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벤쿠버 & 휘슬러 여행기>
한국에 돌아와 펜션 공사를 마무리하고 있는 동안 무더운 여름이 다가오고 있었다. 더위를 유난히 많이 타는 나는 한국의 뜨겁고 습한 여름을 좋아하지 않는다. 여름만 되면 땀범벅에 몸이 축축 처지고 에너지가 다운되는 느낌을 받곤 했다. 이런 나를 잘 알고 있던 남편은 한국보다 더 시원한 캐나다에서 여름을 보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남편은 캐나다 여행을 가보는 것이 자신의 오랜 꿈이라고도 했다. 심지어 그는 10대 때 캐나다 여행 가이드를 사서, 캐나다 동부 해안에서 서부 해안까지 횡단하는 계획을 지도에 그리며 세웠다고 했다. 나는 대학 시절 캐나다 토론토에서 어학연수를 하며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있어, 그곳이 그립기도 했고 다시 가보고 싶기도 했다. 당시 펜션 마무리 공사가 진행 중이었고 결정한 것들이 완성되기까지 기다려야 해서 시간은 있었다. 하지만 여행비용 문제가 계속해서 내 발목을 잡고 있었다.
매달 계획하고 있는 예산과 예상치 못한 지출까지 고려하면, 남편의 여행 계획이 현실적으로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남편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여행이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내게는 일하면서 새로운 영감을 얻는 원동력이야!"라며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처음에는 그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려 했지만, 남편의 설득은 어찌나 끈질기고 진지하던지, 결국 내 마음을 흔들기 시작했다. "여행을 다녀오면 내 아이디어와 창의력이 배가 된다니까! 그리고 비용은 내 월급으로 다 감당할게!"라는 말에, 나는 그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웃을 수밖에 없었다. 여행을 위해 돈을 번다는 이 남자, 어딘가 말도 안 되는 것 같지만, 그의 열정적인 눈빛을 보고 있자니 내가 괜히 꿈을 막아서는 악당이 되는 기분이 들었다. 결국, "그래, 가자, 가!"라고 말한 내 입에서 나온 순간, 남편의 얼굴은 금세 밝아지며 환한 미소로 바뀌었다. 정말, 이 남자에게 여행은 일종의 생명수 같은 건가 싶었다. 어쩌면 남편은 여행 중독자일지도 모르지만, 그가 그런 이유로 열심히 일한다면 나도 그 열정에 동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해서 우리 둘의 여행이 다시 출발선을 향해 가게 되었다. 한국의 무더운 여름을 피할 뿐만 아니라, 남편의 오랜 꿈을 실현시키고, 나 역시 추억이 담긴 장소를 다시 방문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가 될 것 같았다. 이렇게 우리는 캐나다에서의 여름 여행을 준비하게 되었다.
우리는 총 45일 일정으로 캐나다 여행 계획을 세웠다. 처음 2주 동안은 푹 쉬고, 아침과 저녁에 몇 시간씩만 짬을 내어 일하면서 낮 시간대에는 캐나다를 둘러볼 수 있도록 계획을 짰다. 우리는 야심 차게 총 8번의 비행, 3번의 기차 여행, 3대의 렌터카를 빌려 서쪽에서 동쪽으로 14,000km를 횡단하기로 했다. 이 모든 것은 남편이 계획했으며, 그가 계획을 세우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너무 계획이 많은 거 아니냐고 반박할 수가 없었다. 나는 여행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남편을 '역마살(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녀야 할 운명)의 황제'라고 불렀는데, 이 계획은 정말 역마살의 황제가 할 만한 대단한 계획이었다. 서부 해안의 밴쿠버에서 시작해 록키 산맥을 지나 앨버타의 아름다운 자연을 탐험하고, 중부의 대평원을 거쳐 퀘벡의 역사적인 도시들을 방문한 후, 동부 해안의 아름다운 도시들로 이루어진 노바스코샤주를 탐방하는 여정이었다. 각 도시마다 남편이 미리 조사해 둔 명소들을 방문하고, 현지의 맛집을 탐방하며, 다양한 액티비티를 즐길 계획이었다.
