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내 안의 나를 만난 여정

<캐나다 노바스코샤를 여행하며>

by 루미나라


캐나다의 광활한 영토 덕분에 각 도시를 여행할 때마다 새로운 느낌과 즐거움을 경험했고, 지루할 틈이 없었다. 캐나다에서 보낸 한 달 반이라는 시간이 서서히 끝나가고 있었는데, 남편은 더 머물고 싶어 하며 아쉬워한 반면, 나는 이제 충분히 여행했다고 느꼈다. 나의 여행 체력은 거의 소진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 이런 나의 무거운 몸을 남편이 토닥이며 우리는 드디어 여행의 마지막 종착지인 노바스코샤로 향했다.


노바스코샤의 한 도시인 핼리팩스에 도착하자마자 캐나다 동부, 대서양과 마주한 노바스코샤주의 바닷바람이 우리를 맞이했다. 저녁 늦게 도착하니 작은 조명들이 우리를 감쌌고 바다의 짭조름한 냄새와 함께 바람의 거친 매력을 우리에게 선사했다. 오랜만에 바다를 보니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핼리팩스의 유명한 항구를 거닐며, 현지의 해산물을 맛보러 해산물 레스토랑에 들렀다. 신선한 해산물과 함께하는 저녁 식사는 여행의 피로를 잊게 해 주었고, 바다의 풍경과 함께 어우러져 잊지 못할 추억을 또 하나 선사했다.


이곳이 오랫동안 품고 있던 이야기들도 마음속으로 흘러들어왔다. 핼리팩스는 작은 항구 도시지만, 그 속에 담긴 역사와 문화는 바다만큼 깊고 넓었다. 이 도시는 1749년 설립 이래로 영국과 캐나다의 중요한 군사적·상업적 거점이었고, 1912년 타이타닉의 비극적인 역사도 품고 있는 곳이다. 타이타닉호가 침몰한 지점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였던 핼리팩스는 거기서 구조 작업을 주도했다고 한다. 이곳의 마리타임 뮤지엄에서는 타이타닉 유물을 볼 수 있었고, 우리가 방문한 페어뷰 공동묘지에는 타이타닉 희생자들이 잠들어 있었다. 우리는 그곳을 둘러보며 소중한 사람이 내 옆에 있을 때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기도 했고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라는 노래 가사가 저절로 떠올랐다. 핼리팩스 워터프런트를 걸으며 이 오래된 도시가 지닌 시간의 흐름을 천천히 느끼는 동안, 나는 여행이란 단순히 새로운 곳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곳의 이야기를 내 삶 속으로 들어오게 하는 과정임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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핼리팩스에서도 우리는 렌트카를 빌려 당일치기 여행을 떠났다. 핼리팩스에서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아 도착한 곳, 페기스코브(Peggy's Cove). 작고 아기자기한 어촌 마을인 이곳은 마치 동화 속 한 장면 같았다. 날씨가 흐려 조금 안타까웠지만 이 작은 어촌 마을은 마치 잘 그린 수채화 같은 풍경을 자랑했고, 우리는 수많은 사진을 찍으며 그 낭만과 아름다움을 만끽했다. 한국에서는 비싸서 쉽게 먹지 못하는 랍스터를 이곳에서는 간식처럼 빵에 넣어 먹는다는 이야기를 들어, 우리도 하나씩 사 먹어 보았다. 예상대로 맛도 좋았고 가성비도 뛰어나 만족스러웠다.


그림 같은 바다 풍경과 함께, 큰 바위 더미 위에 우뚝 선 하얀 등대가 나를 반겨주었다. 등대는 마치 이곳의 주인처럼 바람에 맞서 굳건히 서 있었고, 나는 바위 위에 털썩 앉아 끝없이 펼쳐진 대서양을 바라보았다. 짭조름한 바닷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파도 소리가 나의 복잡한 생각들을 하나하나 밀어내는 듯했다. 머릿속이 깨끗이 비워지며,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평온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페기스코브에서의 시간은 단지 멋진 사진을 찍고 여행지를 추가하는 순간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바다와 함께 호흡하며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모든 것이 바다처럼 흘러가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파도처럼 밀려왔고, 나는 그 흐름을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등대는 거센 바람 속에서도 꿋꿋이 제자리를 지키며 바다를 비추고 있었다. 마치 내 삶 속의 불확실함 속에서 나아갈 길을 인도해 주는 존재처럼 느껴졌다. 그 앞에서 나는 그 등대처럼 더 단단해지고 강해지고 싶다는 작은 다짐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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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여정지, 루넨버그(Lunenburg)에 도착했을 때는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곳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마을답게 18세기 초기 건축 양식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알록달록한 목조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는 거리는 그 자체로 한 편의 그림 같았다.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따라가다 보면, 도시를 걷는 것이 아니라 한 시대의 정신 속을 유영하는 듯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여정 중 빠질 수 없는 건 당연히 먹는 즐거움이었다. 현지 레스토랑에서 주문한 싱싱한 생굴과 해산물 요리는 단연코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였다. “이게 바로 바다의 맛이지!”라며 남편과 함께 생굴 한 접시를 순식간에 해치웠다. 신선한 굴에서 바닷바람의 짠 내음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바다를 보며 먹는 해산물 요리는 단순히 맛있는 식사를 넘어 이 마을과 한층 더 가까워지는 순간이었다.


