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난했던 독일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드디어 한국 땅을 밟았다. 공항의 공기마저 반가웠지만, 곧이어 기다리고 있던 지긋지긋한 자가격리는 그야말로 인내의 시간이었다. 자가격리를 무사히 끝낸 뒤, 우리가 가장 먼저 향한 곳은 당연히 펜션이었다. 펜션은 생각보다 훨씬 잘 돌아가고 있었다. 부모님이 세심하게 관리해주신 덕분에 큰 문제는 없었고, 청소 이모님들의 꼼꼼한 손길 덕에 객실은 여전히 빛이 날 정도로 깨끗했다. 고객님들의 감동적인 리뷰들이 줄줄이 이어졌고 그 리뷰들을 보며 그동안의 모든 노력과 땀을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성수기가 지나서도 70~80%를 웃도는 예약률은 계속되었다. 물론 새로 지은 건물 특유의 문제, 여기저기 생겨나는 작은 공사들은 피할 수 없었지만, 다행히 펜션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다. 예약률이 높아지다 보니 부모님께서 관리에 조금 힘들어하시는 모습을 보고, 우리는 결국 팀을 보강하기로 했다. 새로 합류한 멤버는 청소 직원 한 명, 매니저 한 명. 이들은 단순히 일을 맡기는 직원이 아니라, 우리의 철학과 기준을 공유하는 파트너였다. 그래서 트레이닝 과정도 꼼꼼히 준비했다. “펜션은 호텔보다 더 깨끗하고 좋아야 한다.”라는 우리의 기준을 전달하며, 서비스와 청결 모두에서 최고를 목표로 삼았다. 매뉴얼과 체크리스트도 새로 만들어 작업의 일관성을 유지하도록 했고, 고객이 도착하기 전 모든 준비가 완벽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시스템을 정비했다.
물론, 우리가 직접 청소와 관리를 하면 인건비가 들지 않아 훨씬 더 많은 마진을 남길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애초에 펜션을 시작할 때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라는 목표를 세웠다. 남편의 일 때문에 유럽을 오가야 하는 상황에서, 펜션의 운영을 시스템화하지 않으면 자유는커녕 또 다른 족쇄가 될 뿐이었다. 그래서 이 부분에서는 돈과 타협하지 않았다. 펜션은 이제 작지만 탄탄한 팀과 더 체계적인 시스템으로 새롭게 자리 잡고 있었다. 부모님과 직원들, 그리고 우리의 노력이 맞물려 만들어낸 이 작은 왕국은 그 어떤 고난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가진 것처럼 느껴졌다. “자유와 안정, 그 두 마리 토끼를 잡다니, 당신 참 대단하다!”라는 남편의 칭찬에 나는 미소를 지었다.
펜션이 한층 안정되고 팀도 보강된 것을 확인한 우리는, “이제는 우리 차례다!”라는 마음으로 한국의 남쪽 끝, 부산으로 향했다. 푸른 바다와 다가오는 봄을 맞이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선택은 없을 것 같았다. 바다를 좋아하는 우리 부부에게 부산은 그 자체로 설렘을 안겨주는 목적지였다. 부산에서도 우리가 선택한 곳은 바로 해운대. 가장 매력적이라고 생각한 이곳에서 한동안 생활하기로 했다. 해운대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그야말로 “입이 떡 벌어졌다.” 초승달처럼 휘어진 해변을 둘러싼 거대한 고층 빌딩들은 마치 영화 속 장면처럼 장관을 이루었다. 모던하게 변한 해운대는 과거의 기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그 순간, 남편이 해운대 바닷바람을 가득 들이마시고는 갑자기 한국말로 외쳤다. “부산! 안녕하세요!” 그의 과장된 발음과 흥분된 톤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그 들뜬 에너지는 순식간에 나에게도 전염되었다. 남편은 며칠을 걸쳐서도 설렘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 “한동안 부산에서 지내며 새로운 사업 구상을 해보고 싶어.” 좋은 날씨와 탁 트인 바다를 즐길 수 있는 환경에 그는 이미 아이디어가 샘솟는 것처럼 보였다. 독일에서의 지쳐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그는 이곳에서 완전히 에너지를 되찾은 듯했다. “그렇게 좋아?”라고 묻자 그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남편은 항상 창의력이 필요할 때면 새로운 환경에 몸을 던지는 스타일이었다. 그는 늘 말하곤 했다. “새로운 곳에 가야 머리가 트이고, 기발한 생각들이 떠올라.” 나는 그런 그의 성향을 잘 알았기에, 부산이 그의 지친 마음을 치유하고 또다시 창의력의 샘이 되어주길 바랐다. 해운대의 따뜻한 봄바람 속에서, 우리는 오랜만에 완전한 여유를 느꼈다. 길게 펼쳐진 해변을 따라 산책을 하고, 바닷바람을 맡으며 따뜻한 커피를 즐기던 그 순간들은 독일에서의 긴장과 스트레스를 씻어내주는 최고의 힐링이었다. “이곳이야말로 완벽한 재충전의 도시!” 우리는 그렇게 해운대와 첫 인사를 나눴다.
