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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현이 Nov 15. 2024

삶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들

4. 역사 속으로 관통하다.

지리산 둘레길 제2코스는 남원 운봉마을에서 인월마을까지 10km 거리다. 4시간을 걷는 코스로 알려졌으나 걸음에 따라 도착시간은 달라진다. 걷는 속도에 따라 2시간에도 완주한다고 했다.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새로운 공간을 마주할 때마다 지난 일을 되돌아보고 나 알아차리는 것이 목적이다. 지리산 둘레길 2코스를 걷기 위해 모인 일행들은 안내 표지판에 모여 인증 사진을 찍으며 인생에 남을 만한 추억을 한 장 남겨 보았다.


일행이 걸어갈 장소는 지리적으로, 남쪽으로는 정령치와 고리봉과 바래봉을 잇는 지리산 서북 능선을 바라보고 있다. 북쪽으로는 수정봉과 여원재 그리고 고남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을 바라보며 걷는 길이다. 이 길은 옛날 통영별로 길과 림천변의 제방길이 연결된 폭이 넓고 평이 한 길로 초보자들도 어렵지 않게 걸을 수 있다. 천변으로 연결되는 도로 가장자리에는 연보랏빛 쑥부쟁이 꽃들이 아기자기하게 피어 있었다. 밤새 내린 비에 촉촉이 젖어 있는 들꽃들을 바라보고 추수가 끝난 들판을 걸었다.


추수가 끝난 들판은 만추의 기쁨을 뒤로하고 평안하게 쉬고 있는 듯했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자연에서 얻은 편안함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운봉마을은 고산 지대에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모내기를 하는 지역이라고 한다. 천변을 따라 걸으며 들리는 시원한 물소리는 발걸음을 더 경쾌하게 해 주었어요. 저 멀리 두루미 한 마리가 눈에 띄었다. 한참을 넋 놓고 바라보니 주위에 현혹되지 말고 어서 가던 길 가라!" 하고는 어디론가 휘리릭 날아가고 만다. 들판을 날아오르는 그 모습이 자유롭고 평화로워 보였다.


운봉마을에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돌로 만든 석장승이 있었다. 지리산 둘레길 제2 코스 시작점에서 200미터 정도 걸어오다 보면 가을빛으로 물들어 있는 공원이 보인다. 공원 바로 옆에 석장승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석장승 모습치고는 너무 겸손한 모습으로 서 있어서인지 모르고 지나치는 일행들도 많았다. 세상에 많은 것들은 알아차리지 못하면 순간 스쳐 지나가는 바람 같은 것이다.


둘레길을 걷다 보면 마을 일대 역사 문화유산을 즐기며 걷기 좋은 구간들이 곳곳에 많다. 신기 마을 숲은 이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서  주민들이 직접 흙을 쌓고 조성된 숲이라고 한다. 성을 쌓을 만큼 흙을 쌓는 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왜구들의 침략에 어떻게 해서든지 마을을 지키고자 하는 주민들의 염원과 간절함이 느껴졌다.


인월마을로 가는 길에 황산대첩비를 만났다. 가을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웅장하게 서 있는 기념비를 보고 가기 위해 일행들은 모두 여기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태조 이성계도 황산 전투에 앞서 이곳에 앉아 차 한잔을 마시며 나라를 걱정하셨을 것 같았다. 고창에서 오신 일행 한 분이 덕유산에서 직접 채취하고 덕은 녹차와 홍차를 가져오셔서 빗길을 걸어서 힘든 몸을 따뜻하게 녹여 주었다.


운봉마을과 애월마을 일대 역사를 되새기며 걷다 보니 마지막 코스에 다다랐다. 여기서부터는 두 마을을 잇는 고개를 하나 넘어야 한다. 도착 지점으로 가기 위한 마지막 관문 같은 곳이다. 고갯마루를 넘고 세 갈림길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서 일행들을 기다리기도 했다. 곳곳에 밤나무가 있는 산등성이를 넘어서자, 모두는 어느새 친구가 되어갔다.


일행의 선두에서 길잡이를 해 주신 스님 한 분이 동행했다. 스님께서 고개를 넘기 전에 잠시 쉬었다 가자고 했다. 역사 속을 관통하면서 나의 역사를 쓰고 있는 길에 잠시 걸음을 멈췄다. 지리산 둘레길 완주까지 마지막으로 쉴 수 있는 곳이다. 높은 언덕 위여서 공기도 맑고 경치도 좋았다. 소나무 그늘 아래로 바람이 고개를 넘어가면서 행복을 한 아름 안겨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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