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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미나라 Nov 24. 2024

28) 두 세계 사이, 해답을 찾다.

<캐나다 캘거리 & 토론토를 여행하며>

밴쿠버와 휘슬러에서의 멋진 경험을 뒤로하고, 우리는 캐나다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손꼽히는 국립공원들을 탐험하기 위해 캘거리로 향했다. 앨버타주에 위치한 캘거리는 현대적인 도시의 모든 편리함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그 주변에는 원시적인 자연의 거대한 힘이 자리 잡고 있었다. 도심은 밴쿠버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고 한적한 분위기여서 처음에는 '어떤 특별한 매력이 있을까?'라는 의문도 들었지만, 남편은 눈을 반짝이며 "앞으로가 진짜야!"라고 말하며 내 기대를 한껏 부풀렸다. 휘슬러의 놀라운 자연을 이미 경험했기에 '국립공원도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남편의 설레는 얼굴을 보니 조금씩 기대가 피어올랐다.


캘거리 도심을 간단히 돌아본 후, 우리는 본격적인 탐험을 위해 밴프 국립공원으로 떠났다. 캐나다 국립공원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밴프는 그 명성답게 많은 방문객들이 찾는 곳이었고, 국립공원 근처 숙소는 부담스러운 가격대여서 캘거리 도심에 숙소를 정하고 매일 렌트카로 이동하기로 했다. 도시의 편리함을 잠시 누리면서도, 국립공원까지의 접근성을 유지하려는 우리의 선택이었다. 1번 고속도로를 따라 약 1시간 반을 달리며, 차창 밖으로 펼쳐진 풍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넓게 펼쳐진 도로를 따라 달리는 동안, 울창한 숲과 하얀 눈으로 덮인 산봉우리들이 점차 시야를 채웠고, 나는 마치 앞에 보이는 장면들이 현실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도로와 멀리 보이는 푸른 숲과 산봉우리들은 내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광활하고 경이로웠다. 차 안에서는 우리 둘 다 자연스레 감탄의 말들을 쏟아냈다.


남편이 운전대를 잡은 동안, 나는 찬바람이 스며드는 차창을 살짝 열어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이 여행에서의 특별한 점은, 단순히 도착지가 아닌 그 여정 자체가 큰 의미를 지닌다는 것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도로를 달리면서 캐나다의 광활함을 온몸으로 느끼는 순간, 내 마음은 자연과 완전히 연결된 듯했다. 이렇게 드넓은 자연 속에서 우리는 정말 개미 같은 작은 존재라고 느껴지는 동시에 그 풍경의 일부가 된 것 같았다.



밴프 국립공원은 캐나다 최초의 국립공원이자, 자연의 위대함과 장엄함을 몸소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그날의 여행 목적지는 밴프 국립공원 내의 작은 마을, 레이크 루이스였다. 도착 후, 마을을 둘러본 뒤 울창한 낙엽수 숲을 지나 루이스 호수로 향했다. 숲을 걸으며 들려오는 바람의 속삭임과 잎사귀들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는 마치 자연이 들려주는 음악 같았다. 호수가 가까워지자 거대한 산과 숲으로 둘러싸인 호수의 청유백색 빛이 눈앞에 펼쳐졌는데, 마치 거대한 유화 그림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그 광경에 나의 입이 저절로 벌어졌고, ‘천혜의 자연’이라는 표현이 딱 맞는 곳임을 실감했다. 남편과 함께 호숫가를 따라 긴 산책을 하며, 우리는 셔터를 연신 눌러대며 아름다운 순간을 기록했다. 남편은 "이걸 사진으로만 담는 게 아까울 정도야!"라고 했고 나는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광경을 보여주고 싶다!"라고 할 정도로 그 광경은 감동적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록키산맥의 끝없이 솟아오른 봉우리들과 맑고 푸른 루이스 호수의 투명함에 매료되었다. 


