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째 열대야
옥상은 하루 종일 내리쬐는 햇볕을 받은 열기로 유화물감도 녹아서 수채화 물감이 될 지경이다.
밤에도 온도는 그대로였다.
태양이 열선으로 만들어 놓은 그물에서 빠져나갈 방법은 당분간 없어 보인다.
어쩌다 새벽에 선잠이 들면 지하철역에서 들리는 익숙한 여자의 안내방송에 잠 깨어 비몽사몽 라면을 끓였다. 아무리 더워도 하루 세 끼는 먹어야 하니 진화하지 못한 만물의 영장이라 아니할 수 없다. 실수로 옥상 바닥에 떨어뜨린 계란이 5분도 되지 않아 반숙이 된다거나 오존층에 구멍이 뚫리면, 하늘과 가까운 옥탑방 사람들이 제일 먼저 수육이 될 수 있다는 좆같은 현실을 실감할 때면 출처를 알 수 없는 울화가 치밀기도 했다.
기찻길옆, 지하철역이 내려다 보이는 옥탑방으로 이사 오는 게 아니었는데, 복덕방 할아버지의 화실 하기엔 금상첨화라는 꼬드김에 완전히 속고 말았다. 봄가을엔 정말 시원하고 살기 좋다는 말에 여름과 겨울의 환경은 생각하지 못한 나의 단순함은 단세포 아메바와 다를 게 없다.
옥탑방에서 여름을 견뎌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방바닥도 뜨거워 밖으로 나오면 전두엽에 오류가 생겨서 모든 사물이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처럼 흐느적거리는 착각에 빠진다는 것을.
옥탑방에서 불면의 새벽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열대야에 무방비로 노출되면 모질게 등 돌렸던 애인의 이름도, 자주 듣던 음악다방의 팝송 제목도 휘발돼 버린 기억상실증에 걸린다는 것을.
화단의 꽃들도 아무리 물을 먹이고 그늘을 만들어 주어도 성의가 부족했는지 하나둘 척추를 꺾고 예뻤던 머리를 뜨거운 옥상 바닥에 처박았다.
그나마 꽃 중에서도 태양의 먼 친척 해바라기 소피아 로렌은 힘이 없어 보이긴 했지만, 그 나름 꽃대궁이 굵어지고 커다란 얼굴의 주근깨도 까맣게 여물고 있었다. 소피아 로렌이 잘 버텨 줬으면 좋겠다.
가을이 못 견디게 기다려졌다. 그러나 가을은 올해가 다 가도록 오지 않을 거라는 불길한 예감.
다행히 소나기라도 내리는 밤이면 메리야스도 벗고 팬티만 입은 채 온몸으로 비를 맞았다.
소피아 로렌, 맨드라미, 채송화도 다 같이 입을 벌리고 비를 맞았다.
또다시 아침, 계절은 여름에 멈춰있었고 어김없이 태양의 시간만 지루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청림 화랑에서 그림을 가지고 오라는 독촉도 있었지만, 며칠째 스케치 한 장도 하지 못하고 최신 에어컨이 있는 외환 은행 구석에 앉아 땀을 식혔다. 더러는 청원경찰의 눈총과 내 또래 은행 여직원들이 힐끔거리는 쪽팔린 상황도 있었지만 뻔뻔하게 나는, 은행에 비치된 교양서적을 교양 있게 뒤적거리며 냉기를 충전하고는 길게 자빠져있는 오후의 그림자를 데리고 화실로 돌아오곤 했다.
나의 여름은 이글거리는 불꽃 속에서 새벽까지
뇌세포를 태우다가 끝내는, 해바라기 소피아 로렌 옆에서 술이나 마시는 한심한 날들이 반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