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와 술을 즐기는 50대 중반의 남성 A씨는 최근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간암표지자 AFP가 정상치를 벗어나 있었습니다. 복부 초음파도 같이 받았는데, 초음파에서는 지방간 외에 별 게 없다고 했었습니다. 의사는 지방간이 심하니 이 정도는 오를 수 있다고 했지만 영 불안합니다. CT를 찍어야 할지, 큰 병원을 가야할 지 고민이 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AFP가 높으면 간암이 맞나요?
1. 간암 표지자로 유명한 AFP는 앞서 설명해 드린 CEA와 더불어 암세포뿐 아니라 정상적인 태아 조직에서도 검출되는, 이른바 종양태아성항원의 일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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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AFP(알파태아단백)는 태아의 간과 난황낭(york sac)에서 주로 생성되는 단백질로, 태아의 혈액 내에서 임신 14주에 최대치에 이르고, 출생 후에는 그 수치가 급격히 감소하여 생후 8~12개월만 되어도 성인의 정상 수치(10ng/mL 미만) 까지 감소합니다.
3. AFP는 태아기 혈장의 주요 단백질로서 지방산과 빌리루빈 등과 결합해서 체내에서 운반을 담당하고, 신경계 발달에도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AFP가 부족하면 다운증후군 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보고되어 산전 검사 항목에 AFP가 포함됩니다. 출생 이후에는 CEA와 마찬가지로 AFP를 만들어내는 설계도가 어딘가에 숨겨지고, (전사 억제) 거의 만들어지지 않기에 건강한 성인에서는 소량만 검출됩니다.
4. 태아기, AFP가 맡은 또 다른 중요한 역할 중 '모체의 면역반응을 억제하여 태아 거부 반응을 예방한다'는 점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자궁에 착상된 태아는 엄밀히 말하면 '어머니와 다른 생물'이므로 원칙대로라면 면역반응이 일어나, 제거하거나 배출되어야 하는 운명입니다. 이런 위기에서 AFP가 모체의 면역 체계로 하여금 ‘이 생물은 해롭지 않으니 공격하지 말자.’라는 정보를 전해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5. 임신한 토끼에게 anti-AFP Ab (AFP를 억제하는 항체) 를 주입하였더니 느슨했던 모체의 면역 체계가 다시 작동하기 시작했고, 결국 거부 반응이 일어나 태아는 유산했습니다. 임신한 생쥐에서 AFP를 분리했더니 마치 면역억제제와 같이 다른 항체 합성을 방해하는 현상이 관찰되었습니다. 물론 AFP가 임신 중 태아를 보호하는 유일한 면역 회피 수단이라 하기는 어렵겠지만, AFP가 정상적인 면역반응을 감소시킨다는 사실은 간암에서 유달리 AFP가 과하게 발현시키는 무시무시한 까닭을 짐작하게 합니다.
6. 우려했던 대로, 간암 세포는 정상적인 면역 시스템을 회피하기 위해 AFP를 이용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한 연구에서는 간암에서 유래한 AFP에 노출된 면역 세포(dendritic cell)는 기능뿐 아니라 분화마저 억제되어 성장조차 제대로 못 하는 것으로 관찰되었습니다. CA 125나 CA 19-9처럼 AFP가 암세포를 위장시키지는 않지만, AFP가 많이 나온 바람에 우리 몸의 감시 체계가 느슨해지는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7. 또한 AFP는 새로운 혈관이 만들어지도록 유도하여 암세포에 충분한 영양분과 산소를 공급하도록 합니다. AFP 수치가 높은 활발한 간암 환자는 미세 혈관 침윤이나 재발 우려가 커 종종 예후가 좋지 않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8. 이런 AFP가 간암 세포에서 특이적으로 발현되고 정상 조직에서는 미미하게 존재하기 때문에 면역 치료 대상으로서 이상적인 표적이라는 점은 차후 간암 환자에 대한 여러 가지 치료 옵션이나 유전자 백신의 개발을 기대하게 만드는 점이기도 합니다.
9. AFP는 1963년, 소련의 과학자 유리 타타리노프(Yuri Tatarinov)에 의해 발견되었습니다. 간암의 주요 원인인 B형 간염이 동양권에 널리 퍼져 있었기 때문에, 일본과 중국 우리나라의 연구자들이 주축이 되어 AFP에 관한 연구를 많이 했습니다.
10. 다른 암 표지자들과 마찬가지로 AFP 또한 간암이 아닌 다른 양성 질환에서도 상승할 수 있지만, AFP는 간암의 발생 위험이 큰 고위험군에서 간암을 조기에 발견하기 위한 선별 검사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국가암검진 사업‘의 간암 검진에서도 AFP 혈액 검사가 포함되어 간 초음파와 함께 1년에 2차례 검사비를 지원받을 수 있습니다. (사실 앞서 나온 암표지자와 AFP는 수준이 엄연히 다릅니다.)
11. 하지만 AFP 단독 검사만으로는 간암을 조기에 진단하기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있었고, 이에 최근에는 난소암에서의 CA 125와 마찬가지로 간암에 대한 추가 바이오마커가 발굴되어 활용되고 있습니다.
12. 먼저 PIVKA-II (Protein Induced by Vitamin K Absence or antagonist-II) 가 있습니다. 프로트롬빈은 간에서 만들어지는 혈액 응고 단백질인데, 간암 세포는 비타민 K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관계로 프로트롬빈 일부를 불완전한 형태의 PIVKA-II로 생성합니다. AFP 수치가 정상인 간암 환자에서 PIVKA-II가 오르기도 하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13. 특정 당화형태를 가진 AFP의 비율을 측정하는 방법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AFP-L3%는 총 AFP 중 L3 형태의 분율을 측정하는 검사법으로 정상 간세포나 양성 간질환(간경변, 만성 간염) 에서는 L3 형이 거의 생성되지 않는 특징을 이용합니다. L3가 10% 이상이면 간암의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합니다.
14. 위에서 말씀드린 항목을 종합한 GALAD 점수법이 있습니다. 영국 리버풀 대학교의 필립 존슨(Philip Johnson) 교수가 확립한 이 통계 모델은 성별, 나이, AFP-L3 분율, AFP, 그리고 PIVKA-II를 결합하여 간암 발생 확률을 예측합니다. 이 모델을 이용하면 단일 암 표지자 검사를 하는 것보다 조기 간암 진단 정확도를 크게 향상시킬 수 있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https://www.mdcalc.com/calc/10094/galad-model-hepatocellular-carcinoma-hcc
15. 앞서 말씀드렸듯 AFP는 '국가암검진 사업'에 따라 40세 이상 남녀 중 HBsAg가 양성인 B형 간염, C형 간염 양성자와 간경변증 환자는 1년에 2차례 검사비가 지원됩니다. 정기적인 검진을 통해 간암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으므로 잊지 마시고 혜택을 받도록 하십시오.
* 제가 참고한 논문은 https://pubmed.ncbi.nlm.nih.gov/38619448/ 를 방문하시면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