레스토랑 주인과 그 파트너는 우리에게 루넨버그에 처음 왔냐며 친절하게 이야기를 걸어왔다. “저희는 해산물을 직접 잡아 요리해요! 그러니 음식이 완전 신선하지요!”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그들의 눈빛은 바다를 닮은 듯 맑고 강인했다. 그러다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고기잡이 이야기와 레스토랑을 시작하게 된 이야기를 들려주며, “바다는 내 삶이고, 내 인생의 동반자에요.”라고 말했다. 그 꾸밈없는 진심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바다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루넨버그에서 보낸 하루는 마을의 숨결을 함께 나누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나는 이곳에서 단순히 풍경만 본 것이 아니라, 바다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삶의 소박함과 강인함을 배운 것 같았다. “다음엔 우리도 이 마을에서 한 달쯤 고기 잡으며 살아볼까?” 남편이 농담처럼 말했지만, 나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바다를 보며 매일 신선한 해산물을 먹는 삶이라면 나도 괜찮을 것 같아!”라며 웃었다. 루넨버그는 그 자체로 멋진 여행지였고 다시 찾아오고 싶게 만드는 따뜻한 매력을 가진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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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어의 마지막 행선지는 남편이 손꼽아 기다려 온 오크섬(Oak Island)이었다. 그는 다큐멘터리 시리즈 '오크섬의 저주(The Curse of Oak Island)'를 매 시즌 빠짐없이 챙겨보며 온갖 음모론과 보물 이야기에 푹 빠져 있었다. 이 섬은 18세기말부터 전설적인 보물이 묻혀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탐험가들과 역사학자들, 심지어 모험을 꿈꾸는 일반인들까지 사로잡았다. 남편은 출발하기 전부터 "혹시 우리가 보물을 발견하면 어떡하지?"라며 설레발을 떨었는데 나는 그런 그가 어이없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코웃음을 지었다.


섬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바로 섬 중앙에 있는 머니 핏(Money Pit) 이야기를 떠올렸다. 전설에 따르면, 이곳은 누군가가 아주 오래전부터 보물을 숨겨 놓고 지하 깊이 터널과 함정을 만들어 침입을 막으려 했던 장소다. 그런데 이곳을 발굴하려던 탐험가들은 항상 수수께끼 같은 사고와 방해를 겪었다고 한다. "이건 진짜 해적이 남긴 보물일까, 아니면 누군가의 완벽한 장난일까?" 남편은 흥분된 목소리로 떠들어댔다. 나는 그의 열정적인 모습에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어쩌면 보물보다 이 전설 자체가 더 값진 건지도 몰라!"


그러나 현실은 다큐멘터리만큼 드라마틱하지 않았다. 아쉽게도 섬 내부로 들어갈 수는 없었고, 방문객 주차장 근처의 박물관만 둘러볼 수 있었다. 막혀 있는 촬영지와 엄격한 출입 제한이 남편을 약간 실망시키는 듯했지만, 그는 이내 섬을 자신의 발로 직접 밟았다는 사실에 만족했다. 박물관 안에서는 오크섬에서 발견된 오래된 동전, 목재 조각, 그리고 보물과 관련된 다양한 이론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남편은 전시물을 보며 "진짜 여기에 뭔가 있는 게 확실해!"라고 눈을 반짝였다.


박물관을 나와 섬 주변을 둘러보며 남편은 여전히 보물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다. "전설에 따르면, 보물이 발견되기 전까지 7명이 죽어야 한다는데, 지금까지 벌써 6명이 희생되었대. 이제 누가 한 명 더?" 그는 장난스럽게 내 눈치를 살폈고, 나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런 무서운 얘기는 혼자 하세요!"라며 고개를 저었다.