우리는 보통 함께 여행할 때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각자 맡은 바를 정한다. 예를 들어, 남편은 비행기나 기차표를 예약하고, 나는 숙소를 찾아 예약한다. 그리고 남편은 여행지에서 할 수 있는 활동을 찾고, 나는 맛집을 찾아 결정하는 식이다. 남편은 소비에 대해 좀 더 과감한 성향이지만, 나는 돈을 절약하는 것을 선호해서 지출에 대한 타협이 종종 필요하다. 따라서 우리는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면서 중간 지점에서 만나려 노력한다. 이번 캐나다 여행도 서로 그렇게 합의하며 계획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도시마다 고급 호텔 대신 더 저렴하고 넓은 에어비앤비 숙소를 선택했고, 예산을 절약하기 위해 대중교통을 십분 활용하기로 했다. 또한 액티비티를 정할 때 돈이 많이 들 수 있는 일일 투어보다는 직접 알아보고 더 싸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았다. 음식 관련해서는 두끼는 간단히 스낵으로 때우고 한끼만 식당을 가는 방식으로 합의를 보았다. 이렇게 각자의 선호를 반영하면서도,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는 방식은 우리 여행을 더욱 즐겁게 만드리라 기대했고 여행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쌓고,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며,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캐나다의 광활한 대자연과 다채로운 문화 속에서 우리는 새로운 모험을 함께 할 준비가 되었다.
한 달이 넘는 긴 여행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의 큰 캐리어와 하나의 작은 기내용 캐리어에 짐을 꾸렸다. 그리고 우리는 첫 번째 행선지인 밴쿠버에 가기 위해 공항으로 출발했다. 이번에도 우리는 평소처럼 이코노미 좌석을 예약했는데, 출장이 아닌 여행이라 그런지 왠지 여유롭게 느껴졌다. 남편과 함께 있어서 마음이 편했고, 남편에게 기대어 잠도 잘 수 있었다.
밴쿠버는 캐나다 여행의 멋진 시작이었다. 캐나다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였고 도시 풍경은 다른 북미 도시들과 비슷했지만, 아름다운 항구와 웅장한 자연이 조화를 이루며 그만의 독특한 매력을 뽐냈다. 밴쿠버는 자연과 도시가 공존하는 공간일 뿐 아니라, 마치 다양한 이야기가 얽히고설켜있는 무대 같은 느낌을 주었다. 특히, 예기치 못한 선택이 이번 여행의 흐름을 바꾸기도 했다. 도심 속 숙소의 가격이 부담스러워 조금 외곽으로 숙소를 잡았던 것이 그 시작이었다. 덕분에 매일 기차를 타고 도심으로 이동해야 했는데, 이 일상이 오히려 밴쿠버의 교통 시스템과 도시 외곽의 여유를 이해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가 되었다. 도심과 외곽 사이의 균형을 찾아가는 우리의 일상은, 밴쿠버가 자연과 도시 사이에서 찾아낸 절묘한 균형과도 닮아 있었다.
도심에 도착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스탠리 공원이었다. 스탠리 공원은 도시의 분주함과 고요한 자연이 공존하는 특별한 경계에 자리 잡은 곳이었다. 우리는 자전거를 빌려 공원의 해안길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페달을 밟을 때마다 해안선을 따라 펼쳐진 바다와 울창한 숲이 한눈에 들어왔고, 공원 곳곳에는 오래된 토템폴이 우뚝 서 있어 마치 시간 여행을 하는 기분이었다. 바닷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자전거의 속도와 함께 푸른 숲의 향기를 깊이 들이마시니, 이 순간이 단순한 산책이 아니라 자연과 하나가 되는 특별한 경험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스탠리 공원에서의 자전거 여행은 도심 속에서 자연의 숨결을 가까이 느끼는 소중한 시간이었고, 도시의 복잡함을 벗어나 잠시나마 자연 속으로 녹아드는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그러다 잠시 멈춰 서서 바다 쪽으로 눈을 돌렸을 때, 보이는 풍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저 멀리 보이는 라이언스 게이트 브릿지(Lions Gate Bridge) 아래로 바닷물이 잔잔히 흐르고, 그 너머로 펼쳐진 도시와 산의 조화가 일품이었다. 자연과 도시, 과거와 현재가 한 공간에서 어우러지는 그 모습은 마치 밴쿠버 자체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듯했다.
