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안 주고 안 받기 주의자였다.
누군가가
누군가로부터
뭔가를 받은 모습을 보면
흥 좋겠다 했다가도
어우 아니다 아냐
저거 다
돌려줘야 하는 거잖아
하면서
도리도리였다.
그러던
내가
주변 관계없는 곳에 살게 되니
연말쯤이면
마트에 쏟아져 나오는
선물세트들을 보고
나도
이것 좀 누구 줘 보고 싶네 로
바뀌더라.
어쩌다가
선물할 사람,
선물할 상황이 생기면
바닥까지 긁어 퍼다가 주고 있는
내 모습
얼마 전
새해 선물로
아마존 기프트 카드를
받았더랬다.
룰루랄라
그걸 받아 들고
마치
백지 수표를 손에 넣은 것처럼
이것저것을
머릿속 카트에 담으며
신나 하다가
인스턴트 팟을 골랐었지.
그걸로
제일 먹고 싶었던
팥죽을 휘리릭 끓여서
한 통 가득 담아 뒀다가
그분께
가져다 드렸었다.
타국에 사는
이민자들에게
한식은
종류 불문하고
귀한 선물로 받아들여진다.
재료를
구하기도 쉽지 않고
만든다 해도
그 맛이 그 맛이 아닌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그 희소함에
어쩌다가
손에 넣게라도 되면
아끼고 아껴 먹는 게
한식이다.
그래서
맛을 따지며
먹는 음식이 아니라
추억 팔이 하며
먹는 음식이다.
나를
그때,
그곳으로
데려가 주니까.
가져다 드린
팥죽을 보시더니
너어~~ 무
고마워하시더라
여기서
어느 누가
나한테 팥죽을 해 주겠냐며.
이걸
내가 어디서 먹어 보겠냐며.
가슴팍에
두 손으로
끌어안고 계신 모습을 보니
뿌듯하면서
내 기분이 더 좋았다는
뭔가를
더
막 막
꺼내 드리고 싶었지만
아무것도 없는
빈 가방만
조물 거렸다.
이렇게
주거니 받거니로
왕복 달리기가 완성됐구나
하는 순간
내 손에 뭘 또 쥐여 주신다.
뭔가 하고 받아 드니
약재 냄새가 폴폴 올라오더라.
엥??
혈혈단신으로
미국에 있는 본인을 걱정하며
한국에서
종종
택배를 보낸다고 하신다.
그때마다
이렇게
약재가 들어 있는데
개인에 맞게 지은 게 아니라서
괜찮다며
그냥
끓여서 물 마시듯 먹으라고.
세상에..
이건
정말
만들 수도 없는 세상 귀한 것.
나도 모르게
끌어안게 되더라
그러다
아차 싶었다.
그냥
마트에서 파는
흔한 쿠키도 아니고
혼자
타국에서 고생하는
딸 입에 넣으라고
시간 들여 돈 들여
귀하게 보낸 것을
내가 받아도 되나?
그 마음을 아시고는
본인은 계속 먹는 거라며
오히려
한국 사람이니
줄 수 있어 좋다고 하신다.
나라면
이것까지 내어 줬을까
하는 생각에
그분이
달리 보이기까지 하더라.
안 그래도
몸을 좀 챙겨야겠다 싶던
참이었는데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나도 모르게 콧노래가
가방을 뚫고
약재 향이
차 안을 채우기 시작하는데
내가
이 냄새를
이렇게 좋아할 줄이야
예전 같으면
코를 막고
우엑 거렸을 텐데
명상하듯
깊게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복귀.
6시간을
끓이라는 말씀에
점심 먹고
시작한다.
뭐
거창하게 할 건 없고
그냥
간단히
인스턴트 팟 하나만.
그분의 선물이
또 이리 쓰이네
냄비에 넣고
약불로
내내
끓여도 되겠지만
그러는 동안
불침번 서기 싫고
끓이면서
동시에 날아가는 수분조차
난 아깝거든
그리고
지금
때가 어느 땐데
부채질하면서
약 끓이는 사람이
어디 있다니!
이리 오너라
인팟.
내솥에
물은
맥스로 채워주고
받아 온 약재를 넣었다.
기능 중에
Slow Cook을 선택하고
normal에 맞추니
자동으로
6시간이 세팅되더라.
중요한 건
벤트를 열어
무 압력으로 하는 거다.
끝
손에 물 안 묻히고 끝
버튼 몇 번 누르고 끝
어차피
보초 설 필요 없으니
밤에
자는 동안 끓일까 하다가
처음이니 지켜보자 싶어
시작한다.
인팟을
집 안에 둘까 하다가
생각해 보니
벤트를 열어 놔서
냄새가 내내 새어 나오겠고,
그럼 우리 집은 한약방이 되겠고,
내일
출근하고 등교하는 식구들 몸에
죄다 배겠고,
그럼 곤란한 일이 생길 수도 있겠고
아니다 아냐
가지고 나가자
미국 주택들은
외벽에
콘센트가
군데군데 설치되어 있다.
마침
패티오로 연결되는
문만 열면
바로 그 자리에
하나가 있으니
지켜보기에도 딱이다.
난 글을 쓸 테니
넌 끓이거라
자,
우린 6시간 후에 만나.
왔다 갔다 보고
음 잘하고 있군
청소 돌리며 보고
음 잘하고 있어
커피 마시고
블로그 하면서 보고
음 잘하고 있네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세상 편한 거
저녁을 먹고 있으니
밖에서 누가 노래를 부른다.
ㅎㅎㅎㅎㅎㅎㅎ
밖에서 수고한 아이
얼른 퇴근시켜
뚜껑을 열어보니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면서
순식간에
집안을 채우는 향.
늙었나 보다.
이 향이 너무 좋다.
마셔 보니
단 맛 하나도 없는
쌍화탕 맛
천천히 식혀서
피처 병에 나눠 담았다
그리고
약재는
재탕을 위해
고이 모셔 두었다.
애들은 질색을 하니
먹을 자격 박탈하고
두 어른 건강주스로 탄생.
뿌듯하구먼.
선물 들고
왕복 달리기
한 세트를
마쳤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내 손에
바통이 넘어왔으니
또 뛰어야 마땅하겠지?
근데
바로는 말자.
이건 릴레이가 아니니까.
물 좀 마시고
쉬는 시간 좀 갖은 후에
즐겁게 뛸 수 있을 때
뛰자.
억지로
쥐어짜서 뛰면
보기에도
티가 나는 법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