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의 슬기롭고 싶은 다이어트 (1)

이한울 ━ 흔적에 참여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by ㅎ과ㅇ

나는 매일 아침 눈 뜨자마자 체중계 앞으로 갔다. 체중계는 늘 같은 자리에서 내가 올라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쟤는 그냥 내가 둔 곳에 있는 건데.’ 그 모습이 굉장히 얄밉게 느껴졌다. 하루는 체중계가 바닥에 박혀 있는 것 같아 발로 툭 쳐보기도 했다. 당연히 체중계는 맥없이 이동했고, 애꿎은 발가락만 욱신거렸다.


배우의 길을 걷겠다고 다짐했을 때, 가장 먼저 시작한 건 다이어트였다. 배우에게 다이어트란 기본 중의 기본. 어찌 보면 숙명이다. 그리고 지금 내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게 다이어트였다. 지금 와 생각해 보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이렇게 적으니 무슨 영화 제목 같은데?


내 다이어트 라이프는 영화처럼 기승전결도, 엔딩도 없다. 다이어트 라이프와 함께 배우 라이프는 내 모든 걸 변화시켰다.


'오늘까지 먹고, 내일부터 정말 다이어트 해야지.'

이런 다짐조차 없이 시작했다. 거울 속 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러곤 어떤 거창한 목표나 계획 없이 곧바로 시작해 버렸다. 그때 처음 알았다. 사람이 마음을 먹으면 불같이 타오른다거나, 치밀한 계획을 세우는 것도 아닌, ‘그냥’ 한다는 것을. 그전엔 매일 아침, 뭘 먹을까 생각하면서 자고, 눈 뜨자마자 냉장고로 향했다. 그런 내가, 배우가 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무자비하게 몸무게를 줄여 나갔다. 무게를 줄이다 못해 생각마저 가벼워졌는지, 그만 망언을 내뱉었다.

"뭐여. 다이어트가 제일 쉽구먼?"

질타를 받기 전에 급하게 말을 덧붙이자면, 연기보다 다이어트가 더 쉽다는 뜻. 연기는 정말 내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었다. 왓더ㅃ... 다이어트는 굶고 운동하면 되는데 (물론 이게 가장 어렵다.) 연기는 애초에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감조차 오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잘하는 것인지, 잘 한다는 건 어떤 건지, 이런저런 답답함에 일주일에 한 번씩 대성통곡했다. 또르르... 아니고 부와아앙!! 나와 친구들은 매주 돌아가며 제 차례가 올 때마다 엉엉 울었다. 연습실의 통곡 퍼레이드는 언제부턴가 (놀라울 만큼) 그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나는 옆돌기 하다 서럽게 울었고, 친구는 탭댄스를 추며 오열했다. 지금에야 웃으며 말하지만, 연기에 미친 청년들은 일생일대 최대의 고난을 넘고 있었다. 한고비 넘을 때마다 생각한 건, 바로 이 죽일 놈의 재능이었다.

나에게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살면서 재능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나와 꼭 맞는 일을 기필코 찾아내야 한다는 생각도 없었다. 실은, 딱히 하고 싶은 일이 없었다. 그런 내가, 재능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다. ‘코리아 갓 탤런트라며… 아임 낫 코리안?’ ‘나에게 아무런 재능이 없으면 어떡하지?’ ‘그래, 난 재능이 없구나.’ 절박한 마음에 달란트 시장이라도 가야 하나 생각까지 했다. (당연히 농담이다.) 그때 함께한 친구들 모두 같은 고민을 했다. 나는 그럴 때마다 힘들어하는 친구를 안고 잘 될 거라며 토닥여주며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렇지만 정작, 나 자신에겐 그 어떤 위로와 응원도 하지 않았다. 하루는, 배우의 길이 불확실해 몹시 겁이 났다. 미래에 대한 작은 힌트라도 찾고 싶었다.

"내가 봤는데, 너 돼."

한마디 말이면 충분했다. 그러니까, 내가 ‘뭐가 된다.’, ‘무엇이 될 거다.’ 정확히 말해주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누구라도 좋으니 나를 알아봐 주길 바랐다. 나 자신을 제대로 봐 준 적도 없었으면서.

"1년 이상 생리 안 하면 난임 올 수 있대."

친구야, 난임을 알아봐 주길 바란 건 아니었어. 출처가 확실하지 않은 친구의 말이 조금 당황스러웠다. 나는 다이어트와 연기를 시작한 후로 쭉 생리를 안 하고 있었다. 그땐 결혼 생각도 없었고 임신 생각은 더더욱 없었으니. 그렇지만 안 하는 것과 못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지 않은가! 친구는 서둘러 병원에 가보라고 권했지만, 아직 4개월 남았다는 농담 아닌 농담을 하며 넘겼다. 젊은이의 객기로구나….


생리가 멈춰있던 8개월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좋아. 뿌이뿌이뿌이. 나에게 생리란? 평화로운 일상을 방해하는 적이었다. 매번 한 달마다 오는 고통은 말해 뭐하나. 피부는 비포장도로처럼 울퉁불퉁 여드름을 토해냈고, 호르몬으로 인해 감정이 오락가락했다. 원래부터 승질 더러운거 아니다. 진짜다. 생리 기간동안 호르몬 하나 컨트롤 못하는 자신에게 늘 화가 났다. 고통의 대자연이 찾아 오지 않자 너무나도 평화로웠다. 여자들은 대부분 공감하겠지만 생리는 해도 짜증나고, 안 하면 더 짜증난다. (나도 이런 내가 싫다...) 그때 나는 생리를 하지 않는 다는 걸 인지 하지 못 할 정도로 앞만 보고 달리고 있었다. 반년이란 세월이 지나고나니 그제서야 문득 생각이 났다. 나는 마법 상태에서 벗어난 몸에 익숙해져 버린 것이다. 평온함에 취한 나는 생각했다.

'그래, 이게 사람 사는 거지!'

몸은 자꾸 위험신호를 보내는데, 초등학생 이후로 온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는 매일을 놓고 싶지 않았다. 나는 생각보다 성질머리가 더럽지 않고(진짜임) 부지런했다(진짜 진짜임). 새나라의 어린이 느낌? 그렇게 편안함과 걱정을 왔다 갔다 하던 나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이한울씨 본인 맞으세요? 코로나 검사 결과 양성 나왔습니다."

터지라는 생리는 안 터지고 머리가 터지는 줄 알았다.

결국 나는 날 바라보지 않아 벌을 받는구나. 뿌이뿌이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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