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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한 걸음

by 블레스미

미국 고등학생들은
저마다의 관심사에 맞춰
클럽 활동을 한다.




진로에
도움 되는 것일 수도 있겠고
봉사활동에
관한 것일 수도 있겠고
취미나 특기에
관한 것 일 수도 있겠고




물론
전혀 하지 않는 학생들도 있다.




우리 집 아이들도
여러 가지 클럽에서
활동 중인데
공지사항이나 운영 관련하여
안내 사항이 있으면
내 머릿속은 바빠진다.




미국 학교생활을
경험해 보지 않은 내가
무엇에 관해
정확하고
빠른 이해를 해야 한다는
강박이 쫓겨
본능적으로
비슷한 레퍼런스를
머릿속으로
뒤지고 있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을
기준으로 삼고
한국에 있는
지인들의 이야기를
기준으로 삼아




아, 이런 거겠구나
아, 저런 거겠구나
짐작해서
대충 감을 잡고 들어간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항상
내 기대와 예상보다
한 수 위의 현실이
펼쳐지더라.




아이가
가입한 클럽 중에 하나는
Mock Trial이다




법조계를 꿈꾸는 아이들이 모여
모의재판을 하며
미리 경험하고 배우는
모임이랄까.




내가 갖은 첫인상은
단순히
'귀엽다'였다.





내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 있었던
특별활동이라는 걸
생각해 보면




담당 쌤이
모이라면 모이고
하라는 거 하면서
그냥 제일 만만한 시간
대충 시간 때우면 되는 시간
흐지부지하게 보내는 자투리 시간
이었던 거 같다.




사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도대체
그 시간에 뭘 했었는지
암튼
그런 큰 의미 없는
시간이었던 거다.




그 경험이
레퍼런스가 되어 버리니
고등학생들이 변호사 놀이를 하는 거구나
생각했더랬다.




그래서
귀여운 것들 후훗 했던 거라고.
지난 토요일까지는 말이야.




지난 토요일
모의재판이 열리는 날이었다.




날짜가 잡혔다길래
그런가 보다 가면 되지 했고
연습해야 해서 바쁘다 길래
그런가 보다 데리러 가면 되지 하며
열심히도
태우고 다녔더랬다.




그러다
장소가 결정됐다며 알려 주는데




응????
법원?????




순간
'이거 내가 생각한 수준이 아니구나'가
밀려오면서
진상조사부터 해야겠다 싶었다.




물론
눈치껏 해야 했다.




아이는
내가 이렇게 대충 생각하는 줄
모르고 있을 테니
내 체면을 생각해서라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요리조리
둘러치고 매 쳐서
얻어낸 퍼즐 조각을
머릿속으로
맞춰
완성시켰다.




각 학교가
가지고 있는 클럽들을
한국 식으로 설명하자면




대학교 동아리들 수준으로
진행되는데
학교 자체에서 만들어
활동하는 동아리와
다른 대학과
연합하여
활동하는 동아리로
나눌 수 있겠다.




Mock Trial이라는 클럽은
연합 동아리와 같아서
같은 지역에 있는 학교끼리
1년에 한 번 모여
모의재판을 연다.




각 학교의 학생들은
정해진 사건들 중에
하나를 고르고
그에 대해
검사와 변호사 역할로
학생들을
두 개 팀으로 나눈다.




그럼
같은 사건을 고른
다른 학교와 매칭되어
모의재판을 여는데
우리 쪽 검사팀은 그쪽 변호사 팀과 붙고
우리 쪽 변호사 팀은 그쪽 검사팀과 붙어
겨루는 거다.




팀에는
증인 역할도 있는데
내가 검사라면 혹은 변호사라면
어떤 증인을 부를지 생각하고
각자 설정한다.




이렇게
역할을 나누고 나면
그 사건에 대한
모든 발언은
본인이 작성을 한다.




즉,
써주는 대본을 외워
연극을 하는 게 아니라
본인이
배심원과 증인에게 할 말
그리고 제시할 증거
모든 것을
직접 준비해야 하는 거




어쩐지
매일 뭘 끄적이고 있더라..




