은 본인에게 있어서는 사형과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음악 없이 살아가는 삶이라니! 그는 음악감상 라이선스가 있다는 사실에 항상 감사해하고 자부심을 느꼈다.
‘적성 없음. 불행전환율 72%, 실패확률 98%, 악기연주 라이선스 발급 불가’
까만 화면에 하얗게 써진 글씨가 어제 일처럼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10대 시절 그는 음악에 매료되어 음악감상 라이선스를 취득하고, 곧이어 악기 연주 라이선스를 신청했지만 거부당했다. 그날 이후 그는 작곡과 연주라는 소중했던 꿈은 포기하게 되었지만 이렇게나마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것도 행복한 것이라 스스로 위로했다. 그가 재능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적성과 재능은 별개인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 라이선스 발급을 받지 못한 것은 그때만큼이나 너무도 실망스러웠다.
그는 오늘 오전 결혼 라이선스 발급을 거부당했고, 그리하여 이제 앞으로는 평생 결혼할 수 없는 신세가 된 것이다.
“결혼 라이선스 발급이 거부되었다는 건… 당신과 내가 결혼한다면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는 의미야.”
EJ3242는 충혈된 눈으로 말했다.
KS3019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정말 잘해줄 자신이 있었는데, 정말 행복하게 살 수 있었는데, 그가 그녀와 함께 살아갈 모든 계획들이 한순간에 무너져버렸다. EJ3242는 휘청거리면 뒤돌아 나갔고 그는 그 모습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완벽한 세상에서 그는 커다란 오점이 되어버린 기분이었다.
오늘 임무는 매주 한 번씩 중심지 외곽의 타운을 순찰하는 것으로 이번에는 거빈타운이 대상이었다.
“완벽히 통제되는 세상에서 오늘처럼 일거리가 없다면 언젠가 우리도 직업을 잃게 되는 게 아닐까?”
운전석에 앉은 JQ9920가 핸들을 좌측으로 꺾으며 말했다. 농담을 한 것인지, 정말 심각해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 들어 부쩍이나 위반 또는 검거대상이 줄어들었다.
KS3019는 멍한 시선으로 흔들리는 의자에 몸을 실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라이선스 발급이 거부되었다는 의미… 누구보다 우리가 제일 잘 알잖아… 나는 실망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
여전히 무심한 말투이다. JQ9920의 건조한 목소리가 천천히 이어졌다.
“연애 라이선스, 음악감상 라이선스, 그리고 경찰관 라이선스… Director가 자네에게 그것들을 허락한 것은 자네가 그 일에 가장 적합하다는 뜻이야. 지금까지 이렇게 잘 살아온 게 그 증거겠지. 앞으로도 그럴 테고. 하지만 만약 자네가 결혼을 했다면 자네의 인생은 그때부터 망가질 수가 있었던 거지. 그래서 발급이 거부된 거야. 우리는 완벽한 세상에서 살고 있으니까. 안 그래?”
“… 맞을지도. Director는 내가 그녀에게 집착할 것을, 아무것도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결국 나는 물론이고 그녀까지도 불행하게 만들 것까지 알고 있었던 거야. 그래 맞는 말이야.”
“그래.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어. 그래도 미리 알았기 때문에 앞으로도 자넨 여전히 이전처럼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야. 실망하지 마. 우린 우리의 일을 하면 돼.”
차는 써머거리를 지나 거빈타운으로 들어섰다. 거빈타운은 과거 대형 공연장과 전시장들이 밀집해 ‘문화지구’라 불리던 곳이었지만, 지금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생명력을 잃은 거리였다.
흑갈색 먼지가 가로등을 갉아먹듯 붙어 있고, 바람이 불 때마다 벽보 조각들이 날아올랐다. 전면유리로 된 공연장 입구에는 깨진 패널들이 가느다란 전류를 흘리며 미약한 불꽃을 토해냈다. 지금은 전시 및 공연 라이선스를 가진 극소수만 허가받아 이곳에 드나들 수 있었다.
KS3019는 흐릿한 차창밖을 바라보다가 불현듯 자신을 비추는 반사유리에 시선을 멈췄다. 헬멧 너머의 얼굴은 언제나 똑같았다. 정밀하게 교정된 턱선, 규정화된 체형, 감정을 읽을 수 없는 미세한 움직임.
“생각이 많아 보이는군.”
JQ9920가 건조하지만, 약간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니야. 그냥… 예전에 이 거리에 수천 명이 모여 환호하고 울고 웃었다는 걸 상상해 봤어.”
“비효율적이지. 통제불능 상황이기도 하고.”
JQ9920는 핸들을 돌리며 단호히 잘라 말했다.
“감정의 동조는 통제 불가능한 위험요소야. 우리는 그 위험을 제거했지. 그게 진보야.”
하지만 KS3019는 그의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낡은 현악기의 미약한 잔향이 귓가에 맴돌았기 때문이다. 지금 이 거리에서 결코 들려서는 안 될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