비록 머니 핏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남편이 오크섬을 걸으며 자신의 오랜 호기심과 꿈을 만족시키는 모습을 보니, 그곳으로 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가는 길에 남편은 차 안에서 "혹시 우리가 마지막 열쇠를 찾을 팀이었을지도 몰라. 아, 한 발짝만 더 갔으면!"이라고 아쉬워했지만, 나는 웃으며 말했다. "그냥 보물을 찾는 과정이 더 흥미진진하지 않아? 다 찾으면 쇼는 끝날테니 말이지!" 그랬더니 남편은 "생각해보니 그건 또 그렇네!"라고 말해 나를 박장대소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오크섬의 전설 속 한 페이지를 함께 넘기고, 우리는 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던 여정의 끝에서 발길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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핼리팩스의 역사적인 항구, 페기스코브의 고요한 바다, 루넨버그의 다채로운 색채 그리고 오크섬의 미스터리가 어우러진 이 여정은, 마치 내 삶의 어느 한 조각을 찾아 나서는 과정처럼 느껴졌다. 이곳에서 나는 잊고 있던 내 마음속 평온함을 다시 발견했고, 인생이라는 긴 항해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등대를 키워가는 법을 조금이나마 배운 듯했다.


여행을 하면 할수록, 새로운 도시를 알아갈수록 세상이 얼마나 넓고 다양한지 실감하게 된다. 이번 여행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경험과 추억을 쌓았고, 세상에 대한 내 시야도 한층 더 넓어졌다. 여행 캐리어를 여러 번 다시 싸야 했고, 비행기 시간에 맞춰 새벽부터 일어날 때도 있었으며, 자주 바뀌는 잠자리로 인해 체력적으로는 힘들었지만, 남편과의 여행을 통해 많은 삶의 영감을 얻었고 정신적으로 힐링할 수 있었다. 만약 내가 이 여행을 계획했다면 한두 군데만 갔을 것 같은데, 남편이 세밀하게 계획한 덕분에 캐나다의 다채로운 도시들을 전부 다 만나볼 수 있었다. 그의 꼼꼼한 준비 덕에 우리는 밴쿠버의 활기찬 도시 생활, 휘슬러의 평온한 자연, 캘거리와 밴프의 웅장한 국립공원, 토론토의 현대적 매력, 몬트리올과 퀘벡의 프랑스풍 정취, 그리고 핼리팩스와 그 주변의 그림 같은 풍경까지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캐나다의 아름다운 자연과 도시의 미를 다 경험할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었기 때문에 후회가 남지 않았다. 이 여행을 통해 우리는 서로를 더 잘 이해하게 되었고, 우리의 관계도 더욱 깊어졌다. 다양한 환경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우리는 더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서로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기도 했다. 또한,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도 함께 해결해 나가는 경험을 통해 우리는 더 단단한 팀이 되었다.


한편, 15년 전 내가 처음 캐나다에 발을 디뎠을 때 나는 이 나라 사람들이 가진 따뜻한 문화에 큰 충격을 받았다. 버스에 오르고 내릴 때마다 "Thank you!"를 외치는 승객들과 "Have a good day!"로 답해주는 기사님들 덕분에, 매일을 기분 좋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모습은 나에게 신선한 문화적 충격이었다. 한국에서는 버스에서 그렇게 눈 마주치며 웃으며 인사를 한다는 건 상상하기 힘들었으니까. 지하철역에서 사람들을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었다. 따뜻한 시선으로 타인을 바라보고 고요하게 책을 읽거나 서로를 배려하며 조용히 앉아 있는 그 모습에서, 한국의 출근길 혼돈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을 만난 듯했다. “여유라는 게 이런 거구나!”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특히, 캐나다 사람들은 모르는 사람과 눈이 마주쳐도 어색함 없이 밝은 미소를 지어주었다. 한 번은 길을 걷다가 손을 흔드는 할머니를 보고, “이분이 날 아는 분인가?” 하고 잠시 멈칫했는데, 알고 보니 그냥 지나가는 모든 사람에게 손을 흔드는 분이었다. 그때 나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여긴 만인이 친구인가?" 뒷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주는 작은 매너조차도 일상이 된 이 나라에서는, 이런 배려가 특별한 일이 아니라 기본이었다. 대한민국의 숨 가쁘고 치열한 일상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이런 풍경을 목격했을 때, 정말 눈이 번쩍 뜨였다. “바쁘게 살지 않아도 이렇게 잘 살 수 있다니! 이게 진짜 잘 사는 거 아냐?” 나는 그때 깨달았다. 나는 너무 좁은 세상에 갇혀 스스로를 몰아붙이며 살아왔다는 것을.