이곳에서 느낀 감정은 단순히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에 대한 감탄이 아니었다. 자연은 우리의 속도를 따라잡으려 하지 않으며, 그저 그 자리에서 자신의 존재를 그대로 드러낼 뿐이었다. 밴프 국립공원의 호수와 산책로를 걸으며, 나는 자연이 주는 자연스러운 슬로우 리듬에 몸을 맡겼다. 도시에서의 시간은 항상 앞으로 달려가고, 우리는 늘 무언가를 성취하려고 서두르지만, 밴프에서의 시간은 완전히 달랐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와 반짝이는 물결, 그리고 멀리서 들려오는 새소리는 내가 놓치고 있던 삶의 리듬을 되돌려 준 것 같았다. 그 리듬 속에서 나는 도시에서의 삶과는 다른 속도와 질서를 경험했다.


호숫가를 걷다 보니 작은 나무 벤치가 나타났다. 벤치에 앉아 호수를 바라보며 한숨 돌리는 순간, 갑자기 나타난 호기심 많은 다람쥐 한 마리가 우리 앞에 서서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고 신기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한동안 그 다람쥐와 눈 맞춤을 하게 되었다. 다람쥐는 마치 인사를 하듯 꼬리를 흔들며 우리 주위를 맴돌더니, 다시 숲 속으로 사라졌다. 그 짧은 순간이 너무도 사랑스러웠고, 이곳이 진정 자연과 사람의 경계가 허물어진 공간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도시에서는 쉽게 느낄 수 없었던 그 모든 생동감과 자연의 이야기를 밴프에서 온몸으로 느끼며, 나는 비로소 내 속에 잠들어 있던 평화와 연결되었다. 여기서의 하루는 책 한 장 한 장을 천천히 넘기는 듯한 여유와 감동의 연속이었다.




레이크 루이스에서의 감동을 뒤로하고, 우리는 다음 여행지인 요호 국립공원의 레이크 에메랄드로 발걸음을 옮겼다. ‘에메랄드’라는 이름에 걸맞은 호수일지 내심 궁금했지만, 도착한 순간 모든 의심은 말끔히 사라졌다. 호수는 그야말로 보석처럼 빛나고 있었다. 햇살이 반사되어 물결 위로 반짝이는 에메랄드 빛은 정말이지 신비롭기까지 했다. 에메랄드 호수의 물빛은 정말로 이름 그대로였다. 청록색 빛이 비치는 물이 햇빛을 받아 반짝일 때마다, 마치 보석 상자 속에서 빛나는 에메랄드 원석을 바라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숨을 멈추고 그곳의 경이로움을 온전히 느꼈다. 주변의 울창한 숲과 눈 덮인 산봉우리가 호수의 표면에 그대로 투영되며, 마치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런 호수가 정말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구나...’라는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지금까지 많은 아름다운 호수를 보아왔지만, 눈앞에 펼쳐진 이 풍경은 단연 가장 인상 깊고 아름다웠다.  요호 국립공원의 자연은 그저 관람하는 것을 넘어, 그 순간순간에 몰입하게 하는 마법 같은 힘이 있었다. 마치 자연이 내게 속삭이는 듯한 이 경험은 내가 앞으로도 오랫동안 마음속에 간직할 풍경이 될 것임이 분명했다. 


한편, 아름답기 그지없었던 캘거리 주변의 국립공원들은 보호와 개발 사이의 균형이라는 주제를 깊이 생각하게 만들었다. 국립공원의 광활한 자연은 인간의 손길에서 멀리 떨어져 보호받고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그 자연을 탐험하고 감상하기 위한 관광 산업은 끊임없이 발달하고 있었다. 우리가 자연을 관찰하고 경험하는 것이 과연 자연의 진정한 모습을 보존하는 것일까? 아니면 인간의 욕망과 편리함을 위한 또 다른 개발일까? 나는 이런 질문들 속에서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고민하게 되었다. 우리가 자연을 보호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는 자연에 의존하고 있을 뿐이라는 진실이 더 선명하게 다가왔다. 휘슬러에 이어 밴프와 요호 국립공원에서의 경험은 내가 자연을 보호하는 방법을 단순히 환경 보호의 차원이 아닌, 인간의 삶을 성찰하고 반성하는 방법으로 이해하게 했다. 도시와 자연, 개발과 보존의 경계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지게 된 것이다. 그것은 자연의 경이로움을 몸소 느끼고, 인간의 책임을 되새기는 깊은 성찰의 여정이었다.





