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읽지도 못하는 책들이 자꾸만 쌓인다. 책이 내 의식을 휘어잡지 못할 만큼 내 정서는 헝클어져 있다. 노력한다고 해서 쉽게 정리될 내용들이 아니라서 시간흐름 대로 맡기고 있다. 사실 비즈니스 때문에 바쁘고 지치는 일정이다. 엊그제는 서울 강남이고 어제는 일산과 김포이고 오늘은 전북 정읍이고 내일은 서울의 관악이다. 고정되지 않은 동서남북이고 다 먼 거리다.
그래도 비즈니스 가방 속엔 한 권의 책이 들어있고 로시난테 내부에도 두 권의 책이 굴러 다닌다. 지난 구월에만 다섯 권을 샀다. 한 권만 다 읽었고 나머지 두 권은 밀려있다. 의식적 으로라도 읽기 위해 관심의 사정권에 두고 있는 것이다. 한 달에 책을 접하지 못하면 영혼이 고파진다. 못 읽어도 머리맡에 두고 있어야 한다.
늘 의식 속엔 하루의 비즈니스 여정 중에 짬이나 시간이 생기면 그 순간 차를 편안한 곳에 세우고 나머지 책을 안온한 속에서 잠깐이라도 읽을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러다가 그런 시간이 생기면 먼저 전화통화와 카톡, 문자, 비즈니스 밴드등을 소화하다 보면 시간이 홀랑 소모되어 버린다. 엉뚱한데 시간을 소모해 버리고 책의 분량의 그냥 남는다.
그런데 어제 밤늦게 집에 돌아와 보니 큰딸이 책을 세권이나 사놓고 나를 기다렸다. 요즈음 바빠 힘들어하는 아빠를 위해 선물을 준비한 거란다. 솔직히 그러면서 본인이 읽고 싶은 것을 산 것이다. 집에서 같이 읽을 거니까 선물이란 생색도 내면서 본인도 읽으니 효과는 만점이기 때문이다. 나는 딸과 밀도 있는 의식의 교류가 되는 것과 좋아하는 책이라 대감동을 받는다. 읽을 것을 쌓아 놓는 것이 꼭 무슨 농부가 잉여식량을 확보한 것처럼 기분을 뿌듯하게 만든다. 곳간을 가득 채운 기분이다.
리베카 솔닛의 마음의 발걸음, 걷기의 인문학, 남자들이 자꾸만 나를 가르치려 한다, 그림자의 강 등이 내게 있는 책이다. 미국에서 당신의 세계를 바꿀 25인의 사상가로 중에 한 명으로 꼽힌다. 마음의 발걸음은 뿌리 뽑힌 땅 아일랜드에서 레베카 솔닛이 마주친 사람들과 장소를 쓴 여행기적인 책이다. 나는 아일랜드의 민요 아 목동아를 수년간 불렀던 노래의 나라의 이야기를 여행가가 쓴 책이라 너무나 반가운 선물이다. 내년 6월, 아님 추석에 지인들을 모아 북유럽 크루즈 여행을 잡아놓고 있다. 책을 좋아하는 지인들이 중심이 될 것이다.ㅎㅎ 암튼 큰딸은 나와 생각이 같이 흐른다.
달과 별과 우주는 내 영원한 동경의 세계다. 내가 서점에서 고를 때 우선순위에서 밀려 있었는데 녀석은 그걸 알기나 한 듯이 산 것이다. 유월에는 광활한 우주 유영을 하게 생겼다.
또 한 권은 혼돈의 세계다. 이건 지금 돌아가는 지구촌의 격랑,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과 중동의 전쟁, 중국과 대만의 위기, 북한과 미국의 핵격랑을 보면서 아마도 녀석이 읽고 싶었던 책인가 보다. 나는 관심권 밖에 있는 책이다. 아주 여유로운 시간이 만들어졌고 그때 읽을 책이 없으면 읽을까 하는 책이다. 암튼 선물이니까
또 한 권은 세계화의 종말이다. 이것도 녀석의 관심권 책이다. 세 권의 책중에 자기가 먼저 읽는다고 선물전달과 함께 바로 회수해 간 책이다. 어쨌든 나는 잡곡의 가마니들을 곳간에 두둑이 쌓아둔 기분이다. 이번 여름엔 많은 것들을 내려놓고 혼자 하는 여행으로 많이 헝클어진 정서들을 평온한 정서로 돌려놓는 게 우선이다. 정숙한 독서로의 치유가 가장 빠를 건데 이렇게 곳간을 채우니 든든하다.
여행, 독서, 노래, 그리고 사업 사람들과 정겨운 교류가 이번 가을의 화두다. 어느 것이든 최고의 정성을 들일 것이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