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의 가치를 믿기

하영하 ━ 기록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by ㅎ과ㅇ

어느 누가 예술을 혼자 하는 일이라 했던가. (그게 나였다!) 예술은 자고로 혼자 독방에 갇혀 끊임없이 고뇌하고, 슬퍼하며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꾸준히 작업물을 쌓아가는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크나큰 오산이다. 창작은 혼자지만, 예술은 일이다. 일은 협업이 필수적이다.


(겉으론 그렇게 안 보이지만) 나는 꽤 내성적인 사람이다. 에너지의 방향이 안으로 쏠려 있다고 해야 할까.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고, 집 밖에선 실시간으로 기가 빨린다. 다수보다 소수의 만남을 선호하고, 주로 실내에 앉아 대화를 나누며 유대를 쌓은 사람 위주로 인간관계를 형성해 왔다. 이쯤 되면 내가 얼마나 관계에 빡빡한 사람인지 예상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예술 안에서 연대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앞서 말했듯, 창작과 예술은 고된 과정에 스스로 몸을 내던짐과 같다. 혼자서 버티기 어려운 환경이다. 나와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이들의 얼굴만 봐도 그 고됨이 여실히 드러난다. 불합리함을 겪는 일도 비일비재하고, 많은 창작자가 내적, 외적으로 힘겹게 싸우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예술 업종에 속해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주변이 창작자들로 이루어져 있는데작가, 기획자, 배우, 연출가, 디자이너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며 늘 들어온 고민은 ‘외로움과 예술 지속성’이었다.


요즘은 예술과 상업의 경계에서 작업하는, 소위 말해 잘 팔리는 작업을 선보이는 예술가가 많다. 그 반대편엔 아무도 모르게 자기 작업을 지속하는 작업자도 있다. 나 또한 그렇다. 우리는 예술을 시작한 계기, 목적, 목표도 전부 다르지만, 심리적 공통 지점이 있었다. 하나는 외로움. 다른 하나는 예술을 지속할 수 있을까에 대한 불안감이었다. 그들과 나는 같은 어려움을 짊어지고 사는 사람들이다. 나는 그들을 보며 버티고, 누르고, 빠져나오는 ‘지속의 힘’을 느낀다.


세상은 개인주의 사회로 변모하고 있다. 크리에이터와 같은 1인 기업이 많아지고, 회사를 벗어나 개인적인 일에 시간과 돈을 쓰며 독립을 꿈꾸는 사람들이 흔해졌다. 매체를 통해, 스스로 자리를 잡고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쉽게 주목을 받는다. 하지만 사회는 공동체를 기반으로 한다. 혼자서만 살아갈 수 없다는 의미다. 인간은 모두 누군가의 도움과 관심이 있어야 성장할 수 있다. 나 또한 프리랜서 생활을 오래 했기 때문에, ‘같이’보다 개인에 집중한 삶을 살아왔다. 그게 정말 나 혼자서 이룬 것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나에게 일을 맡겨준 회사, 중간에서 소통 창구가 되어주는 담당자, 그 외에 같은 분야에서 시장을 형성하는 모든 창작자와 함께 일하고 있다. 불합리한 일을 당했을 때 가장 먼저 소리 내주는 사람이 같은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서로 누가 누군지 몰라도 그 속의 끈끈한 연대가 그럼에도 해낼 수 있다는 용기를 주었다. 나는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고 성장했다. 나에게만 머물도록 두기만 하면, 고여서 썩는다. 다정함을 흘려보내니, 인고의 시간을 함께 견디며 살아간다는 걸 깨달았다. 앞서 걷고 있던 수많은 선배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다.


버티고, 누르고, 빠져나오려면 나와 맞는 사람들과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일이 지속에 도움이 된다. 물론 혼자만의 시간과 작업도 중요하지만, 내면의 환기가 어느 정도 필요하다. 나는 현재 창작 집단에 소속되어 그래픽, 사운드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다. 개인 작업으로는 소설, 희곡, 아카이브집을 쓰고 있다. 마음이 맞는 작업자들과 함께 일하는 것에 대한 만족도가 크다. 우리는 일도 함께하지만, 개인적인 이야기도 많이 나눈다. 그 다정한 대화 사이에서, 또 다른 나를 발견하기도 하고 배울 점을 찾기도 한다. 요즘은 인터넷으로 모르는 사람과 연결되기 쉬운 세상이다. 온, 오프라인으로 모임에 소속되는 것을 추천한다. 작업에 대한 고민과 양질의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곳이라면 더욱 좋다.


여기서 경계해야 할 부분이 있다. 작업에 대한 피드백은 (특히 타인을 대할 때) 섬세하고 예민하게 다뤄야 한다. 창작은 과정이 중요하다. 작업의 결과만 보고 쉽게 판단할 일이 아니다. 누군가 내게 피드백을 요청하면 작업에 대한 감상을 나누기보다, 근원을 먼저 찾으려고 노력했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려는지, 왜 이런 표현 방식을 택했는지와 같은 것들을 말이다. ‘이건 좋은데, 이건 별로’는 피드백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 경우는, 제삼자로써 내가 미처 들여다보지 못한 부분을 찾아서 물어봐 주는 사람이 좋았다. 의도를 정확하게 맞추는 사람도 있었고, 나조차도 의식하지 못한 부분을 끌어내 준 사람도 있었다. 양질의 피드백은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고, 서로를 지지해 줄 수 있었다. 이러한 경험 덕분에, 그들을 조심스럽게 대하려고 한다. 취향이 맞지 않은 작업을 보면 나를 더 경계한다. 사적인 취향이나 감정 따위가 들어가지 않도록 말이다.


글을 쓰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는 왜? 우리는 왜? 인간은 왜?’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부터 시작해 타인, 사회, 세상으로 점점 시선이 확장된다. 거대한 세상 속 내 역할은 무엇일까. 다른 사람은 어떤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을까. 그들과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지점이 무엇일까. 사회는 개인을 어떻게 보호하고 억압하고 있는가. 내 주위의 창작자들은 이러한 주제에 관심이 많다. 그들과의 대화는 너무나도 즐겁다. 나와 다른 생각, 같은 고민을 나눌 때마다 지속할 힘을 얻게 된다.


버티고, 누르고, 빠져나오기. 곧 ‘지속’을 위한 힘은 내 주변에서 찾을 수 있었다. 모두 힘든 과정을 같이 겪고 있기에,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나누고, 도모할 때 좋은 시너지가 나온다는 것을 믿고 있다. 연대의 힘 안에서 상처받은 누군가가 있다면 같이 소리를 내야 하고, 더 나은 무언가를 위해 끊임없이 투쟁해야 한다. 소리를 낸다는 건, 어쩌면 큰 용기가 필요하다. 나는 요즘 ‘욕먹을 각오’에 대해 생각한다. 부당함에 맞설 용기, 솔직하게 내 의견을 피력할 용기. 나와 같은 어려움에 있는 사람을 그저 지나치지 않을 용기. 다정함은 용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연대는 그 수많은 다정함이 겹겹이 쌓여 견고한 형태를 이룬다. 모나지 않고, 각지지 않은 둥그런 원의 형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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