캐나다의 광활하고 숨 막히는 대자연을 만끽한 후, 우리는 다음 행선지인 토론토로 향했다. 자연에서의 감동을 뒤로하고 도착한 토론토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끝없이 이어진 고층 빌딩과 활기찬 거리, 그리고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한데 모여 있는 이곳은 그 자체로 현대적이고 복합적인 도시의 매력을 뿜어냈다. 도시 한복판의 거리를 걷다 보면, 마치 문화와 기술, 예술이 함께 춤추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이 복잡한 거리 속에서도, 우리는 이전의 여행지에서 배운 여유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사실, 토론토는 나에게 단순한 여행지 이상의 의미를 지닌 도시다. 15년 전, 나는 이곳에서 어학연수를 하며 낯선 도시에서 첫 사회생활을 경험했다. 그 시절, 해외 연수를 꿈꾸며 아르바이트를 서너 개씩 뛰던 나날이 떠오른다. 낮에는 수업을 가고, 저녁에는 과외 세탕에 주말에는 웨딩홀 아르바이트까지 하느라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빡빡한 일정 속에서도 몸이 지친다는 생각보다는 가슴속에 자리 잡은 설렘과 간절함이 나를 더 움직이게 했다. "언젠가 저 먼 곳에서 새로운 세상을 마주하게 될 거야!"라는 희망이 내 발걸음을 재촉했고, 매일 밤 피곤에 찌든 몸으로도 웃을 수 있었다. 그 꿈이 마치 나를 지치지 않게 만드는 원동력 같았다. 그렇게 캐나다에 도착해서 만난 브라질 & 멕시코 친구들과 함께한 밤들은 마치 끝나지 않을 여름날의 축제 같았다. 우리는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졌지만 영어라는 공통의 언어로 이어졌고 함께 웃고 춤추며,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 모든 순간마다 내 곁을 지켜준 친구 유진이. 연수 내내 기쁨과 어려움을 함께 나누며, 나에게 힘이 되어 준 유진이 덕분에 나는 연수 생활을 잘 버텨낼 수 있었다. 지금도 그때의 시간은 내 마음속에 가장 즐거웠던 기억 그리고 따뜻한 기억으로 흐르고 있다. 토론토는 나에게 늘 설렘과 긴장을 동시에 안겨준 도시였고, 그곳에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 쌓았던 소중한 추억들은 여전히 내 마음 한편에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깊이 자리하고 있다. 


이번에 다시 찾은 토론토는 15년 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도시 전체가 훨씬 모던해졌고, 그 모습이 마치 도시가 새로 맞춘 정장을 차려입은 듯했다. 건물 협곡을 따라 늘어선 수많은 고층 빌딩들은 도시의 빠른 변화를 상징하는 듯했고, 그 변화를 직접 마주하니 세월의 흐름을 실감하게 했다. 그런데 단순히 도시의 모습뿐만이 아니라, 날씨조차 내가 알던 토론토가 아니었다. 15년 전 여름, 최고 기온이 25도 정도였던 기억과 달리, 이번에 찾은 토론토는 무려 30도가 넘는 무더운 날씨를 보여주고 있었다. 푹푹 찌는 더위 속에서, 나는 ‘정말 15년 동안 기후 변화가 이렇게 급격하게 우리 생활 속으로 파고들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순간 씁쓸해졌다. 이 변화는 단순한 숫자가 아닌, 도시와 사람들의 일상 속에 깊이 영향을 미치는 지구적 현상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했다. 또한, 전보다 더욱 복잡해진 도시의 풍경을 보며, 나는 이 도시가 성장과 발전이라는 명목 아래 무엇을 잃어가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현대 도시가 추구하는 발전이 과연 언제까지 이 속도로 계속될 수 있을지, 또 이 과정에서 인간과 자연의 조화가 어떻게 변해갈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토론토의 빠른 변화 속에서 우리가 더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무엇인가? 그리고 그 변화 속에서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가치가 무엇일까?


