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을 깨는 자들

by 이야기여행자

소리는 낡은 공연장 지하로 이어진 환풍구 틈새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JQ9920는 즉시 차량을 세우며, 오른손으로 레이저건을 들었다.

HUD의 시야 한쪽이 붉게 점멸하기 시작했다.


‘경고. 음악 연주 라이선스 미보유자의 불법 연주 가능성. 체포 대상’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은 반쯤 무너져 있었고, 습기 찬 콘크리트 벽면에는 오래된 낙서들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자유’, ‘사랑’, ‘선택’ 지금의 사회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단어들이었다.

계단 아래, 녹슨 철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현악기의 소리는 점점 더 또렷해졌다.

JQ9920가 망설임 없이 문을 발로 걷어찼다. 먼지 구름이 터져 나오며 낡은 무대 위, 한 남자가 바이올린을 들고 서있었다. 그 남자는 머리엔 헬멧조차 쓰지 않았고, 숨을 몰아쉬는 붉게 달아오른 얼굴에는 광기와 황홀 사이의 어떤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남자의 곁에는 네댓 명의 사람들이 앉아 눈을 감은 채 음악에 취한 몸을 흔들거리고 있었다. 그들 역시 모두 헬맷을 벗은 상태였다.


“멈춰! 모두 즉시 연주를 중단하고 헬맷을 착용하라!”

JQ9920의 고함이 지하공간을 울렸다.


남자는 잠시 그들을 바라보다가, 이윽고 미소를 지으며 연주를 이어갔다. 마치 오래전부터 바로 이 순간을 기다려왔다는 듯이.


순간 번쩍이는 섬광과 함께 굉음이 울리고, 바이올린의 현이 찢어짐과 동시에 남자는 무대 위에 쓰러졌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얼어붙었다.

JQ9920는 재빠르게 뛰어가 즉시 그들을 제압하고 결박했다. KS3019는 쓰러진 남자에게 천천히 다가가 한동안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굳게 감긴 눈가엔 눈물이 말라붙어 있었고, 입가엔 여전히 희미한 미소가 남아 있었다. 그 미소가 이상하리만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 남자가 바이올린을 연주한 낡은 공연장

보고서는 간단했다.


‘불법 음악 연주 모임 적발’

‘연주자 1명 사살, 참가자 5명 체포’

‘현장 내 오염도 및 감정파동 전파내역 없음’


상관인 WT0530은 별다른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 단지 사건기록은 보관가치가 없어 곧 삭제될 예정이라고만 전해 들었다.

KS3019는 자신의 방, 낡은 소파에 앉아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머릿속에서 그 남자가 연주하던 선율을 떠올렸다. 희미한 파편 같던 음들이 하나둘 이어지며, 완전한 곡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것은 지금껏 그가 들어왔던 어떤 음악보다도… 아름다웠다.

KS3019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Director가 틀렸을지도 모른다.’


경찰국 본청, 무채색 벽과 냉각기의 저음만 울리는 회의실.
차가운 금속 의자에 앉은 KS3019 앞에, 그의 상관이자 경찰국장인 WT0530이 서 있었다. 그의 헬멧은 은빛으로 빛났지만 그 안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목소리는 거칠고 단호했다.


“앞으로 더 이상 자네는 음악감상을 할 수 없네. 자네의 라이선스가 박탈되었어. 그리고 우선은 임무에 투입하지 말고 당분간 대기하도록.”

말 끝은 건조했지만 그의 주먹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는 50대의 전형적인 경찰의 모습이었다. 오랜 근무로 굳어진 사무적인 말투를 통해 반쯤 빠진 머리칼과 언제나 절제된 분노를 품은 눈빛이 상상되었다.


“왜 제 라이선스가 박탈되었나요? 부당합니다. 그 곡은 제가 만든 것이 아닙니다.”

KS3019는 무의식 중에 언성을 높이며 상체를 앞으로 기울였다. 금속 의자가 삐걱거렸다.

