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의 합병증
1. 다른 합병증과 달리 신장엔 효과가 검증된 약이 있어서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2. 지난주 이야기를 요약하고 가겠습니다. 당뇨로 인한 신장의 기능저하는 다음과 같은 차례를 겪습니다.
1) 고혈당으로 초과 여과된 포도당을 재흡수하느라 항진된 포도당-나트륨 공동 수송(SGLT) 때문에 사구체는 과여과되고, 줄어든 나트륨 농도로 레닌-안지오텐신-알도스테론 시스템 (RAAS)이 항진됩니다.
2) 과여과, 고혈당, 산화 스트레스까지 더해지니 사구체의 3중 막 필터 시스템이 손상되기 시작합니다.
3) 망가진 사구체 사이로 원래라면 통과되지 못할 물질들이 소변으로 나오기 시작합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단백질, 미세알부민뇨입니다.
3. 단백뇨는 사구체 손상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본격적인 신장 손상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과장해서 말씀드린다면 사구체가 손상되더라도 단백뇨가 나오지 않는다면 신장기능은 훨씬 느리게 악화될 수 있습니다.
4. 단백질 또한 포도당과 마찬가지로 우리 몸에 매우 귀중한 자원이므로 혹시라도 사구체를 넘어가는 일이 생겨도 함부로 소변으로 배출하지 않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 신장은 1) 일단 거른 뒤 2) 재흡수하는 구조로 되어 있는데, 단백질도 마찬가지로 세뇨관에서 재흡수가 가능합니다. (사구체 → 세뇨관 → 집합관 → 요관 순서) 한데 단백질의 재흡수 과정은 좀 특이합니다. 단백질은 마치 잡아 먹히듯이 소변에서 신장 내부로 흡수되었다가 (Endocytosis) 세포 내에서 소화되고 난 뒤 (Lysosome) 혈관으로 배출됩니다.
5. 단백질은 비누 방울(소포) 같은 것에 둘러 쌓여 먹힌 뒤 세포 내부에서 분해효소인 리소좀에 의해 아미노 산(단백질의 기본 단위)까지 분해됩니다. 마치 위와 소장에서 일어나는 일과 비슷합니다. 그런데 예상하셨다시피 아무리 대식가라 할지라도 소화 가능한 최대 용량은 있습니다.
6. 정상적인 경우 단백질은 사구체를 통과하지 못하므로, 근위 세뇨관에는 극히 소량만의 단백질이 존재했고 먹어 치우기에 썩 부담되는 양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사구체가 망가지기 시작해 넘어온 단백질이 너무 많아지면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먹어 치워도 쌓이기 시작하면 그제야 소변에서 단백질이 검출되기 시작합니다.
7. 처리가 되지 못한 단백질은 차라리 소변으로 죽죽 나오기라도 하면 나을 텐데, 그 안에서 머물면서 세뇨관 세포(PTC)들을 자극하는 탓에 더 큰 문제를 일으킵니다. 떠도는 단백질을 처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염증 물질이 모여듭니다. 넘치는 단백질들을 먹어 치우느라 지칠 대로 지친 리소좀도 문제가 됩니다. 과식한 리소좀 주변엔 먹다 남은 단백질 조각과 노폐물이 축적되기 시작합니다. (마치 지방간처럼요!)
8. 결국 근위 세뇨관 세포는 자멸(Apoptosis)하기 시작합니다. 우리 몸의 세포는 기능을 잃거나 죽게 되면 주변에 영향을 끼치지 않기 위해 마치 묘지처럼 덮어 썩게 만드는 과정이 있습니다. 사멸한 PTC에서 분비하는 염증성 사이토카인과 섬유화 유발 인자(예: TGF-beta)는 흉터처럼 지저분한 흔적을 남깁니다. 본격적인 신장의 섬유화(Fibrosis)가 시작되는 결정적인 순간입니다.
9. 단백뇨(미세알부민뇨)는 당뇨병성 신장병증의 진행을 보여주는 표지자인 동시에 진행을 악화시키는 요인이기도 합니다. 이는 당뇨병성 신장병증에만 한정된 것은 아닙니다. 사구체신염이나 고혈압성 신장병 등 어떤 신장병증이든 간에 재흡수 능력을 초과한 단백뇨는 세뇨관세포에 독성으로 작용하고 신장의 섬유화를 가속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단순히 단백뇨가 좀 나온다며 별 것 아닌 것으로 생각하면 안 되겠습니다.
10. 또한 단백뇨의 출현은 크레아티닌의 상승보다 먼저 일어나는 일이며, 단백뇨가 나올 때까지만 해도 사구체의 기능을 반영하는 크레아티닌은 상승하지 않고 오히려 낮게 나올 수도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퀴즈나 당뇨환자 A 이야기를 들어 말씀드리고 싶었던 것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크레아티닌의 상승은 신장의 섬유화가 진행되어 사구체의 개수 자체가 감소한 뒤에 일어납니다.
