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미국 살이를 마치고
잠시 한국에 들어왔을 땐
나의 문어발이
사상 최대치를 찍었더랬다.
같은 아파트에서 만난
동네 친구들이 생겼고
1학년으로
입학 한 아이들 덕에
같은 반 친구 엄마들을
사길 수 있었다.
강사 일을 하게 되면서
만나게 되는
관계자들의
전화번호를 딸 수 있었고
그 번호들은
연줄이 되어
새로운 번호들을
불러 모아줬더랬다.
학부 수업을 하니
나를 따르는 제자들도 생겨
나에게
젊음을 수혈해 줬더랬지.
덕분에
도움도 많이 받았고
자신감도 우뚝 솟아올랐었다.
그런 생활이
계속될 줄 알았던 거지
날개 옷을 입고
훨훨
날아다닐 거라 생각했던 거야.
그 옷을 도둑맞기 전 까진.
미국으로
다시 터전을 옮긴 후
한국에 방문할 때마다
나는
세상 제일 바쁜
연예인 스케줄을 소화했다.
지인들과의 약속을
오전 오후도 잡아댔고
안 되겠다 싶은 경우는
사정 설명하면서
담번에 꼭 보자고
통화로만 마무리를 해야 했으며
어느 누군가에게는
내가
한국에 방문했다는 사실조차
비밀로 하기도 했다.
며칠 동안만
허락된
날개 옷을 받아 들고
여기저기
정신없이 날아다녔더랬다.
나
원래 이런 사람이었는데.
이게 나인데.
바로 이건데.
지인들과
오랜만에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동안
예전으로 돌아간 거 같아 좋았지만
지금 보면
난
그들이
나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과
내 빈자리를 느끼고 있다는 걸
확인하는 게
더 좋았던 거 같다.
그렇게
내 존재감을 느끼는 게
좋았던 거다.
날개옷을 입고
그대로 잠적하고 싶었지만
인질로 잡혀있는
내 새끼들이 있으니
나무꾼에게 돌아가는 수밖에.
그렇게
유지하던 인연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정리가 되어갔다.
몸이 멀어지고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내가
그 증거가 되어 버렸네.
내가 있는 곳과
한국은
14시간의 시차를 두고 있다.
그들이
맞이한 해님을
나는
14시간 후에 맞이할 수 있고
그들이
소원을 비는 달님은
14시간 후에
나에게 소원 빌 기회를 준다.
내
미래에 살고 있는 그대들.
그대들의 과거에 살고 있는
나.
다른 시공간을 살고 있는
우리가
서로를 확인하려면
네가 밤을 새든
내가 밤을 새든
어느 한쪽의 희생이
필요하다.
그러니
차츰
뜸해지고 멀어지는 건
당연한 거지.
그래도
그나마
우리를 연결해 주는 장치가
내 손안에 있으니
다행이다.
이건
비밀인데 말이야..
영화
시월애를 보면
다른 시간을 사는
남녀 주인공이
편지를 주고받잖아?
그
메신저 역할을 하는
우체통 같은 게
나한테도 있어!
드라마
시그널 알지?
거기서도
두 주인공이
시간을 뛰어넘어
서로 무전을 하잖아?
그
매개체가 되는
무전기 같은 게
나한테도 있다고!
믿기지 않겠지만
진짜야
여기에만 털어놓는
비밀이라고.
매달
기본 비용만 지불하고
제대로 충전만 하면
죽을 때까지도 쓸 수 있어.
내 손에
쏙
들어오는 이 아이가
내가 잠자는 사이에
미래에서
보내오는 소식을
받아 놔 주거든
그럼
난 그걸 확인하고
답장을 하면
이번엔
그들이 자고 일어나
과거에서 온 소식을
확인하는 거지.
마치
우리가
같은 시간대를 사는 것처럼
온갖
쓸데없는 소식들까지도
얘가 받아 놔 줘.
그래서
자고 일어나면
그걸 확인하면서
하루를 시작했더랬다.
그런데
차츰
확인할 거리가 줄어들고
확인하고 있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악플보다 무서운 게
무플이라던가
원 가장자리에
가깝게
서 있던 사람들부터
자연스레 정리가 되더니
점점
안으로 번져 들어와
그렇게 크던 원은
코딱지만큼 작아졌다.
쓰잘데기 없이
쏟아지던 광고들도
이제는
날 포기했는지
예전 같지가 않다.
정말
내 사람이다 싶은 이들만
남았다.
이렇게
명절이 다가오면
그들이 보내주는 메시지로
나를 향한 사랑을 확인한다.
애정 결핍사처럼
누가
메시지를 보내고
안 보내는지를
따지게 되더라
넌 나를 잊은 거야
난 이제 안중에도 없는 거야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스토커처럼
내 마음을
그들에게 붙여 놓았던 거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래저래
인간관계가 정리되고
내 사람만 남는다던데
내가 원하는 시점에
내가 원하는 속도로
내가 원하는 만큼
진행된 게 아니다 보니
미련이 생기고
상실감이 든다.
근데
딱 여기까지.
예전 같으면
저 마음이
화로 이어지고
우울증으로 연결돼서
바닥을 또 파고들었을 텐데
딱
여기서 멈춘다.
그리고
이제
받아들여지기 시작한다.
아직
손 안 대고 코 풀었다고
여길
그런 경지는 아니지만
받아들인다는 건
내 마음이
1센티는 자라났다는 거겠지.
나의
미래에 살고 있는 그들에게
무전을 보낸다.
거기도 그럽니까?
아직
우린
끈으로 연결되어 있나요?
설마
시간이 지났다고
뭔가 달라져 있는 건 아니겠죠.
그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