토론토는 개성과 다양한 건축 양식으로 가득 찬 흥미로운 지역들이 많아 남편이 특히 좋아했다. 그중에서도 디스틸러리 지구(The Distillery District)를 아주 인상 깊이 보았는데 이곳은 19세기 벽돌 건물들이 매력을 뽐내며, 오래된 역사와 현대 예술이 어우러진 곳이었다. 이 지역은 한때 북미 최대의 위스키 증류소였지만, 지금은 다양한 갤러리와 공예 매장, 예술가들의 작업 공간이 자리 잡아 예술 애호가들에게 안성맞춤인 장소로 변모했다. 과거와 현재가 묘하게 교차하는 이 공간은 우리를 잠시 토론토의 과거로 안내했다. 


디스틸러리 지구를 거닐며, 나는 그 옛 벽돌 건물들 사이로 펼쳐진 새로운 예술과 창작의 숨결을 느꼈다. 무심히 걷다 보면 벽돌 하나하나가 과거의 이야기를 속삭이는 듯했다. 이런 곳에서 사람들은 단순히 과거를 기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한때 위스키 향이 가득했을 이곳이 이제는 커피와 베이커리 향으로 가득 찬 것도 인상적이었다. 옛 증류소의 굴뚝이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가운데, 이제는 진한 아메리카노와 달달한 디저트를 즐길 수 있는 아늑한 카페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남편과 나는 한 작은 카페에 들러 커피 한 잔과 레모네이드를 시켰다. 야외에서 이리저리 사람들을 둘러보게 되었는데 벽돌길을 걷는 사람들이 한 폭의 그림처럼 보였다. 그들은 마치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여행자들처럼, 옛날 건물 사이를 누비며 새로운 순간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벽돌 건물의 세월의 흔적과, 그 안에서 활기차게 살아가는 현대의 모습이 함께 공존하는 이곳은 과거와 현재의 조화를 가장 아름답게 보여주는 곳이었다. 디스틸러리 지구는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시간의 겹을 두른 공간처럼 느껴졌고 이곳에서 우리는 마치 두 개의 시간대를 동시에 살아가는 듯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옛 증류소 건물이 지금은 예술과 문화가 꽃피는 장소로 변모한 모습은, 토론토가 어떻게 과거를 보존하면서도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다음날, 우리는 또 다른 토론토의 얼굴을 찾아 퀸스트리트로 향했다. 퀸 스트리트 웨스트에 발을 내딛는 순간, 나는 마치 다른 세계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곳은 삐까뻔쩍했던 고층 빌딩들이 즐비하던 곳과는 전혀 다른 토론토의 창의성과 소박함 그리고 자유로움이 살아 숨 쉬는 하나의 예술 공간이었다. 거리 곳곳에서는 독특한 색감과 형태의 벽화가 눈길을 끌었고,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가게들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 나를 반겼다. 퀸 스트리트 웨스트는 ‘도시의 예술 구역’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활기차고 다채로웠다. 우리가 느낀 거리의 첫인상은 자유로움이었다. 건물 벽면마다 그려진 대형 그라피티들은 마치 도시가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거대한 캔버스 같았다. 그중 하나는 여러 인종과 성별을 표현한 초상화로, 토론토가 다양한 문화와 공동체를 포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벽화 속 인물들이 미소 짓고, 서로를 마주 보고 있는 모습에서 이 거리의 포용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가 전해졌다. 거리의 벽화들은 꼭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건네고 있는 것 같았다. 