우리는 해운대 해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6평 남짓한 오피스텔에서 지내기로 했다. 아담한 크기였지만, 왠만한 건 다 갖춰져 있어 살기에 큰 불편함은 없었다. 단, 단기 임대라 월세는 생각보다 비쌌다. 그래도 바다가 바로 코앞인 이곳에서의 생활은 그 모든 비용을 잊게 해줄 만큼 매력적이었다. 처음 몇 주 동안 우리는 해운대 구석구석을 탐험하며 새로운 도시의 매력을 한껏 느꼈다. 해변가를 따라 새로 조성된 산책로는 너무나 잘 꾸며져 있어 매일 그 길을 걷는 것이 우리의 아침 루틴이 되었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걷는 길은 마치 휴가를 온 듯한 기분을 주었고, 그 길 끝에서 만나는 해운대의 풍경은 매번 새롭게 느껴졌다.
며칠이 지나 남편이 불쑥 말했다. “나는 부산이 서울보다 훨씬 좋아.” 그의 말에 나도 깊이 동의했다. 해운대는 단순히 아름다운 풍경만이 아니라, 그 속에서 느껴지는 여유와 활기가 완전히 다른 차원의 것이었다. 풍경도 풍경이었지만 해운대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 중 하나는 남편의 입맛을 사로잡은 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이었다. 거기서 먹은 피자는 남편의 극찬을 받았다. “이건 내가 먹어본 피자 중 최고야!” 까다로운 남편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정도면 정말 대단한 맛이라는 뜻이었다. 나 역시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피자 한 조각을 먹을 때마다 우리는 서로를 쳐다보며, “진짜 여기로 이사 오길 잘했어!”라고 말하곤 했다. 이렇게 최애 레스토랑 하나만 있어도 이렇게 행복하다니.. 삶은 어찌보면 정말 단순한 것 같기도 하다.
우리는 주로 카페에서 일을 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해운대에서도 그의 카페 사랑은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나 딱 하나 달라진 점이 있었다. 카페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드넓은 바다라는 것. 그는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노트북에 집중하다가도, 문득 고개를 들어 바다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곤 했다. “어렸을 때부터 항상 바닷가에서 살고 싶었는데, 꿈을 이룬 것 같아!”라며 행복해하는 그의 모습에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게 해운대에서의 생활은 마치 작은 꿈을 이룬 듯한 시간이 되었다. 다른 동네들을 둘러볼 때도 부산의 매력은 끝이 없었다. 매번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이 도시는 우리에게 더 많은 영감과 행복을 가져다주었다. 해운대의 작은 오피스텔은 비록 크지는 않았지만, 우리에게는 꿈을 이루는 첫걸음이 되어 주었다.
그렇게 기분 좋은 매일을 보내니 눈 깜짝할 사이에 한달이 지났다. 그러다 어느 날 집에서 저녁을 먹다가 남편이 말을 꺼냈다.
“나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가 하나 생겼는데..”
“오 진짜? 뭔데?” 라고 내가 물었다.
“독일 또는 독일어를 쓰는 나라들 (DACH 국가들)에 진출하고 싶은 기업들을 상대로 마케팅 컨설턴트로 일하는 거야. 내가 전 회사에서 독일에서 영업하려고 지사 설립하고 직원을 채용하는 과정을 겪어 봤잖아. 그런데 그게 생각보다 절차가 매우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문제야.. 그런데 작은 기업들이나 스타트업 회사에는 마케팅 부서가 아예 없거나 마케팅을 담당할 소규모 팀만 있기 때문에 한계가 있어. 이런 회사들을 도와 DACH 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거지.”라고 남편이 말했다.
