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에서는 덩치 좋은 파란색 인간이 등을 밀고
앞에는 초록색 인간의 머리가 코에 닿는다.
초록색 인간은 여자다.
조금이라도 접촉을 줄이려 손잡이 잡은 팔에 힘을 준다. 너무 힘을 줬을까 손아귀에 쥐가 난다.
뒤에 있는 파란색인간이 중심을 잃을 때마다 나도 같이 흔들려서 초록색 인간을 자극한다.
사자성어로 진퇴양난, 장기에선 외통, 바둑에선 축으로 몰리는 개 같은 상황에 처한 것이다.
지가 이리 밀리고 저리 밀려서 내 앞에 서 놓고서 변태새끼 보듯 힐끔 거린다.
괜히 신경 쓰여 옆으로 몸을 틀었는데 카톡 하던 보라색 인간이 지 핸드폰 훔쳐보는 줄 알고 눈으로 짜증을 낸다.
오늘도 인간이 인간들 눈치 보며 인간답게 시작한다
하루종일 여러 색에 물들어 먹이를 구하다 보니 까만색이 되었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한다.
아무리 씻어도 탈색이 안 된다.
철수세미로 살갗이 벗겨지도록 문질러도 나의 색을 찾을 수 없었다.
어쩌면 나의 색은 이미 퇴색된 건지도 모르겠다.
까만색
그래도 괜찮다. 색은 잃었지만
세상의 모든 빛을 흡수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혹시 모를 일이지, 빛을 배 터지게 먹고는 은하수 푸른 숲 속에서 제일 반짝이는 별이 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