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제노타미, <저소비 생활>
나는 불과 2년 전까지 대기업으로 분류되는 이커머스 회사의 영업전략 업무를 맡고 있었다. 최근 몇 년 동안은 전략시즌의 보고서 작성을 위해 시장 조사를 해보면 항상 비슷한 결론에 도달했었다.
고물가, 고환율, 고금리로 인한
소비심리 위축이 예상됨
불행히도 그 예측은 매년 실현되었고, 그로 인해 예상되는 리스크 대응방안을 찾는 것이 일이었던 시절이었다.
퇴직한 지금은 오히려 전보다 더 뼈에 와닿는 문장이다. 현실이기 때문이다. 잔고는 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물가는 너무 올라서 장보기가 무서울 정도이니. 천정부지 오르는 환율에 부동산에, 이러다가 가만히 앉아서 소위 말하는 '벼락거지'가 되지는 않을런지 안해도 되는 불행 시뮬레이션을 돌리는게 일상이다.
소비트렌드를 예측하고 데이터를 해석하고, 어떻게 해야할지를 분석하는게 일이던 사람이 정작 내 일상에서는 어떻게 소비해야 할지, 어떡하면 그 와중에 있어보이는 소비를 할 수 있을지 몰라 고장난 상태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서점에 다소곳이 누운 이 책의 제목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가제노타미의 『저소비 생활』이다.
앞 서 다른 글들에서도 수차례 내 독서 편향에 대한 변명처럼 여러 번 언급했지만 또 한 번 얘기하자면, 나는 경제도서나 재테크 관련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껴야 잘산다, 참아라, 사지 마라.' 행복하기 위해 방법을 찾자는 건데, 심지어 사치도 아닌데 당장의 행복을 참고 미루고 모른 척 하라니. 그런 말들 앞에서는 괜히 내가 더 게으르고 낭비가 심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일종의 자격지심일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좀 달랐다.
빨갛게 나를 향해 소리치는 표지의 문구, '돈도 마음도 낭비없이 나만의 행복을 버는 저소비 생활'. '마음'이라는 단어가 재테크와 당최 어울리기나 한단 말인가? 홀린 듯 책을 집어들었다. 이 책은 '저소비'라는 단어를 앞세우고 있지만 사실은 행복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말한다.
무엇을 줄일 것인가 보다는 어떻게 행복해질까, 그러려면 어떤걸 줄일 수 있을까에 대한 지침서이다.
'스타벅스에서 아침마다 커피를 사마시니까 돈이 안모이지'가 아니라 '왜 아침마다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사마시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스타벅스라는 공간이 좋아서인지, 또는 아침마다 나가서 커피를 사는 행위가 하루를 시작하는 터닝포인트라서 인지, 커피가 맛이 있어서인지, 아니면 그냥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사는 나라는 감각이 동기부여가 되는지. 소비의 이유부터 들여다 본다. 그리고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더 효율적인 선택을 찾는 것이 저소비 생활의 시작이다.
'왜 그 소비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은 스스로의 감정과 만족을 주는 부분을 들여다보면서 무작정 참는 소비를 멈추고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덜 소모적인 선택으로 방향을 찾게 해준다.
요즘 소비 트렌드는 가격표를 그대로 믿지 않는 '프라이스 디코딩'이라고 한다.비싸다고 마냥 좋은 것도 아니고, 저렴한 것을 샀다고 해서 현명한 소비를 한 것만도 아니다. 중요한 건 왜 그 소비를 선택했는지 스스로 설명할 수 있는 가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저소비'란 남들의 기준이 아니라 내 스스로의 기준에 의한 것이다. SNS의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누구나 선망하는 있어보이는 좋은 삶의 모습이 아니라, 내가 가장 편안하게 만족할 수 있는 선택을 위한 기준. 그 기준이 생기면 불필요한 소비는 자연스럽게 줄어들 것이다. 수행자도 아닌데 억지로 참고 포기하지 않아도.
광고, 알림톡, 특가 문자 ...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지금 아니면 손해!'라는 압박을 받는다. 작가인 가제노타미는 외부의 제안을 너무 많이 받아들이면 정작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는 알 수 없게 된다고 말한다. '좋아진다'는 말이 '해야한다'로 읽힌다면 그건 압박이 되고, 우리는 쉽게 스스로를 잃게 된다.
이 책은 계속해서 자기 자신에게서 답을 찾아야 한다고 말해준다.
저소비 생활의 본질은 결국, 아껴쓰고 나눠쓰고 버티는 추억의 아나바다 운동이 아니라 나의 만족과 마음의 평화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를 명확히 아는 삶의 형태이다. 어떻게 보면 돈 뿐만 아니라 마음의 소모를 줄이는 방법이기도 하다 지속되는 불황 속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통장잔고만큼 중요한 스스로의 마음이 아닐까?
이 책을 읽고 나의 만족스러운 삶에 대한 생각이 깊어졌다. 스스로에 대해 들여다보고 나만의 기분좋음을 기준으로 선택하고 소비하고 살아보려 한다.
자꾸만 늘어나는 물건과 차오르는 장바구니를 비우기 전에 내가 왜 그렇게 채우고도 자꾸만 부족하다 느꼈었는지에 대해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면 읽어 보기를 추천하는 책, 가제노타미의 '저소비 생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