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현재 우리나라에서 시도해 볼 수 있는 지방간 치료제로는 비타민 E (토코페롤), 경구 당뇨약, 그리고 GLP-1 수용체 작용제인 위고비가 있습니다.
2. 2025년 8월 FDA(미국 식품의약청)는 대사이상지방간염 (metabolic dysfunction-associated steatohepatitis, MASH), 즉 흔히 말하는 지방간에 대한 두 번째 치료제를 승인합니다. 레즈디프라를 이어 공식적인 지방간의 치료제로 인정받은 약은 바로 Semaglutide, 위고비입니다. (국내는 승인 전)
3. 위고비의 지방간에 대한 치료 효과를 검증한 Essence 연구에서는, 위고비를 투여받은 군의 절반이 넘는 63%의 참여자가 지방간염 개선을 경험했다고 보고했습니다. 무엇보다 간의 섬유화 개선에 성공한 환자가 37%에 이르렀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4. FDA에서 지방간의 치료제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조직검사를 통해 섬유화(간경화)가 개선된 것이 확인되어야 합니다. 뒤에서 다룰 기존의 약물은 간의 염증 수준 개선 효과는 보였지만 섬유화 개선에는 실패했고 결국 지방간의 치료제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앞서 다룬 THR-베타 작용제인 레즈디프라와 위고비는 섬유화 개선에 성공함으로써 공식적인 치료제로 인정 받게 됩니다.
5. FDA에서 간 섬유화의 개선 유무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환자의 예후와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섬유화가 동반되지 않은 비알코올성지방간은 일반인 대비 1.71배 수준의 사망률을 보이지만, 간경변증(F4)까지 이르게 된 지방간 환자는 사망률이 3.79배로 훨씬 높아집니다. 그래서 유의한 수준(F2이상)의 간 섬유화는 전체 사망률 및 간 관련 사망률 증가의 독립적이고 가장 강력한 예측인자입니다.
6. 한데, 위고비가 보여주는 치료 효과를 두고 체중이 줄어들면서 따라오는 간접적이거나 부가적인 효과라고 과소평가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지방간의 개선 효과 중 체중 감량과 무관하게 획득된 부분이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7. 체중 감량과 무관한 위고비의 치료 효과를 설명하는 몇 가지 이론이 있습니다. 첫 번째로, 간 내에서 신생 지방 합성량이 줄어드는 효과를 지목합니다. 인슐린 (김여사)의 명령을 어기고 귀한 포도당을 글리코겐으로 바꾸지 않고 자꾸 지방으로 만들어내던 간이 GLP-1의 신호를 받아 정상화된다는 이론입니다.
8. 두 번째 기전은 간의 섬유화(간경화) 개선을 가능하게 하는 GLP-1 Ra의 항염증, 항섬유화 효과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GLP-1 Ra는 장-뇌-GLP-1R 축을 활성화시켜 과도하게 활성화된 염증반응을 정상화시킵니다. 마지막으로 위고비는 간 섬유화에 관여하는 간성상세포(HSC, Hepatic Stellate Cell)도 억제한다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https://brunch.co.kr/@ye-jae-o/117
9. 위고비와 레즈디프라가 공식적인 치료제로 인정받기 전까지만 해도 지방간의 치료에 쓸 만한 약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한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주변에서 지방간이 아닌 사람을 찾기가 힘들 정도로 흔한 질병인데도 막상 치료제가 하나도 없었다는 사실은 꽤 흥미롭습니다. 또한 시도된 치료제가 가진 기전과 연구에서 보여준 효과를 살펴보면 지방간에 대한 이해를 향상하는데 큰 도움이 되므로 다루어 볼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더불어 국내에서는 지방간에 대한 치료제로 세마글루타이드, 위고비를 인정하기 전이기도 합니다.)
10. 지방간의 치료로 쓰였던 첫 번째 약은 경구 당뇨약제 중 가장 먼저 소개해드렸던 PPAR-γ 작용제 (TZD) 피오글리타존입니다. 비록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연달아 보고되면서 서서히 주류에서 밀려나긴 했지만 여전히 TZD의 작동 기전은 매력적입니다. 바로, 당뇨의 근본 원인인 지방 독성을 해소하는 방식으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https://brunch.co.kr/@ye-jae-o/105
https://blog.naver.com/maztako/224035662865
11. PPAR-γ 작용제는 유전자를 발현하는 스위치와 같아서 전신적인 대사 변화를 조절합니다. 특히 지방 세포에 PPAR-γ 수용체가 풍부합니다. PPAR-γ 의 신호를 받은 지방 세포는 활발히 분화하고 증식해, 낡고 병들어 인슐린(김여사)의 명령도 듣지 않던 고리타분한 세포들이 파릇파릇하고 말도 잘 듣는 새로운 지방세포로 변하게 됩니다.