퀸 스트리트 웨스트를 걷다 보면, 예술가들이 운영하는 작은 갤러리와 빈티지한 느낌의 부티크,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자리한 카페와 레스토랑들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나는 한 부티크의 쇼윈도에 걸린 기묘한 모양의 의상을 보며 발걸음을 멈췄다. ‘이건 정말 독특하네.’라고 생각하며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 독특한 디자인의 의상과 액세서리가 빼곡히 진열되어 있었다. 점원은 내게 살짝 미소 지으며 “이 디자인은 토론토의 독립 디자이너 작품이에요”라고 소개했다. 나는 그 순간, 이곳이 상업적인 공간을 넘어, 새로운 아이디어와 창의성을 키우는 토론토만의 플랫폼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길을 따라 조금 더 걸어가자, 낡은 간판이 달린 작은 카페가 눈에 들어왔다. 간판의 페인트는 오래되어 갈라졌지만, 그곳이 오히려 이 카페만의 오랜 역사를 느끼게 해 주었다. 창가 쪽 테이블에서는 사람들이 노트북을 두드리며 각자의 일에 몰두하고 있었고, 한쪽에는 커피 한 잔과 함께 책을 읽으며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이 보였다. 우리는 커피를 한 잔 주문하고 야외에 자리를 잡았다. 커피잔을 들자, 바람에 살짝 식은 커피 향이 코끝을 간질였다. 그곳에서 구경한 퀸 스트리트의 모습은 활기차고도 평화로웠다. 거리에는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다양한 패션을 뽐내는 이들이 뒤섞여 있었다. 형형색색의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지나가는 사람들, 알록달록한 스케이트보드를 타며 달려가는 청소년들, 그리고 자전거 바구니에 꽃을 가득 담은 여인의 모습이 퀸 스트리트만의 개성과 자유로움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이곳에선 누군가의 시선에서 벗어나 오롯이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 거리를 채우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미처 치우지 못한 케이크 부스러기를 발견한 참새 두 마리가 우리 테이블 근처로 날아왔다. 녀석들은 주위를 살피지도 않고, 곧바로 우리 테이블 위로 폴짝 뛰어올라왔다. 작은 발을 바쁘게 움직이며 부스러기를 쪼아 먹는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우리는 입가에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웃음도 잠시, 문득 참새들이 이렇게 사람이 먹다 남긴 음식물을 먹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 씁쓸하게 다가왔다. 참새는 원래 나무에서 곤충을 찾거나, 땅을 헤집으며 씨앗을 먹는 게 자연스러울 텐데, 이 녀석들은 익숙하게 테이블을 돌아다니며 부스러기를 찾고 있었다. 바쁜 도심 속에서 우리 인간들이 만들어낸 새로운 생존 방식을 따라가고 있는 이 작은 새들을 보며, 인간의 흔적이 자연의 순리에 얼마나 많은 변화를 주었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참새들은 부스러기를 모두 주워 먹고 나더니, 마치 "고마워!"라고 인사라도 하듯 짧은 울음소리를 내며 날아갔다. 그 모습이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왠지 마음 한 켠이 묵직해졌다. 이런 변화가 단지 귀엽게만 볼 수 있는 일인지, 아니면 우리가 무언가를 잘못하고 있는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그래도 이 순간의 작은 만남은 나에게 이곳 퀸 스트리트의 복잡하고 다양한 이야기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했다.


커피를 마시며 생각에 잠기던 중, 거리에서 들려오는 경쾌한 기타 소리에 이끌려 우리는 다시 거리로 나섰다. 한 거리 모퉁이에서 버스커가 신나는 곡을 연주하고 있었고, 그 주위에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여들었다. 그 장면은 마치 퀸 스트리트 웨스트의 자유로운 정신을 상징하는 듯했다. 음악가는 진지하게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고, 사람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박자를 맞춰 발을 구르며 그의 음악에 빠져들었다. 나는 잠시 그 자리에서 서서, 사람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저마다의 하루를 보내는 중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같은 리듬 속에서 함께하고 있었다.