11. 또한 당뇨병성 신장병증의 초기에는 혈중 크레아티닌은 증가하지 않거나 되려 낮아지는 경향도 있습니다. 이것은 진입하는 혈관은 확장되고 나가는 혈관은 수축되므로 중간에 끼인 모세혈관에는 충분한 혈액이 머물러 더 많은 크레아티닌을 걸러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섬유화가 시작된 이후에도 크레아티닌은 당분간 오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배설되는 크레아티닌의 약 10~20%는 사구체 이후 신장, 세뇨관에서 추가로 분비되는데 특히 신장 기능이 저하되더라도 이 능력은 유지되기 때문입니다.
12. 그래서 당뇨환자 A 씨는 단백뇨는 1145나 나오지만, 크레아티닌은 0.82 밖에 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크레아티닌을 통해 간접적으로 구해낸 GFR 역시도 83이나 나왔으니 GFR 기준만으로 신장병증의 중증도를 판단한다면 과소평가될 여지가 있습니다.
13. 위 표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GFR 기준으로는 G2밖에 되지 않지만 미세 알부민뇨로 기준으로는 A3이나 되어 신장손상이 크게 우려되는 상황이므로, A 씨는 치료가 시급한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14. 다행히도 당뇨병성 신장병증에 대해서는 치료효과가 검증된 약이 있으므로 당뇨환자는 신장병증이 본격화하기 전에 조기에 발견하여 약을 복약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15. 먼저 SGLT-2i 가 있습니다.
https://brunch.co.kr/@ye-jae-o/107
16. SGLT-2i는 기전부터 신장병증에 효과가 없으래야 없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면 모든 사건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는 혈중 포도당 과다 → 사구체 여과 능을 초과 → 도망친 포도당을 재흡수하기 위해 과활성화된 SGLT을 안정화시키는 기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 주워올 필요 없어. 이미 혈액에 많으니까)
17. 첫 단추를 다시 끼우는 작업만으로 생각보다 많은 일이 해결됩니다. SGLT-2i는 대규모 무작위 대조 임상시험(RCT)을 통해 신장병증의 악화를 막고 신장기능을 보호하는 효과가 증명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효과는 당뇨병으로 인한 신장병증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18. SGLT-2i는 섬유화 위기에 처한 세뇨관 세포에 스트레스를 줄여 세포 손실을 방지하고, 염증성 사이토카인 및 섬유화 유발 인자의 발현도 직접 억제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단순히 사구체의 압력을 낮추는 혈역학적 효과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신장의 만성적인 염증 및 섬유화 과정도 늦추거나 일부 개선합니다.
19. 혈압약으로 쓰이는 안지오텐신 전환효소 억제제 (ACEi)와 알도스테론 수용체 차단제 (ARB)도 있습니다. 사실 ACEi나 ARB의 보호효과는 SGLT-2i보다 훨씬 전에 증명되어 있습니다.
20. 이 혈압약은 안지오텐신 II의 작용을 차단함으로써 사구체를 통과한 모세혈관이 나가는 출구인 수출 세동맥을 늘려줍니다. 맞습니다. 과여과의 기전 하나를 또 해소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https://brunch.co.kr/@ye-jae-o/83
https://blog.naver.com/maztako/223996781170?trackingCode=blog_bloghome_searchlist
21. 앞서 요소와 크레아티닌, 사구체 여과율, 고혈당으로 손상되는 사구체막의 구조, 단백뇨가 나오는 당뇨환자 A 씨에 대해 말씀드린 것은 위의 약을 처방받으시기를 권유받으셨다면 지체 없이 드시는 것이 좋다는 말씀을 드리고자 함이었습니다.
22. 그런데 작지만 한 가지 반전이 있습니다. 당뇨환자 A 씨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씀 기억나시나요? "이 무식한 돌팔이야!" 사실 2025년 한국 당뇨병학회의 진료지침에 따른다면 당뇨환자 A씨는 ARB를 처방받는 것이 썩 바람직한 결정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진료지침에 따르면 알부민뇨가 있든 없든 "혈압이 정상"이라면 (얘방목적으로는) ACEi 나 ARB는 쓰지 마라고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과량의 알부민뇨가 확인되는 환자에게 ACEi나 ARB를 고려하라는 국외 지침과는 차이가 있음)
23. 하지만 또다시 반전이 있습니다. 당뇨환자의 혈압 관리 목표는 130/80mmHg 미만이므로 A씨는 일반인의 기준으로는 고혈압이 아니나, 이완기 혈압이 80mmHg가 넘으니 적극적인 혈압관리가 요구되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A씨는 SGLT-2i 는 물론이고 ARB를 처방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