그다음으로 향한 곳은 콜 하버 마리나 항구였다. 항구에 도착하자마자, 눈앞에 펼쳐진 푸른 바다와 수많은 요트들이 그야말로 그림 같은 풍경을 만들어냈다. 맑고 차분한 바닷물이 가볍게 흔들리며 부딪힐 때마다 햇살이 반짝였고, 그 장면은 우리의 눈을 사로잡았다. 이곳의 활기찬 분위기와 고요한 바다는 완벽한 대조를 이루며 도시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항구의 한 레스토랑에서 신선한 굴과 칵테일 새우 그리고 봉골레 파스타를 시켰다. 남편은 굴을 좋아하지 않아 나만 즐기게 되었는데 바다 내음이 스며든 신선한 굴 한입을 먹는 순간, 푸른 바다와 요트를 배경으로 맛본 그 풍미는 다른 곳에서는 느낄 수 없는 특별함이었다. 한입 한입 씹을 때마다 바닷물이 입안에 퍼지는 것 같은 신선한 맛이, 마치 이 항구의 일상과 연결된 풍미처럼 느껴졌다.
콜 하버 마리나에서의 경험은 단순한 먹거리 체험이 아니었다. 항구와 요트, 그리고 바다에서 잡아 올린 해산물이 어우러져, 나는 밴쿠버가 품고 있는 다양한 세계의 한 조각을 맛본 셈이었다. 콜 하버 마리나는 인간이 만든 구조물과 자연이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완벽한 예시였다.
또 다른 매력적인 장소인 그랜빌 아일랜드(Granville Island)에서는 밴쿠버의 다채로운 먹거리와 문화를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었다. 이곳은 섬이라기보다는 작은 마을 같은 느낌이었는데, 도시의 분주함에서 잠시 벗어나 현지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섬 곳곳에는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시장과 카페, 레스토랑, 수제 공방이 줄지어 자리하고 있었다. 마치 문화의 향연이 펼쳐지는 듯한 그랜빌 아일랜드는 그저 관광지가 아닌, 현지 주민과 외부인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공간이었다.
우리는 먼저 퍼블릭 마켓(Public Market)으로 향했다. 이곳은 재래시장 같은 곳이었는데 현지 농부와 상인들이 직접 운영하는 가판대와 다양한 음식점들이 자리 잡고 있는 공간이었다. 퍼블릭 마켓에 들어서자, 신선한 과일과 해산물, 각종 베이커리 제품들이 가득해 나의 시각과 후각을 동시에 자극했다. 곳곳에서 풍기는 구운 빵 냄새와 갓 짜낸 과일 주스의 향이 어우러지며, 마치 한 축제에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곳에서 맛본 음식들은 밴쿠버의 다문화적 정체성을 여실히 보여줬다. 아시아의 향신료가 가득한 볶음면, 이탈리아의 파스타와 피자, 그리고 프랑스식 페이스트리까지 다양한 요리가 가득했다. 어느 한 문화에 국한되지 않고, 여러 나라의 음식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이 경험은 밴쿠버가 얼마나 열린 마음으로 다양한 문화를 포용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줬다.