퀸 스트리트 웨스트는 내가 생각했던 상업적 거리나 관광지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다양한 국적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어우러져 거리를 걷고, 예술과 패션, 그리고 음악이 자연스럽게 혼합되는 이곳은 토론토의 진정한 정체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장소였다. 나는 퀸 스트리트 웨스트를 떠나기 전, 거리의 끝자락에 있는 작은 갤러리에 들렀다. 그곳에는 다양한 로컬 아티스트들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작품마다 작가의 손길과 생각이 그대로 느껴졌다. 갤러리의 한 구석에서, 나는 조각 작품 하나에 눈길이 멈췄다. 거칠게 깎인 나무와 반짝이는 금속이 조화를 이루는 그 조각은 퀸 스트리트 웨스트의 정신을 그대로 담고 있는 듯했다. 전통과 현대, 그리고 예술과 상업이 어우러진 이 거리의 모든 요소들이 하나의 작품처럼 느껴졌다. 퀸 스트리트 웨스트를 걷고 나니, 이곳이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지 알 것 같았다. 퀸 스트리트 웨스트는 그곳을 걷는 모든 사람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어 주는 공간이었다.




토론토의 매력에서 흠뻑 빠져들고 있을 때쯤 우리 여행의 다음 방문지는 CN 타워였다. CN 타워는 15년 전과 마찬가지로 토론토의 상징처럼 우뚝 서 있었다. 마치 토론토가 자신 있게 “여기 내가 있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타워에 들어서자마자 빠른 엘리베이터가 구름을 뚫듯 하늘로 솟아오르는데, 그 순간 마치 중력이 사라진 듯 가슴이 두근거렸다. 엘리베이터의 유리창 너머로 급격히 멀어지는 땅과 점점 작아지는 자동차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어린아이처럼 탄성을 지르고 말았다. 전망대에 도착해 밖을 내다보니, 토론토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도시의 끝없는 스카이라인과 빽빽이 들어찬 빌딩들은 마치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하늘을 향해 손을 뻗고 있는 듯 보였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토론토는 여전히 웅장하고 활기찬 도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타워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순간, 그동안 얼마나 많은 변화와 발전이 있었을지 상상하게 되었다. 전과 비교해 새롭게 생긴 고층 빌딩들과 확장된 도로를 보며, 이 도시가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타워 위에서 내려다본 토론토는 여전히 성장하고 변화하는 도시였다. 빌딩들 사이에 자리 잡은 오래된 붉은 벽돌 건물들이 묵묵히 과거를 지키고 있는 반면, 그 주변으로는 날렵하고 세련된 유리 건물들이 세워져 있었다. CN 타워에서의 전망은 나에게 이 도시가 여전히 진화하고 확장하는 모습과, 그 과정 속에서 잊히지 않고 지켜내려는 과거를 동시에 보여주었다. 이처럼 현대와 과거, 성장과 보존이 한데 어우러진 토론토의 전경은 마치 한 편의 스토리가 있는 영화처럼 다가왔다. "이 도시가 예전 보다 더 힘차게 숨 쉬고 있구나!"라는 감탄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타워를 내려오면서 문득, 15년 전의 내가 봤던 풍경과 지금의 풍경을 머릿속으로 나란히 비교해 보았다. 그때는 단순히 높이와 규모에 압도되었던 내가, 이번에는 이 도시가 가지는 깊이와 이야기에 더 눈을 뜨고 있음을 느꼈다. 


CN 타워에서의 생각을 뒤로하고 우리는 토론토 아일랜드로 향하는 페리를 탔다. 페리가 부드럽게 물살을 가르며 나아갈 때, 나는 선선한 강바람을 맞으며 토론토 시내의 화려한 스카이라인이 서서히 멀어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15년 전, 바쁜 도시 생활 속에서도 토론토 아일랜드는 내가 휴식과 자연을 찾을 수 있는 장소였다. 마치 도시의 소음이 조용히 사라지고, 푸른 자연이 두 팔 벌려 나를 환영하는 기분이었다. 친구들과 맨발로 축구도 하고 프리스비도 던지며 해맑게 웃던 그 시절이 떠오르면서, 나는 괜스레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때의 우리는 모든 것이 완벽한 순간처럼 느껴졌었다. 햇볕 아래에서 공을 차다가 다 함께 넘어져 뒹굴고, 배가 고프면 돗자리를 펴고 피크닉을 즐겼다. 그렇게 추억에 젖어 그 섬을 다시 찾아가고 있었다. 


