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나보다 3배 빨리 살아간다 - <구구는 고양이다>

영화로 보는 웰다잉

by 노리

<구구는 고양이다(일본 극영화, 이누도 잇신 감독, 2008)>

(6월 21일 “우리동생”(우리동물병원생명사회적협동조합)과 함께 한 ‘반려인의 삶과 이별을 함께 나누는 영화수다모임’(https://brunch.co.kr/@dadamoomoo/6)의 두 번째 회차에서 다룬 것입니다.)

영화포스터.jpg 일본 극영화, 이누도 잇신 감독, 2008

이 영화는 지난주에 보았던 <말리와 나>와는 사뭇 다르게 시작한다. 천재만화가로 유명한 아사코는 고양이 사바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새벽에 마감을 마치고 지친 몸으로 돌아간 집에서 사바가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 영화의 시작이다. 사바는 너무 고요하게 누워 있었고, 아사코의 세상은 고요하게 멈춰버린 순간이었다. 아, 고양이와 행복하게 알콩달콩 사는 이야기는 다 어디 두고,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처음부터 고양이를 죽이는 것일까.


고양이와의 이별은 갑자기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아픈 걸 티내지 않는 종의 습성이, 몸집이 작아서 미세한 변화에도 몸에 악영향이 금방 퍼지는 종의 특징이, 그리고 가끔은 고양이의 사소한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람의 무심함이 그런 일을 만든다. 그래서 고양이와 갑작스럽게 이별한 사람이 자책과 후회에 빠져 일상이 뒤흔들리는 경우도 많은 것이다.


6월 21일 고양이 집사들의 영화수다에는 공교롭게도 (나를 포함하여) 여자들만 모였다. 애묘인의 구력도 다 다르고 겪은 마릿수도 다 달랐지만, 저마다 고양이의 죽음에 대한 사연들이 있어서 자책과 후회로 울다가 웃었다. 우리는 모두 눈물을 닦으며 콧물을 훔치며 “누가 보면 우리 다 미친년들인 줄 알겠어요.” 키득거리는 와중에, 해소되지 않았던 응어리가 만져지고 말랑거리며 작아지는 것을 경험했다.


동네 길고양이 구조 현장에 어쩌다 있었는데 정신 차리고 보니 집에 데려오게 되었다는 그녀는 스트릿 출신의 고양이가 몇 년 더 살지 못하고 떠나자 큰 슬픔에 빠졌다. 남자친구가 계산해 준 고양이의 사십구제 다음날이 자신의 생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 그녀는 생일날 깔끔하게 나도 떠나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성인ADHD인 남자친구의 계산이 틀렸다는 것을, 나도 따라 죽어야지 생각했던 날이 사십구제가 아님을 알게 되자, 그 비장한 감정이 다 엉망이 되어서 자신이 아직도 살아 있는 거라고 했다. 문득 커다란 웃음이 터졌다. 아니 ADHD 덕에 한 사람이 살게 되었다니, ADHD가 이렇게 박장대소 할 일이었나?


고양이 집사 경력이 남부럽지 않은, 네 마리를 보낸 후 지금도 다섯 마리와 함께 살고 있는 또 다른 그녀는 안락사를 시킨 경험이 있었다. 동물의 안락사란 죽음과 관련한 매우 복합적인 측면의 경험이어서 인간과 동물의 소통(이 불가능하다는 비극적) 문제는 물론 수의학계의 관행과 같은 현실적인 상황까지 여러 맥락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금 반려동물에 대한 제도를 바꾸고 수의학계의 변화를 촉구하기는 일도 중요하겠지만 무엇보다 반려인과 반려동물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변화시키는 것이 더 빠르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공감대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사람과의 이별은 주변의 위로를 받기 수월하다. 특히 가족의 죽음이 얼마나 큰 감정의 여파를 남기는지는 딱히 말을 안 해도 서로가 알기 때문에, 감정과 일상의 회복에 실질적이고 심리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반려동물과의 이별은 상대적으로 그렇지 않다. 갑자기 맞닥뜨린 반려동물의 죽음에 왜 내가 자책과 후회가 생기는지를 누구에게도 (친한 친구에게도) 말하기 어렵다. 나를 이해하고자 하는 의지로 충만한 착한 친구라 하더라도 그의 이해를 얻기 위해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감정을 세세히 설명해야 하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다.

그래서 펫로스에 대한 감정은 친근한 비반려인보다 초면의 반려인들과 더 깊게 공감할 수 있다. 동질적인 경험과 감정을 겪었기 때문이고, 아직 겪지 않았더라도 상상하기 쉽기 때문이다. 나는 작년 9월 25일 내 고양이를 화장하러 간 화장장에서 전화를 한 통 받았다. 나에게는 중요한 전화였고 전화를 건 그는 나에게 미팅이 가능한 일정을 물었다. 그러나 내 뒤엉킨 머릿속에서 일정을 생각해내기가 너무 힘들었다.


“죄송하지만 제가 고양이 화장시키러 와 있거든요.”

“앗, 죄송합니다. 제가 나중에 다시 전화드릴게요.”


그는 고양이를 화장시키러 와 있는 나의 상태를 단번에 파악했고, 나는 그에게 아주 많이 고마웠다. 그때 “그런데요?” 하는 반응을 만났다면 미팅이고 자시고 다 관두자고 끊어버렸을지도 모른다. 내 일상은 되는 일도 없이 더 나락으로 추락했을지도 모른다.


영화 속 아사코도 “나이 마흔이 된 여자가 고양이 때문에 일도 못하고 쯧쯔” 하는 주변의 걱정을 들으며 호된 시간을 보냈다. 창작 의욕을 잃고 모든 것을 놓아버린 사람처럼, 현실에서 붕 떠 있는 허깨비처럼 살았다. 그러다 우연처럼 필연인듯 다른 새끼 고양이를 만났는데 그 고양이의 이름이 바로 영화 제목의 구구이다. 영화의 아사코와 현실의 나는 다른 점이 있다. 그녀는 천재 만화가라고 불릴 만큼 상상력이 풍부하고 깊은 사고를 만화로 표현해내는 재능을 가졌다. (이 영화는 오시마 유미코의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데, 작가의 실제 경험을 담은 것이라고 한다.)


아사코는 사바와의 이별을 경험하고 구구와의 이별을 상상하면서 동물과 사람 사이의 삶과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뜻밖의 만남을 경험한다. (그 이야기는 <구구는 고양이다> 두 번째 글에서 말하고 싶다. 사실 오늘 글의 제목은 두 번째 글의 포석인 셈이다.) 그 만남 후 아사코는 “너는 나보다 3배 빨리 늙어간다.”며 슬퍼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그리고 창작력을 회복해서 작품을 만들어낸다. 만화가인 그가 만화를 그려낸다는 것은 일상이고, 나도 일상으로 돌아와 사회성 있게 전화로 일정도 척척 잡고 해야 한다. 아사코가 뜻밖의 만남을 가졌다면, 아마도 나는 비슷한 애묘인들과 웃고 울며 떠든 시간이 그 역할을 해주었을 것이다.

뭐 한 번의 만남으로 100% 회복이 완료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공감받는다는 안도감이 회복의 속도를 높여줄 것임은 분명하다. 이 모임을 하러 가는 길은 뭔가 불안했다. 고양이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에 내가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제대로 진행도 하지 못할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모임을 마치고 돌아가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제미나이(Gemini)에게 징얼대지 않고, 누군가 보아주는 눈물을 실컷 뽑아내서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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