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단편들...
아마도 국민학교 삼 학년 때 일이었다.
친구와 둘이 놀고 있는데 지금의 식빵처럼 생긴 빵이 다섯 개가 생겼다.
짝수가 아니라서 나누기가 곤란했다. 친구도 나도
서로 세 개를 욕심냈다.
친구가 먼저 두 개를 집어서 포개어 먹기 시작했다. 나는 하나를 집어 먹기 시작했다.
하나를 먹으니 친구보다 월씬 빨리 먹었다.
그리고 두 개를 집어 포개 먹으면서 물어보았다.
"두 개를 한꺼번에 먹으니 맛있니?"
내가 학교를 졸업하고 막 농사를 배울 때 일이다.
우리 앞 집에 여섯 살 된 귀여운 남자꼬마 녀석이 있었는데 그 녀석 아버지가 천등산에서 캔 산삼 중에 실뿌리 하나를 떼어서 그 꼬마에게 먹이는 바람에 그 꼬마는 겨울에도 팬티하나 걸치지 않고 알몸과 맨발로 동네를 쏘 다녀서 동네 어른들에게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어른들은 그 꼬마를 만나면 언제나
"아이 그놈, 어디 불알 좀 보자."
또는 "그놈 불알 쫌 까자."
거의가 다 그렇게 귀여움을 표현했다.
짓궂은 데는 일가견이 있던 나는
그 꼬마가 우리 집에 왔을 때 한나절을 특별 교육을 시켰다.
그 교육을 시킨 다음부터 어른들의 그 언어의 성폭행은 없어지고 말았다.
머리가 하얀 동네 할아버지가 사람들 많은 데서 망신을 당하고부터였다.
그 꼬마는 이렇게 되받아 쳤던 것이다.
'큰 불알부터 봐요, 또는 큰 불알부터 까유"
우리 동네 중간에는 커다란 정자나무가 있어서 여름철에는 항상 할아버지들이 모여서 바둑을 두거나 장기를 두고 막걸리는 마시는 곳이었다.
기억이 흐릿해서 때는 명확하지 않았지만 저학년 어느 여름방학 때였다.
정자나무에는 말매미들이 많았기에 잡으러 가니 할아버지들이 열 분정도 계셨다.
매미도 안 울고 더위는 기승을 부려서 나도 그 속에 끼어서 오목판을 구경하고 있었다.
나 때문에 할아버지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여자 이야기나 음담패설)
있었는데도 나 때문에 못 하시자 싱겁기로 유명한 훈장님 분위기의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다.
"그놈 참! 개중에 보리알 끼듯 앉아서......"
내 이마에 알밤을 살짝 때리셨다.
할 수 없이 나는 엉덩이를 털며 잃어나서 한마디 던지고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그럼 보리알은 갈 테니까 개죽들 끼리 실컷 놀아 보세요"
너는 커서 입만 가지고 살아갈 놈이다..... 참 많이도 들었는데 공교롭게도 입으로 벌어먹고 산답니다^^
그러나 사는 게 바쁘다 보니 체력이 달리고 생각할 것도 많고 하는 일에 경쟁사들도 많다 보니 그 많던 유머감각도 잃어버린 채 살고 있었는데 걷기로 에너지를 되찾으니 유머감각도 노래와 음성도 다 함께 살아나고 있어 행복합니다. 그러다 보니 상상력도 살아나서 이렇게 손가락 자판으로 삶의 궤적들을 꿰어가는 일도 순탄하게 진행됩니다. 희망이고 드림이고 에너지의 원천으로 흘러서 희. 노. 애. 락 이란 파고들을 넘고 넘는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