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10주년 팝업 '작가의 꿈'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가을 브런치 팝업을 찾았다. 그때의 나는 브런치에 갓 입성한 어리버리한 초보 작가였다. 세련된 문장들 틈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 애쓰며, 브런치라는 세계의 공기를 익히던 시절이었다.
1년이 지나 다시 찾은 브런치 10주년 팝업에서, ‘작가의 꿈 100편’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올해는 11월에 출간될 <널 보낼 용기>를 함께 작업한 편집자님과 마케터님과 동행해서 더욱 뜻깊었다.
스텝분이 다가와 내 글에 사인을 해도 된다며 펜을 주셨다. 엉거주춤하게 서서 평소보다 영 못한 글씨로 좋아하는 책의 제목을 변형해 한 줄을 남겼다. 아픔이 길이 되길 바라면서.
https://brunch.co.kr/@summer2024/81
함께 글로 교류하던 작가님들의 이름을 발견했을 때는 오랜 벗을 만난 듯 반가웠다. 글들을 사진으로 담으며 마음속으로 인사를 건넸다.
브런치가 걸어온 10년은 생각보다 훨씬 단단했다.
-브런치 작가 출간 도서수 1만 권
-브런치 베스트셀러 Top10 판매액 470억
-새로운 기회와 연결된 누적 제안수 10만 건
-브런치 작가수 9.5만 명
-브런치 누적 회원수 440만
-브런치 누적 응원금액 4.5억
이 수치들은 단순한 데이터라기보다 ‘쓰고 싶은 사람들’과 '장을 열어준 사람들'이 함께 만든 궤적이다. 특히 1만 권이라는 책의 숫자는 놀랍다. 내 책을 쓰고 싶은 마음이 실제 결과로 이어졌다는 사실. 지난 1년 동안 여러 작가님의 출간 지켜봤고, 이제 다음 달이면 나 또한 그 1만 권 위에 한 권을 더 얹게 된다. 두 번째 책, 그리고 언젠가 세 번째 책까지. 그 길의 일부로 오래 머물 수 있기를 바란다.
브런치에서 출간으로 이어진 Top 10 책들의 판매액이 470억 원이라는 사실만큼 인상 깊었던 건, 그 모든 숫자가 ‘누군가의 문장’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숫자 너머엔 글을 붙잡고 있는 작가들의 시간이 있다. 누군가가 쓴 눈물, 실험, 실패, 재출발, 상상, 상실. 그 수많은 결들이 모두 한 플랫폼의 역사가 되었다.
브런치 팝업은 화려하지 않았다. 대신 따뜻했고, 사색할 수 있었고, 조용히 글을 읽을 수 있는 여백이 있었다. 그 적당한 온기가 참 좋았다.
그리고 또 하나 느낀 건, 브런치는 여전히 에세이가 강세라는 사실이다. 에세이로 책을 내고 싶은 사람에게 가장 이상적인 공간. 최근 소설을 쓰며, 브런치가 서사보다는 서정에 더 친화적인 플랫폼이라는 걸 실감하고 있다. 실제로 이야기 중심의 소설은 다른 대형 플랫폼이 효율적이라는 조언도 들었다. (그런 점을 보완하기 위해 브런치에서도 공모전 '소설부문'을 추가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브런치는 속도보다 깊이를 택하는 공간이다. 조회수의 높낮이보다 문장의 밀도를, 화제보다 지속력을 중시한다.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좋다. 나는 그렇게, 느리지만 단단하게 나의 문장을 쌓아 올려가련다.
우디 알랜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주인공 길은 문학적 확증을 갈망하며 우연히 만난 헤밍웨이에게 자신의 글을 봐줄 수 있냐고 묻는다. 헤밍웨이는 단칼에 거절한다.
"못 썼으면 못 써서 싫고, 잘 썼으면 질투 나서 더 싫겠지. 다른 작가의 의견은 듣지 말게나. "
길이 자신의 소설을 들려주며 자신 없는 목소리로 엉망이냐고 묻자 헤밍웨이는 이렇게 말한다.
"영 아닌 소재란 없어. 진심이 담긴 이야기라면. 또 글이 맑고 진실되며, 시련 속에서도 용기와 품위를 잃지 않는다면."
진심을 다해 진실되게 쓰는 일. ‘쓰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게 된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다. 한 주 한 편의 글을 올리기 위해 매일 앉는 엉덩이의 시간을 거치다 보면 누군가의 마음을 건드리는 문장을 쓰는 날이 오겠지. 그리고 내 문장에 나 역시 위로받는 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