“왜라니?”
WT0530의 음성이 갑자기 높아졌다.
“결정은 이미 내려졌고, 통보도 끝났다. 왜냐고 묻지 마. 왜냐고!”

WT0530는 평소의 냉철하던 모습과 달리 주먹을 부르르 떨며 울먹임에 가까운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크게 소리 질렀다. 하지만 KS3019가 그 모습에도 주눅 들지 않자 적잖이 당황해했다.

“제가 일단 데리고 나가겠습니다. 이리 나와.”

JQ9920가 조용히 일어나 KS3019의 팔을 잡아끌었다.


문이 닫히고 회의실의 공기가 서서히 식었다.
WT0530은 한동안 말없이 서 있다가, 마치 혼잣말처럼 낮게 중얼거렸다.

“정말… 이유를 모르는 건가? 그렇다면 실망이군. 누구보다 녀석이 가장 잘 알아야 할 텐데.”


KS3019는 대기발령 상태가 되었다. 그는 순찰 중 무심코 흥얼거렸던 바이올린 선율이, 경찰국의 무전망을 통해 전송되며 전 직원이 듣게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문제는 그것이었다. 그가 부른 곡은, 그날 무대에서 쓰러졌던 남자의 곡이었다.

하지만 그 노래는 KS3019가 작곡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그 남자의 연주곡을 흥얼거렸던 것뿐이었다. 하지만 Director는 이것을 작곡행위라 판단했고, 위법에 대한 반대급부로 그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라이선스, 바로 음악감상 라이선스를 반납하라는 조치를 취한 것이었다. 가장 괴로운 것은 이제 다시는 음악을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깊은 의문이 그를 옥죄었다.


‘Director는 결코 오판을 하지 않아. 그렇다면 그것은 내가 작곡한 곡이라는 뜻인가? 그리고 그 남자는 내가 만든 곡을 연주했던 것인가? 그런데 어떻게?’


의문은 집요한 갈망이 되었다. KS3019는 문득 그 남자가 궁금해졌다. 하지만 라이선스를 박탈당하고 대기발령 중인 상황에서 추가적으로 해당건을 조사하는 것은 분명 불법이고, 몰래 데이터베이스에 들어가는 것 또한 Director에게 즉시 발각될 것이다. 결국 KS3019는 한 가지 방법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


“다시… 그곳으로 간다.”


Zone113의 야경은 언제나 같았다. 사람들은 모두 회색빛 보호복을 입고 투명한 은빛 헬멧 너머로 표정조차 보이지 않는다. 홀로그램이 번쩍거리는 센트럴타운의 덩컨거리를 지나 외곽도로를 따라 30분 정도 차를 몰고 가면 써머거리가 나온다. 이곳부터는 갑자기 스산한 분위기로 바뀌는데, 인적이 드물고 관리가 잘 안 되어 있어 도로 곳곳히 파여있고 울퉁불퉁하다. 이렇게 30여분을 더 지나면 비로소 거빈타운이 나온다. 다시 찾아간 거빈타운은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황량하기 그지없었다. 오히려 지난번의 사건 때문에 KS3019에게는 더 이상 이곳이 문화도시라기보다는 폐허가 된 버려진 쓸모없는 도시로만 보였다.


우선은 지난번 사건이 발생했던 낡은 지하 공연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축축한 먼지가 발끝에서 일어났다. 어떠한 소리도 나지 않고 스산한 기운마저 감도는 곳이었다. 이런 곳에서 사람들이 음악연주를 했다니… 레이저건에 맞아서 죽은 그 남자는 피조차 흘리지 않았다. 헬맷의 HUD를 통해 확인하지 않는다면 여기서 사람이 죽었다는 흔적은 어디에도 없어 찾을 수가 없을 것이다. 다시 지상으로 올라오면서 어디를 가야 할지 막막한 상태로 바닥에서 난잡하게 구르는 먼지덩어리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렸다. KS3019는 숨을 죽이고 다시 한번 소리를 따라 조심스레 걸어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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