이번에도 변함없이 맑은 날씨 속에서 페리를 타고 섬으로 향하면서, 나는 한 도시의 분주함과 고요함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 다시금 체감할 수 있었다. 섬에 도착하자마자, 푸른 잔디와 그림 같은 호수가 나를 맞아주었다. 바람에 잔잔히 일렁이는 나무들의 속삭임과 어디선가 들려오는 새들의 지저귐은 도시의 소음과는 대조적으로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페리에서 내리자마자 나는 마치 시간 여행을 한 것처럼 느꼈다. 15년 전 그 자리에 멈춰 서 있는 듯, 섬의 모습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친구들이 피크닉을 즐기던 그 잔디밭,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며 웃음꽃을 피우던 그 길도 여전히 그대로였다. 내가 즐겼던 모든 순간들을 다시 한번 회상하며 남편과 나는 도시의 번잡함은 잠시 잊고, 토론토 아일랜드에서 ‘완벽한 여름의 기억’이라는 추억을 또 만들었다.


섬에서 바라본 토론토의 스카이라인은 여전히 장관이었다. 하늘을 찌를 듯한 고층 빌딩들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을 보니, 멀리서도 도시의 활기가 전해졌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 속에서 나는 도시와 자연 사이의 미묘한 균형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토론토 아일랜드는 마치 도시의 정원처럼, 무거운 일상을 잠시 내려놓고 숨을 고를 수 있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내가 느끼는 이 평화가 어떻게 유지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한쪽에는 높게 솟은 건물들과 교통의 혼잡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고요한 호수와 푸른 나무들이 있다. 도시와 자연의 경계선에 있는 이 섬은, 토론토가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었다.


돌아오는 페리에서, 나는 섬과 도시 사이의 경계가 단지 물리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토론토 아일랜드는 단순한 휴양지가 아니라, 분주한 삶 속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돌아갈 수 있는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었다. 캘거리의 국립공원처럼 도시가 얼마나 빠르게 변하든, 이 섬은 그 속도를 따라가려 하지 않고, 그저 자신의 자리에서 여유를 선물하고 있었다. 이곳에서의 경험은 마치 내 안에 고요함을 다시 채워 넣어준 느낌이었다.



배가 고파진 우리는 예전에 내가 자주 찾았던 북창동 순두부집을 다시 방문했다. 남편에게 그 시절의 추억을 고스란히 공유하고 싶었고, 15년 전의 그 맛과 분위기가 그대로일지 궁금하기도 했다. 토론토에서 유학 생활을 하며 한국 음식이 너무나도 그리울 때마다 나는 이곳으로 향하곤 했다. 그 당시의 나는 순두부찌개 한 그릇을 앞에 두고 마치 집으로 순간이동한 듯한 위로를 느끼곤 했던 기억이 났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나는 ‘여전히 여기가 예전과 같을까?’라는 기대와 약간의 불안이 교차했다. 그도 그럴 것이, 시간이 지나면 무엇이든 변하기 마련이지 않은가? 하지만 실내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내부 인테리어, 메뉴판, 심지어 매콤한 고추기름과 두부가 어우러진 향기까지도 마치 시간이 멈춘 듯 변함없이 그대로였다. 그 순간 나는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에 대한 묘한 감동을 느꼈다. 순두부 한 숟가락을 떠서 입안에 넣는 순간, 그 부드러움과 매콤함이 혀를 감싸면서 옛 추억들이 밀려오듯 되살아났다.