특히, 그랜빌 아일랜드의 거리 예술가들은 이곳의 분위기를 한층 더 흥겹게 만들어주었다. 바이올린을 켜는 중년의 남자, 신나는 거리 공연을 펼치는 댄스 그룹, 그리고 우아한 손재주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까지, 모두가 이곳의 역동적이고 다채로운 매력을 한데 모아주는 듯했다. 이들의 활기찬 공연을 바라보며 한참을 서 있다 보니, 나도 모르게 음악에 맞춰 어깨가 들썩였다. 그랜빌 아일랜드에서 경험한 모든 것들은 밴쿠버의 풍부하고 입체적인 정체성을 더욱 생생하게 만들어주었다. 도시의 활기와 여유가 교차하는 이곳에서, 우리는 밴쿠버를 더욱 깊고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밴쿠버에서의 여정 중 가장 스릴 있었던 순간은 단연 카필라노 서스펜션 브릿지(Capilano Suspension Bridge)에서의 경험이었다. 브리티시컬럼비아 주의 울창한 숲 한가운데 걸쳐진 이 다리는 137m 길이의 거대한 현수교로, 카필라노 강 위를 아찔하게 가로지르고 있었다. 그러나 이 다리는 그저 사람들을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이동하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숲과 사람의 공존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처음 다리에 발을 디딜 때, 나는 마치 공중에 떠 있는 듯한 스릴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꼈다. 다리가 바람과 사람들의 움직임에 따라 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발밑으로 깊고 푸른 강물이 흐르는 것을 내려다보며, 나는 인간이 만들어낸 구조물이 자연의 거대한 힘과 어떻게 균형을 이루고 있는지를 체감할 수 있었다. 이 다리는 그 자체로 인간의 도전과 자연의 광활함을 상징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리 한가운데에 이르자, 그 두려움은 어느새 경외감으로 바뀌었다. 머리 위로 울창하게 뻗은 삼나무와 소나무가 하늘을 가리며 서 있고, 발밑에는 거칠게 흐르는 카필라노 강이 있었다. 이 순간, 나는 자연 속에서 인간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를 실감하며, 동시에 그 작은 존재가 만들어낸 기술과 용기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자연 속에 서 있는 다리는 인간의 흔적을 상징하면서도, 그곳에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었다.
서스펜션 브릿지를 지나 트리탑 어드벤처(Treetops Adventure)에 도착하자, 나는 자연의 품 속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곳에서는 거대한 나무들 사이를 연결한 작은 다리들을 통해 숲 속의 작은 모험을 즐길 수 있었는데 우리는 높은 나무 위에서 울창한 숲을 내려다보며, 밴쿠버가 가진 자연의 깊이와 풍요로움을 느꼈다. 숲 속을 거닐면서, 나는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자연의 소리에 집중하게 되었다. 바람이 나뭇잎을 스쳐 지나가는 소리, 새들의 지저귐, 그리고 저 멀리서 들려오는 강물의 속삭임은 마치 자연이 들려주는 노래 같았다. 이곳에서 나는 밴쿠버가 그 자체로 자연과 인간의 경계를 이어주는 다리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모험을 마치고 우리는 미리 예약한 한식당 ‘Sura’로 향했다. 이국땅에서 한국 음식을 맛본다는 생각에 기대 반, 걱정 반이었지만, 식당 문을 여는 순간 따뜻한 한국의 향기가 가득했다. 메뉴판을 보며 우리는 김치찌개와 제육볶음을 주문했다. 사실, 이국 땅에서 먹는 김치찌개가 얼마나 한국의 깊은 맛을 낼 수 있을지 반신반의했지만, 첫 숟가락을 뜨자마자 모든 의심이 사라졌다. 풍부한 김치의 감칠맛과 매콤한 돼지고기 볶음의 조화가, 마치 고향에서 먹는 어머니의 손맛을 떠올리게 했다. 사실 충격적 이게도 한국에서 먹는 웬만한 김치찌개보다 훨씬 맛있었다. 남편도 지금껏 먹어본 김치찌개 중 최고라고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낯선 땅에서 낯익은 맛을 경험하면서, 나는 이 도시가 어떻게 다양한 문화를 그저 수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속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색깔을 만들어가고 있는지를 체감할 수 있었다. 특히 이 한식당에서는 한국 음식을 '현지화'하기보다는, 본연의 깊은 맛을 지키며 밴쿠버 특유의 편안하고 여유로운 분위기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었다. 이곳에서의 식사는 이 도시가 가진 문화적 융합을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해주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한국의 맛이 그대로 담긴 한 끼 식사를 하면서, 나는 밴쿠버라는 도시가 얼마나 다양한 문화를 존중하고, 또 그것을 새로운 형태로 꽃 피우는 곳인지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밴쿠버는 이처럼 다양성을 존중하고 서로 배우며 성장하는 특별한 도시였다.
