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바늘 뜨기

by 수정

나는 내향인이다. 밖에서 사람들을 만나 밥도 먹고 커피도 술도 마시고 수다 떠는 것도 즐기지만 시간이 너무 길어지면 기가 빨리는 기분이 든다. 밖에서 보낸 시간만큼 집에서 조용히, 혼자 있는 시간을 채워줘야 몸과 마음이 충전된다. 그래서 나에게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매우 중요하고 소중한 시간이다.

브런치를 시작할 때 작가 소개글에 취향은 없지만 취미는 많다고 적었다. 그렇다고 정말로 취향이 없는 것은 아니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는 내 의견보다는 상대의 의견을 따르는 편이다. 그러니 남들이 볼 때에는 호불호가 없는 그저 무엇이든 괜찮은 뚜렷한 취향이 없는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혼자만의 시간은 다르다. 혼자만 있을 때는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즐거운 것만 하면 되니까. 그래서 나는 혼자서 즐기는 취미가 많아졌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뜨개질이다.

어릴 때 엄마가 대바늘로 직접 떠주신 스웨터나 조끼등을 자주 입었던 나는 엄마를 졸라 뜨개질을 배웠다. 코 잡는 법, 겉뜨기, 안뜨기 등을 배우기는 했지만 목도리나 옷을 만들기에는 실력도 부족하고 시간도 오래 걸려서 곧 흥미를 잃었고 한동안 잊고 살았다. 본격적으로 뜨개질에 빠진 것은 우연히 친구가 코바늘로 수세미를 뜨는 것을 보고 난 뒤였다. 그동안은 대바늘 뜨개질만 알고 있었는데 코바늘로 하는 뜨개질은 갈고리같이 생긴 바늘 하나로 원피스 모양, 딸기 모양 등의 예쁜 수세미들을 금방 만들 수 있었다. 그때는 마침 첫째가 어린이집에 다닐 무렵이었고 나는 갑자기 생긴 여유시간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던 때였다.

그 친구도 코바늘을 시작하지 얼마 안 된 상황이었지만 나보다는 아는 게 많아서 본인이 아는 것들을 가르쳐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실을 잡는 것도 어색하고, 코도 잘 보이지 않아 바늘을 어디에다 넣어서 어디로 빼야 하는지, 그림같이 생긴 도안들은 도대체 무슨 뜻인지 답답하기만 했는데 어찌어찌 수세미 하나를 완성하고 보니 실수한 부분도 크게 티도 안 나고 무엇보다 조금만 시간을 투자하면 결과물이 바로 나오니 너무 좋았다. 그 이후로 나는 초보자를 위한 코바늘 책을 사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요즘에는 유튜브에서 원하는 것을 쉽게 배울 수 있지만 그때만 해도 무료 영상들이 많지 않았고, 뭐든 책으로 배우는 걸 좋아하는 나는 초보자가 보기 좋은, 큼지막한 그림과 사진이 있고 설명이 잘 되어있는 책을 사서 집에서 혼자 연습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암호같이 보이던 도안들이 점차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기본이 되는 사슬 뜨기와 짧은 뜨기, 한길긴뜨기만 알아도 충분히 작품을 만들 수 있다. 수세미를 만드는 도안은 거의 대부분 한길긴뜨기로만 되어있기 때문에 그것만 익숙해져도 집에서 쓰는 간단한 수세미 하나쯤은 금방 만들 수 있다. 무늬도 없이 둥그런 모양만 뜨던 나는 무늬 뜨는 법도 터득하게 되었고 점차 복잡하고 어려운 도안도 볼 수 있게 되었다. 누구에게 선물로 주어도 흠이 되지 않을 만큼의 수준에 도달하자 갖고 싶었던 비싼 코바늘을 사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시기에 나는 에티모 코바늘 세트를 두 개나 사버렸다. 꽤 비싼 금액을 주고 사버렸으니 코바늘을 나의 평생 취미로 삼기로 했다. 이제 빼도 박도 못한다.

수세미 뜨기로 자신감이 쌓인 나는 작은 지갑이나 가방을 뜨는 것에도 도전했다. 수세미보다는 상대적으로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고 한참 뜨고 나서 잘못 뜬 부분을 발견하면 '푸르시오'를 시전해야 하는 고달픔이 있긴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 마음만 있다면 결국엔 완성할 수 있다. 이때부터는 실 값과 나의 수고가 조금 더 많이 들기는 하지만 뜨개를 취미로 삼아버린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면 스웨터나 카디건 같은 옷을 뜨고 싶어진다. 그러려면 대바늘 뜨개로 갈 수밖에 없다. 결국 나는 대바늘 세트도 사버렸다. 하지만 대바늘 뜨기는 시간도 오래 걸리고 나에게는 조금 버거웠기에 대바늘 세트는 장롱 속에 고이 잠들어있다. 미련이 남아 아직 처분하지 못했지만 언젠가 다시 빛을 볼 날이 있기를.

아무튼 코바늘은 여전히 나의 즐거운 취미 중 하나이다. 혼자서 따뜻한 커피 한잔과 함께 코바늘로 사부작사부작 무언가를 만드는 게 참 좋다. 엄마에 대한 연재를 끝내고 무엇을 써볼까 고민했는데 앞으로 코바늘 뜨개에 관한 이야기를 생각날 때마다 몇 개 써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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