12. PPAR-γ 작용제는 간에도 존재하므로 지방간의 치료에도 쓰일 수 있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기대했습니다. 더불어 TZD는 간 내 미토콘드리아의 활성을 올려 간 내 지방을 연소시키고(마치 레즈디프라, THR-베타 작용제처럼), PPAR-γ 신호를 받은 간에서는 항염증 과정이 시작되므로 (마치 위고비, GLP-1Ra처럼) 이른바 촉망받던 지방간 치료제 중에 하나였습니다.
13. 하지만 PPAR-γ 작용제는 조직학적 개선 (섬유화 개선)을 보여주지는 못했습니다. 과학자들은 PPAR-γ 작용제의 한계를, PPAR-γ 수용체가 간세포가 아닌 지방세포에 주로 분포한다는 점에서 찾습니다.
14. 다만, 최근의 연구에서 TZD, 피오글리타존을 더 오랫동안 장기간 사용할 경우에 섬유화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이 엿보인다고 합니다. 가이드라인에서도 '향후 간경변증이 없는 대사이상지방간염환자에서 지방간염 및 간섬유증에 대한 pioglitazone의 조직학적 효능을 대규모 3 상임상 시험을 통해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라고 언급합니다.
15. 비타민 E(알파-토코페롤) 또한 지방간 치료제로서 가능성을 주목받아 왔습니다. 하지만 간 염증의 개선은 여러 연구에서 증명되었어도 간 내 섬유화 개선에는 실패하며 공식적인 치료제로서 인증받지는 못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이미 나 버린 흉터를 없애고 그 자리에 새로운 살을 돋아나게 만드는 것은 제법 쉽지 않은 일 같습니다.
16. 초음파 검사 소견에서 '중등도 지방간'이라는 결과를 받은 환자분들과 상담하며 주로 말씀드린 약이 바로 이 비타민 E, 토코페롤입니다. 물론 뒤에 이어질 생활습관의 교정에 대해서 충분한 설명을 해드리긴 해도 너무 뻔한 이야기만 해드리면 답답하실 수 있으니까요. TZD, 피오글리타존을 소개해 드리고 싶은 마음도 크지만 아무래도 당뇨로 진단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쓰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17. 비타민 E는 피오글리타존보다 더 좋은 효과를 증명하기도 했습니다. 비알코올지방간염(NASH) 환자를 대상으로 비타민 E, 피오글리타존, 위약을 비교한 96주간의 대규모 3상 임상시험 (PIVENS 연구) 비타민 E (800 IU/일)을 먹은 환자의 43%가 간내 염증 개선을 보였고 이는 통계적으로 유의했습니다. (피오글리타존은 실패)
18. 항산화제인 비타민 E는 지방간을 악화시키는 산화 스트레스를 감소시킴으로써 간내 염증을 호전시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당뇨병의 합병증과 마찬가지로 지방간의 악화에도 다름 아닌 미토콘드리아의 기능 저하가 매우 밀접하게 관련됩니다. 과도하게 유입된 포도당을 처리하다 하다 결국 무너져 버린 당뇨 환자에서의 미토콘드리아처럼, 지방간 환자의 간 미토콘드리아 또한 과도하게 유입된 지방산을 무리하게 처리하다가 무너지고 이 과정이 지방간의 핵심 병인으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19. 지용성인 비타민 E는 세포막을 잘 통과하므로 미토콘드리아에서 과도하게 생성된 ROS를 중화하는데 큰 역할을 합니다. 한데, 치료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고용량으로 장기간 드셔야 한다는 점은 걱정이 됩니다. 논란이 있지만 장기간 투여할 경우 전립선암과 출혈성 뇌졸중의 발생률이 높아진다는 보고도 있으며 고용량 비타민 E(400 IU/일 초과) 투여가 사망률 증가와 관련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기 때문입니다.
20. 치료제들을 간단히 살펴보며 드는 생각은 지방간이 [비만/인슐린 저항성/당뇨 및 이상지질혈증]과 같은 병의 다른 측면이라고 느껴지기도 하는 반면, 동시에 전혀 별개의 질환처럼 보이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들게 하는 근거로 대표적으로 사기적인 성능의 당뇨약 SGLT-2i는 의외로 지방간의 치료에는 별 효과가 없으며, 비만하지 않고 당뇨도 없지만 지방간이 심한 환자도 있기 때문입니다.
21. 더불어 생활습관의 교정이 당뇨나 이상지질혈증보다 지방간에서 훨씬 효과를 발휘한다는 점도 차이라고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내일은 지방간을 예방하고 악화시키지 않으며, 나아가서는 개선시키는 (조직학적 개선도 기대가 가능) 생활습관에 대해 다루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