도시에서 며칠을 보낸 우리는 이제 브리티시콜롬비아주의 경이로운 자연에 온전히 몰두하고 싶었다. 그래서 밴쿠버에서 약 2시간 반 거리에 위치한 휘슬러로 렌트카를 타고 이동했다. 휘슬러는 대규모 스키 리조트와 여름 휴양지로 유명하며, 그곳의 목가적인 마을 분위기는 우리가 진정한 휴식을 취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남편과 함께 떠난 휘슬러 여행은 여름임에도 불구하고 신선한 놀라움으로 가득 찬 시간이었다. 휘슬러에 도착했을 때, 한낮의 따스한 햇살과 대비되는 선선한 기온에 우리는 깜짝 놀랐다. 여름옷차림으로 가볍게 떠났지만, 결국 가방 깊숙이 넣어둔 재킷을 꺼내 입어야 했다. 마치 자연이 우리에게 계절의 이면을 소개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곳의 여름은 우리가 상상한 뜨거운 햇볕과는 달리, 선선한 산바람이 스쳐 지나가며 청량한 매력을 뿜어냈다.
휘슬러는 그 자체로 완벽한 휴식을 선사하는 곳이었다. 깨끗한 공기와 장엄한 산의 고요함이 마치 몸과 마음을 정화시켜 주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도시의 빠른 속도와 소음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이곳에서는 자연과 온전히 연결된다는 감각이 더 선명하게 다가왔다. 우리는 산책길을 오르내리며 느린 걸음의 즐거움을 다시금 깨달았다. 예전에는 걸을 때마다 목적지에만 집중했지만, 여기서는 걷는 그 자체가 하나의 여정이 되었다. 산책은 휘슬러에서의 일상 중 중요한 부분이었다. 우리가 걷던 길은 마치 자연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따라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주변의 소나무와 호수, 그 사이를 스쳐 지나가는 바람과 작은 새소리 들은 잠시 동안 대화의 필요조차 느끼지 못하게 했다. 남편과 나는 서로의 존재를 고요하게 느끼며 함께 걸었고, 그 속에서 큰 위로와 평온함을 얻었다. 휘슬러의 산책로는 자연과의 대화이자, 남편과 나의 침묵 속 교감이 이루어진 특별한 시간의 연속이었다.
산책 후, 지친 몸을 쉬기 위해 들렀던 카페와 레스토랑에서는 항상 바깥 파티오에 자리를 잡았다. 밖에 앉아 있으면 부드러운 햇살과 산의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커피 한 잔을 들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과 발걸음을 지켜보며, 바람의 시원함과 햇살의 따뜻함을 온몸으로 느끼는 순간들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마치 풍경의 일부가 되는 시간이었다. 그곳에서의 작은 커피 한 잔조차 우리에게 감각의 충만함을 선사했다.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휘슬러의 일몰이었다. 하루의 끝자락, 해가 천천히 산 너머로 기울 때, 그 장면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 느리게 흐르는 듯했다. 일몰의 황금빛이 산과 호수를 부드럽게 물들이는 모습은 장엄함과 따스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 우리는 서로 부둥켜안으며 그 풍경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평화로움이 그 순간의 공기를 채우고 있었다.
여름의 밴쿠버와 휘슬러는 그 자체로 삶의 이중적인 부분을 사색하게 하는 공간이었다. 현대적인 도시와 자연의 원시적인 아름다움 사이에서, 나는 두 세계의 경계에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자연의 경이로움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 그리고 이 거대한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는 우리의 태도는 어떤가? 이 여정은 단순한 관광을 넘어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깊은 고찰로 이어졌다. 도시가 주는 문명화의 이점과 자연이 주는 치유의 힘 사이에서, 나는 그 어느 쪽도 쉽게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밴쿠버와 휘슬러의 여름 속에서, 나는 자연과 도시, 그리고 인간의 공존에 대한 고요한 사색을 경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