“오, 멋진 생각인데? 그런데 요즘 마케팅 에이전시들이 많아서 경쟁이 될까?” 라고 내가 다시 물었다.
“응, 일반적인 회사들을 다루는 큰 마케팅 에이전시들은 많지만 나는 소프트웨어 회사들에만 집중하려고 해. 내가 10년 넘게 일해왔던 분야고 제품개발, 데이터 분석, 마케팅, 영업, 관리 등 비즈니스의 모든 단계를 경험했으니까.” 라고 남편이 대답했다.
“오 맞네! 이것저것 다하는 것 보다는 정말 이 분야만 집중하면 승산이 있을 거 같아!”라고 내가 말했다.
“응 그리고 나는 전 회사에서 독일에서의 수익을 '0'에서 수백만 달러로 성장시킨 경험도 있으니까 이걸 성공사례로 쓰면 가능성이 있을 거 같아.” 라고 남편이 말했다.
“정말 좋은 생각이다! 소프트웨어 마케팅 컨설턴트로 일하면 일단 큰 자금이 드는 것도 아니고, 원격으로 일할 수 있고 밑져야 본전이니 해보면 좋을 거 같아.” 라고 내가 말했다.
“응 그렇다면 오늘부터 시작해봐야겠네!.” 라고 남편이 말했다.
“행운을 빌어! 부산에 온 보람이 있네!” 라고 내가 말했다.
남편은 마침내 “내가 내 일을 주도적으로 해보겠다!”며 프리랜서로의 첫발을 내디뎠다. 준비 과정은 꽤나 진지했다. 먼저,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윅스(Wix)를 이용해 감각적인 웹사이트를 만들었고, LinkedIn과 XING에 프로필을 업데이트하며 고객을 찾아 나섰다. 동시에 Upwork, Toptal, Freelancer 같은 프리랜서 플랫폼에도 가입하며 자신의 서비스를 세상에 알렸다. “이제 나도 글로벌한 프리랜서야!”라며 흥분한 그의 모습에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남편의 목표는 단순하고 명확했다. “한 고용주에게 월급을 받는 대신, 여러 고객사로부터 수수료를 받으며 내 시간을 내 방식대로 쓰겠다!” 보통 회사에서 하루 8시간 근무를 한다고 해도, 일을 일찍 끝내면 남은 시간을 무작정 사무실에 앉아 있어야 하고, 반대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해도 정시 퇴근을 하는 그 모순적인 시간 개념이 늘 불만이었다. 그러나 프리랜서로서 자신이 주도적으로 일을 하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집중력만 발휘하면 단시간에 일을 끝낼 수 있고, 그만큼 더 많은 고객사를 상대할 수 있어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남는 시간은 온전히 자신만의 것으로 쓸 수 있었으니, “이거야말로 삶의 질을 높이는 최고의 방법이야!”라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둘은 결심했다. “다시는 회사의 월급과 맞바꿔 자유를 포기하지 않겠다!” 한 회사에 소속되어 1년에 겨우 2주 휴가를 얻기 위해 모든 자유 시간을 희생하는 삶으로는 절대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다짐했다. “일과 삶은 분리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 단순하지만 강렬한 진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어디서 일하고 싶은지, 어떻게 시간을 관리하고 싶은지 스스로 결정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 특정 요일이나 시간에 얽매이는 대신, 우리가 정한 날과 시간에, 우리의 방식대로 일하는 것이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였다. 남편이 새로운 환경에서 열정적으로 준비를 하는 동안, 나는 그의 옆에서 “자유로운 삶의 첫걸음, 잘 해내고 있어!”라며 응원했다. 그의 집중력과 열정은 우리 가족의 새로운 방향성을 보여주었고, 우리는 함께 ‘자유로운 일과 삶의 균형’을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 있었다. “한 번뿐인 인생, 우리 방식대로 살아보자!”라는 외침이 우리의 하루하루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하지만 큰 포부로 시작했던 남편의 프리랜서 여정은 예상치 못한 난관으로 가득했다. “첫 고객? 뭐, 금방이지!”라며 자신감 넘치던 그는 첫 번째 고객을 유치하는 데 생각보다 훨씬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프리랜서 플랫폼에서 일을 구하려 했지만, 시급을 낮게 제시하는 경쟁자들로 넘쳐났고, 대부분의 고객사들은 저렴한 비용으로 일을 처리하길 원했다. "이건 내 예상과 조금 다르네.."라며 당황한 그는 결국 시장 흐름에 맞추기 위해 마지못해 가격을 조금 타협해야 했다. 그러나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남편의 제안에도 돌아오는 반응은 대부분 차갑기 그지없었다. 거절, 또 거절. 그리고 더 거절. 플랫폼 안에서의 경력과 고객 리뷰의 부재가 그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내 경력이 10년이 넘는데...”라며 억울해했지만, 플랫폼 안에서 일을 구하지 못하면 그 사실을 증명할 방법이 없었다.