이번 여행에서도 그 따뜻함은 여전했다. 캐나다 사람들은 여전히 친절했고, 인종과 문화가 뒤섞여도 서로를 존중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한 카페에 들어갔을 때, 한 손님이 직원에게 “너 오늘 기분 좋아 보인다!”라고 건네는 말에, 직원은 “넌 어제보다 더 멋져 보여!”라고 답하며 활짝 웃는 장면을 목격했다. 나는 그때 가만히 커피를 마시며 생각했다. "나는 언제 이렇게 여유 있게 남에게 친절을 베풀어봤지?" 그리고 15년 전, 그 순간에 느꼈던 따뜻함과 설렘이 떠올랐다. 혹시 나는 그때의 다짐을 까맣게 잊고, 바쁘다는 이유로 다시 예민하고 메마른 사람이 되어버린 건 아닐까?


나는 길 위에서, 버스나 기차 안에서, 그리고 카페 한 구석에서 내 삶의 속도와 태도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내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다. 남편이 옆에서 “뭐 그렇게 진지해?”라며 웃었지만, 나는 캐나다의 여유로움 속에서 문득 결심하게 되었다. “다시 돌아가도 이 여유와 따뜻함을 잃지 말아야지. 나도 누군가에게 문을 잡아줄 수 있는, 여유로움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겠어!” 캐나다는 단지 따뜻한 문화가 있는 나라가 아니라, 내가 잊고 있던 것들을 다시 일깨워준 곳이었다. 15년 전 나를 바꿔 놓았던 그 경험이 다시 내 마음속에서 살아나고 있었다.


전에 회사에 다닐 때는 이런 장기 여행은 꿈도 못 꿨다. 일주일간 해외여행도 갈까 말까 한데, 45일간의 여행은 정말 불가능한 일이었다. 직장인이었을 때는 주어진 휴가 일수에 맞춰 빠듯하게 계획을 세워야 했고, 업무에 쫓기다 보니 긴 여행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남편의 원격 근무라는 유연한 근무 환경과, 내 사업을 준비하는 기간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자유롭게 일정을 조정할 수 있었고, 매일 새로운 장소에서 일을 하며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남편과 나는 아침에 매일 카페에서 업무를 보고, 오후에는 함께 관광지를 둘러보거나 자연 속에서 시간을 보냈다. 이 경험은 우리에게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제시해 주었다. 펜션을 시작하고 비즈니스가 안정이 되면 우리는 더 이상 일과 여행을 별개로 생각하지 않아도 되고, 앞으로도 원격 근무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해 다양한 곳을 여행하며 살아갈 계획을 세웠다. 이 여행은 우리에게 삶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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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펜션 공사 때문에 대출을 두 번이나 받았는데, 왜 굳이 돈을 써서 이렇게 긴 여행을 갔는지 의아해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평소 저축만 하던 내 성격이라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남편을 만나고 나서 불확실한 미래에 얽매여 현재를 계속 희생하기보다는 현재를 충실하게 사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한 템포 쉬어가는 것도 행복한 삶에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펜션 사업을 곧 시작하면 많이 바빠질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때가 여행하기 적기라고 판단했다. 남편은 좋은 파트너와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나의 소원을 이미 이루어 주고 있었기 때문에, 나도 세계 여행이 꿈인 남편의 꿈을 이번 기회에 부분적으로나마 실현시켜주고 싶었다.


이번 캐나다 여행은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다양한 문화와 자연을 경험하며 서로에게 더 가까워졌고, 여행을 통해 얻은 영감과 추억은 우리 삶에 큰 자산이 되었다. 또한, 이번 여행은 펜션 사업을 꼭 성공시켜 남편과 더 많은 여행을 다니겠다는 강력한 동기부여를 확실하게 해 주었다. 캐나다의 광활한 자연과 다양한 도시들을 경험하면서 우리는 삶의 다양한 측면을 배웠다. 여유를 가지고 현재를 즐기면서도 미래를 계획하는 균형 잡힌 삶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이번 여행은 단순한 휴가가 아닌, 우리 삶의 철학을 재정립하는 계기가 되는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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