아이는
검사 역할을 맡았다 했고
보통
검사나 변호사 3명에
증인 3명이
한 팀으로 구성된다 했다.




자,
이렇게 준비 한 모의재판은
그 지역의 법원에서
열린다.




그리고
전, 현직의 판사가 와서
판사 역할을 하고
다른 법조인들이 와서
배심원 역할을 함과 동시에
모의재판을 심사한다.




오 마이 갓 이었다.
정말로.




아니 난 그냥
대애충
어디 학교 체육관 하나 빌려서
큰 책상 몇 개 가져다 놓고
자기들끼리
이러쿵저러쿵하는 건 줄 알았지




애들 모의재판에
법원이 웬 말이고
전, 현직 판가가 웬 말이냐고!




이렇게
진심들인 거야???!!!




그렇기 때문에
복장도 갖춰야 한다.
무. 조. 건. 정장에 구두.




이 아이에게
정장이 어디 있겠냐고~~
나보다
키도 작고 발도 작으니
내 것들은 무용지물이다.




그리고
알지?
꼭 찾으면 없는 거.
가장 기본이 젤 찾기 힘든 거.




학교가 끝나자마자
몇 시간 동안 이 잡듯 뒤져
겨우 구색을 맞췄다.




드디어 결전의 날.
지난 토요일이 D Day였다.




아침 일찍 시작되는 일정이라
내 소중한 늦잠은
암 소리 없이
곱게 반납하고
7시에 출발.



우리 집
다른 한 아이는
운전면허 온라인 수업이 있는지라
남편과 역할을 나눠
움직여야 했다.




집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
우리 쪽에 가까워서 다행이었다.




안 그랬음
워낙 넓은 땅 덩어리이기에
차로 2~3시간을 가게 되는 상황이
생길 수도.




그럼
그 지역에 전 날 밤에 가서
하루를 자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도착이다.



보호자도
원하면
참관이 가능하기에
검색대를 거쳐 따라 올라갔다.




모두 모여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각 팀에 배정된
법정으로 이동해서
시작할 준비를 하는데




일어나라고 하더니만
정말 판사가 들어온다.
정말 배심원들이 들어온다.




겉으론
태연한 미소 장착이었지만
속으론
계속
와.. 이런다고?... 와..... 와....
연발.


이제
정식으로 시작이다.




법정에
가 본 적 없는 사람이 봐도
영어 귀머거리가 들어도
뭔가
제대로 돌아가는 눈치다.




공격과 방어를 주고받으며
아니다 싶을 땐
이의를 제기하기도 하고
증인도
얼마나 리얼하게
연기까지 하는지
모두가 진심인 거 맞더라.




거의 두 시간에 걸쳐
끝이 나고
점심 후
다른 팀이 진행됐는데




이 모든 것이 끝나면
어느 누가
본인의 역할을 잘 이행했는지
수상이 이뤄진다.
그리고
우승 팀이 가려진다.




그 우승 팀은 이제
State 대회로 올라가는 거지.
마치
'시' 우승자가
전국구로 올라가 듯이.




이러한 성과는
내 스펙이 되어
당연히
대학진학에도 도움이 된다




아이의 팀은
여기서 멈췄지만
떨리는 목소리 없이
자기 역할 해 내고 온 모습이
대단타 했다.




나였음
떨다가 끝났겠다는 생각만.


생활 터전이
바뀌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아이 덕분에
새로운 것들을
경험할 때마다
나에게는 기쁨이고 이벤트다.




이것이
언제나 새로운 걸 도전하는
아이에게
감사하는 이유 중에 하나다.




사실
처음엔
반갑지 않았다고 털어놓겠다.




뭐든
새로 시작하는 데엔
에너지가 많이 들기 때문이다.




알아봐야 하고
준비해야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필요한 서포트를
감당해야 한다.




그런데
가면 갈수록
내가 이런 걸 언제 어디서 경험해 보겠나
하는
마음이 커지니
그저 고마울 수밖에.




오늘도
애썼다고
잘했고 대단했고 멋있었다고
토닥토닥




고마워
네 덕분에 새로운 세상을 살아 본다.
알지 못하고 죽을 뻔한 일들을
경험해 본다.




이런 기회를 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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