한 번은 미국의 한 소프트웨어 회사와 간신히 인터뷰를 잡았지만, 프로젝트는 시작되기도 전에 무산되고 말았다. 남편은 의욕적으로 다시 도전했지만, 매일 아침 플랫폼에 로그인해 프로젝트를 찾는 그의 모습은 마치 직장인이 출근하는 것처럼 반복적이었다. 낮은 보수의 프로젝트라도 경력을 쌓고 리뷰를 얻기 위해 지원했고, 그 과정에서 흥미로운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특히 한 번은 케미가 딱 맞는 고객과 인터뷰를 하며 “드디어 성공인가?”라는 희망이 피어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고객은 인터뷰 후 “죄송해요, 제가 잘 아는 사람과 일을 하기로 했어요.”라며 퇴짜를 놓았다. 남편은 허탈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아는 사람이랑 할거면 도대체 왜 간을 본거야...?”
가격 문제로 맞지 않는 고객들도 있었다. “좀 더 저렴하게 해주시면…”이라는 무리한 요청에 그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내 서비스를 헐값에 팔 순 없어.”라고 단호히 말하며, 자신의 경험과 기술에는 정당한 보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나는 그의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했고, “당신이라면 반드시 첫 고객을 잡을 거야.”라며 힘을 실어주었다. 수많은 거절에도 남편은 놀랍도록 긍정적이었다. 매일 아침, 커피를 마시며 화면 앞에 앉아 또다시 프로젝트를 찾는 그의 모습은 끝없는 도전과 집념 그 자체였다. “하나쯤은 나한테 맞는 프로젝트가 있겠지. 포기하지 않으면 기회는 온다니까!”라고 말하는 남편의 눈빛에는 여전히 열정이 살아 있었다. 그의 여정은 쉽지 않았지만, 그 끈기는 어느새 나에게는 작은 영감이 되었다. “처음은 늘 어렵잖아. 하지만 한번 뚫리면 길이 열릴 거야!”라는 그의 외침처럼, 우리는 첫 고객을 기다리며 함께 마음 조리고 함께 웃었다. 그의 이야기는 아직 시작에 불과했다.
어느 날, 평소처럼 우리는 해운대 해변으로 산책을 나갔다. 해변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드넓게 펼쳐진 스카이라인과 반짝이는 바다를 바라보는 시간은 우리에게 소중한 일상이었다. 상쾌한 바닷바람은 마치 우리에게 속삭이는 듯했고, 무엇보다도 하루 종일 노트북 화면을 들여다보느라 지친 눈과 마음을 달래주는 최고의 순간이었다. 이 시간은 단순한 산책 그 이상이었다. “이 맛에 산책하지.”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자연 속 평온함을 만끽하는 특별한 시간이었다.
그렇게 바람을 맞으며 한가로이 걸어가던 중, 남편의 휴대폰에서 “띵-!” 하는 알림음이 울렸다. 남편은 습관적으로 화면을 열어 알림을 확인했다. "XING에서 메시지가 왔네."라며 무심하게 화면을 들여다본 남편은 잠시 멈칫하더니 흥미로운 눈빛으로 고개를 들었다. “뭐야? 또 스팸 아니야?” 내가 장난스럽게 물었지만, 그의 표정은 조금 달라 보였다. 평소라면 XING에서 오는 메시지는 대개 제품을 팔려는 회사들이나 채용 제안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메시지는 조금 달랐다. 남편은 자세히 내용을 읽더니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들어봐, 진짜 제안이야!”
메시지 내용은 이랬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프로젝트 관리 도구를 다루는 독일 기반 소프트웨어 회사입니다. 현재 전반적인 마케팅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데 도움을 줄 장기 온라인 마케팅 컨설턴트를 찾고 있습니다. 다음 주에 화상통화할 시간이 있으신가요? 관심이 있으시면 연락 주세요.
감사합니다."
