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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정 Nov 05. 2024

사춘기 자녀가 있다는 것

"나가!"
요즘 내가 자주 듣는 말이다.
어떤 때는 말하기도 싫은지 새를 쫓듯이 손을 훠이훠이 휘적거리며 나가라는 신호를 보낸다.
들어도 들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말이다.
갑자기 서러워져서 혼자 눈물 흘릴 때도 있었다.
여기 내 집인데.. 노크도 했는데..


처음에 몇 번은 서로 불꽃이 파바박 튀도록 악을 쓰며 싸웠다.
엄마한테 예의 없이 그게 무슨 말버릇이냐로 시작해서 저 깊이 묻어두었던 잔소리들이 줄줄줄 터져 나오면 딸은 딸대로 서운하고 힘들었던 감정들을 폭발시켰다.
그러다가 깨달았다.
그럴수록 서로에게 날 선 말들만 하게 된다는 걸..
본심은 그게 아닌데 감정만 상하고 상황은 더 안 좋아졌다.


몇 차례의 경험 끝에 입을 다물기로 했다.
딸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면, 아마도 내가 딸 방에 들어갈 때마다 잔소리를 했었을 테고 그런 상황들이 반복되다 보니 자연스레 내가 들어오면 곧 잔소리가 떠올랐을 것이다.


사춘기 자녀에게는 사랑하는 마음은 가지되, 눈도 입 닫고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 책으로도 자녀교육 영상에서도 많이 보고 들어서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내가 진짜로 그렇게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어떤 때는 '이러면 내가 아이를 포기하는 거 아닌가?', '엄마라면 듣기 싫어하는 잔소리를 해서라도 아이를 바르게 이끌어 줘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그것도 아닌 것 같다. 그것도 그냥 내 기준에 아이를 맞추고 싶은 내 욕심이었다.
아이는 이미 무엇이 옳고 그른지 잘 알고 있고, 알아서 잘 자라고 있는 중이었다. 정답이 없는 인생길에 내가 일러주는 길이 바른 길인지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내려놓는 것은 쉽지 않았다. 못 미더운 마음에 자꾸 뭔가를 하도록 지시하고 싶고, 고쳐주고 싶어서 말들이 불쑥불쑥 나왔다.


사춘기 자녀가 있다는 게 어떤 건지 예전에는 알지 못했다. 나에게 그 일이 닥치고 내가 경험해 보기 전까지는 정말 모르는 일이다. 몇 년간 서로 이런저런 일들로 사이가 좋았다가 나빴다가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나도 마음이 놓였다. 이건 될 대로 되라며 포기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그냥 믿어주는 게 최선이구나.
아이는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거구나.
그렇게 아이와 함께 나도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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