남편은 메뉴를 보다 자신의 최애 음식 중 하나인 뼈다귀 해장국을 주문했지만, 내가 권한 순두부찌개를 맛본 후 그의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평소 고기를 곁들인 진한 국물을 좋아하는 그가, 순두부찌개의 매콤하고 부드러운 조화에 완전히 반해버린 것이다. 이후로도 남편에게 "뭐 먹을래?"라고 물을 때마다, 그는 눈을 반짝이며 "순두부찌개!"라고 외치기 일쑤였다.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 순두부찌개는, 나에게는 단순한 음식 이상의 의미였다. 이곳에서의 경험은 토론토에서의 추억과 지금의 나를 연결해 주는 따뜻한 다리 같은 역할을 해주었다. 이번 방문을 통해, 나는 시간이 흐르고 환경이 변하더라도 사람의 기억 속에 남은 소중한 것들은 결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5년 전의 나를 다시 만난 기분이었다. 토론토는, 그렇게 변하지 않은 맛을 통해 내 마음속에 여전히 특별한 도시로 자리 잡았다.


내가 이번에 겪은 토론토는 여전히 변화하면서도 변하지 않는 도시였다. 15년 전의 기억과 현재의 경험을 통해 나는 이 도시가 시간 속에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가면서도 진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예전에 알던 토론토가 그대로 남아 있는 부분도 있었지만, 동시에 새로운 변화의 물결이 흐르고 있다는 것도 실감할 수 있었다. 이번 여행은 단순히 추억을 되새기는 시간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도시에서 어떻게 우리도 시간과 함께 성장해야 하는지를 고찰하게 만든 소중한 경험이었다.




캘거리와 토론토를 잇는 이 여행은, 마치 두 개의 다른 세상 속을 오가는 모험과도 같았다. 앨버타의 광활한 자연 속에 서 있으면, 끝없이 펼쳐진 대지와 하늘을 바라보며 내가 우주의 한 작은 점처럼 느껴졌다. 눈앞에 펼쳐진 록키산맥의 거대한 봉우리들과 에메랄드빛 호수는 숨을 멎게 만들었고, 그 웅장한 자연 앞에서 인간의 존재가 얼마나 작고 덧없는지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호수 위를 미끄러지듯 지나가는 구름과, 고요한 숲 속에서 들려오는 새소리는 세상이 만들어낸 천상의 멜로디 같았다. 한편으로는 이런 자연의 경이로움을 지키기 위해 우리가 얼마나 책임을 져야 하는지도 깊이 느껴졌다.


그리고 토론토에 도착하니, 이 도시가 마치 거대한 유기체처럼 쉼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고층 빌딩의 유리창마다 반사된 햇빛은 도심의 활기를 반짝이듯 비추고, 거리 곳곳에서 들려오는 다양한 언어와 음악은 토론토가 가진 문화적 다채로움을 한껏 드러냈다. 전 세계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이 활기찬 에너지는 도시를 하나의 거대한 퍼즐처럼 느끼게 했다. 그 퍼즐의 조각들은 모두 다르게 생겼지만, 서로 맞물려 완벽한 그림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이 둘 사이에서 우리는 자연과 도시라는 두 거대한 세계 속에서 인간으로서의 한계와 책임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되었다. 한쪽에서는 압도적인 자연의 힘 앞에서 인간의 존재를 돌아보게 되었고, 다른 쪽에서는 끊임없이 발전하고 확장하는 도시의 모습 속에서 우리가 만들어낸 변화를 마주하게 되었다. 그렇게 두 세계가 만들어내는 대조적인 풍경 속에서, 우리 삶의 방식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행의 끝자락에서, 나는 도시와 자연이 단순히 대조적인 것이 아니라 서로 보완하며 공존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록키산맥의 호수들이나 CN 타워에서 본 토론토의 풍경처럼, 우리에게는 두 세계가 모두 필요하다. 자연은 우리에게 경외감과 평온함을, 도시는 창의성과 활력을 선사해 준다. 이 두 세계의 조화를 이뤄가는 것이 우리가 미래를 설계할 때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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