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말속에 나를 비난할 의도는 없었을 것이다. 그냥 속상하니까, 딸이 엄마의 마음을 몰라주니까 서운해서 하는 말이었을 것이다.
엄마를 기쁘게 했을 때 이런 말을 들었다면 다르게 받아들여졌겠지만 '너랑 똑 닮은 딸 낳아서 너도 똑같이 속 썩어봐'라는 의미로 들렸던 저 말은 자주 들은 말이라 그런지 잊히지가 않았다. 스스로 내가 사랑스럽고 예쁜 딸이라 생각했다면 또 다르게 해석했을 수 있겠지. 하지만 나는 내가 가진 단점들을 너무 많이 알고 있었고 엄마를 힘들게 했다는 것도 분명했기 때문에 좋은 뜻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첫 손주를 안겨 드렸을 때 부모님은 너무나 기뻐하셨다. 가부장적이었던 아버지에게 나도 안겨 본 기억이 없고, 아버지가 머리 한번 쓰다듬어 주신 기억이 없는데 품에서 아이를 놓을 줄을 모르셨다. 아이가 꽤나 커가는 동안 아이가 뭘 하든 허허 웃으며 좋아하시고 아이가 해달라는 건 뭐든지 다 해주셨다.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첫 손주가 그렇게도 예쁜지 한동네에 살아 매주 들리던 친정에 한 주 라도 들르지 않으면 아이를 안 보여 준다며 역정을 내시곤 했다.
"엄마, 엄마 예전에 맨날 너도 너 같은 딸 낳아보라고 했잖아. 왜 그랬어? 얘가 나처럼 철없고 속 썩이는 아이면 좋겠어?"
"야, 얘는 너 같을 수가 없지. 부모 사랑도 받고 할미 할비 사랑도 이렇게 많이 받는데! 네가 우리처럼 애 속 썩 일거야? 너는 안 그래야지. 엄마 아빠가 왜 이렇게 손녀딸이 예쁜 줄 아냐? 너한테 미안해서 그러는 거야!"
엄마도 살짝 울컥해 눈물이 고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도 마음이 조금은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나는 아이들에게 절대 하지 않는 말들이 있다. 그중에 하나가 너랑 똑같은 애 낳아보라는 말이다. 왠지 부정적인 의미가 들어있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어 '너도 너처럼 예쁜 아이 낳아서 이런 행복을 느껴봐'로 쓸 수 없는 말인 것 같아서다.
나는 부모님을.. 부모님은 나를.. 참 많이도 속 썩이고 힘들게 했다. 어른이 되고 나니 이제는 부모님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과제들은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