남편은 메시지를 두 번, 세 번 읽더니 믿을 수 없다는 듯 휴대폰 화면을 가리켰다. “봐봐, 진짜야! 스팸 아니야! 나한테 장기 프로젝트를 맡기고 싶대!” 그의 얼굴에는 흥분과 놀라움이 가득했다. 평소에는 비교적 침착한 남편이었지만, 그 순간에는 어린아이처럼 들떠 있었다. 나도 메시지를 읽어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거 정말 좋은 기회 같아!” 해운대의 반짝이는 바다와 바람 속에서, 우리는 생각지도 못했던 순간에 뜻밖의 희망을 만났다. “이제 시작이야.” 남편의 목소리는 바람에 묻혔지만, 그의 눈빛은 이미 미래를 향해 빛나고 있었다. '소프트웨어', '프로젝트 관리 도구', '독일 회사'. 남편이 가장 경험이 많고 자신 있어 하던 분야였다. 남편은 메시지를 읽고 나서 이 일은 자신을 위해 준비된 기회일 것 같다며 즉시 답장을 보냈다. “드디어, 깜깜한 터널에 빛이 보여!”라고 외치는 그의 눈빛은 희망으로 반짝였다. 고객사의 CEO와 일주일 뒤 화상 인터뷰를 약속하고 나서부터 남편의 하루는 인터뷰 준비로 빽빽하게 채워졌다.
그는 고객사의 웹사이트를 샅샅이 분석하고 개선할 수 있는 핵심 사항을 정리했다. "이건 내가 제일 잘하는 일이니까."라는 자신감으로 가득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준비하는 그의 뒷모습이 너무나 간절해서, 정작 인터뷰 당일에는 내가 더 긴장했다. “내가 인터뷰를 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떨리지?” 심장이 마구 뛰는 나를 보며 남편이 웃으며 말했다. “나도 진짜 떨리네...”
드디어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한 시간 넘게 진행된 대화는 뜨겁고도 진지했다. 남편은 차분하면서도 열정적으로 자신의 아이디어를 풀어내었고, 인터뷰 끝에 CEO는 남편에게 말했다. "비용을 포함한 제안서를 제출해 주세요."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남편은 곧바로 제안서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남편은 프리랜서 플랫폼에서 제시했던 금액보다 훨씬 높은 컨설팅 비용을 적었다. 리서치를 통해 업계 표준을 확인했고, 자신의 경험과 기술에 걸맞는 합리적인 금액임을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금액이 높다고 느낄수도 있겠지만 “내 가치는 내가 정하는 거야. 내 노력을 저평가할 순 없어.” 남편의 단호한 모습에 나도 깊이 공감했다. 그는 그 가치를 믿고 제안서를 보냈다. 그리고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하루, 이틀, 그리고 일주일.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내가 너무 비싸게 적었나?” 그는 자책하기 시작했다. 아니면 제안서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걸까?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의 자신감은 점점 바닥으로 떨어져 갔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다른 기회가 또 올 테니 계속 도전하자."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러던 2주째 되던 날, 마침내 고객사로부터 답장이 도착했다. 남편은 떨리는 손으로 이메일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귀하와 함께 일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오늘 서명된 계약서를 보내드리겠습니다. 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드디어 됐어!" 고객사의 답장을 보고 남편은 크게 외쳤다. 우리는 함께 부둥켜 안고 기뻐했다. 남편이 개인적으로 시도한 일이 드디어 첫걸음을 내딛었다. 몇 달간의 마음 고생 끝에 첫 고객을 유치한 것에 대해 나는 남편이 매우 자랑스러웠다. 게다가 12개월짜리 계약이라 최소 1년간은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되었다. 시작하고 도전하고 결심하고 실천한 과정이 좋은 결과를 만들어냈다. 운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 운을 만들어낸 것은 남편의 끈기와 노력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고, 자신을 믿고 결정하고 행동한 결과가 보상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남편은 이번 성공을 발판 삼아 더 큰 목표를 세우기 시작했다. 우리는 함께 앉아 앞으로의 계획을 논의하며, 다음 단계에 대해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나누었다. 남편의 눈빛에는 자신감이 가득했고, 나는 그를 전적으로 지원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우리는 이 순간을 기념하며, 앞으로 다가올 모든 도전과 성취를 함께 할 것을 다짐했다. 성공은 단지 결과가 아니라, 끊임없는 노력과 신념의 산물임을 깊이 느끼며 우리는 새로운 출발을 준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