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보는 웰다잉
말리는 존과 제니 부부가 신혼 때 입양한 개의 이름이다. 부부는 둘 다 패기충만한 저널리스트로서 세계를 누비며 마약왕을 인터뷰하는, 전쟁 현장을 분석하며 넓은 지면을 가질 수 있는, 그런 영향력 있는 기자가 되고 싶었다. 다만 제니는 결혼과 동시에 아이를 삶의 계획에 포함시켰지만, 존은 그것이 자신의 세계를 가족으로 좁히는 게 될까 봐 걱정한다는 것만 다를 뿐. 그래서 존은 -개든 아이든 여자에게 어필하기 위해 존에게 종종 빌리곤 하는 싱글-친구의 조언에 따라 제니의 관심이 아이에 집중되는 것을 방해하려고 갓난 강아지를 선물한 것이었다.
영화는 입에 들어가는 모든 것을 물어뜯고 삼켜버리는-어떤 것까지 삼켰는지 영화를 보시기를 추천합니다. 이 영화가 코미디로 분류되는 이유를 단박에 아실 수 있습니다- “세계 최악의 말썽꾸러기” 말리가 한 가족과 살아가는 과정을 존의 시선으로 따라가는 이야기이며, 존이 말리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그의 존재의 의미를 알아가면서 자신이 뜻하지도 않게 변화하고 있음을 깨닫는 이야기이다. 그는 이제 자신의 로망이었던 [뉴욕타임즈]로 진출한 친구를 부러워하지만은 않으며, 세 아이들과 말리가 뛰어놀 수 있도록 출퇴근이 힘들어지는 것을 감수하면서 전원주택으로 이사하고, 말리의 이야기를 칼럼으로 쓰며 반려생활란 인간이 동물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동물이 서로 키우는 것이란 걸 조망하는 칼럼니스트가 되었다.
영화수다모임에서는 영화의 몇 장면을 잘라서 준비한 클립들을 보았다. 처음 대면하던 순간에 많은 강아지들 중에서 “너를 고를 수밖에 없었던‘ 특별한 인상에 대해, 유산하고 돌아와 슬퍼하는 제니를 위로하는 말리처럼 반려동물과 교감한다고 느끼게 된 특별한 순간에 대해, 육아에 지쳐 일상의 족쇄처럼 “horrible animal”이라고 욕을 했던 제니의 고달픈 순간처럼 반려생활에서 부딪힌 가장 큰 장벽에 대해, 그리고 그가 늙고 쇠약해져서 마지막을 준비해야 할 때 존이 말리에게 “우리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지? 너는 세계 최악의 말썽꾸러기가 아니라 가장 훌륭한 개라는 걸 기억해”라고 말한 것처럼 그에게 해주고 싶던/싶은 말들에 대해, 이렇게 일생에 걸친 대장정의 여러 변곡점들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었다. 특히 나는 고양이 집사였던지라 ‘개와 함께 살아가고 변해가고 또 죽어가는’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었다. (애견인 혹은 반려인에게 이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장면 장면마다 나와 내 반려동물 사이의 스토리를 꺼내오는 많은 문고리가 숨어 있다.)
우리가 나눴던 이야기 중에서 두 가지를 소개하고 싶다. 하나는 젊은 여자가 대형견을 산책시킬 때 간혹 듣는다는 말이었다. 개를 키울 게 아니라 애를 키워야지...라니. 그녀는 큰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져서 개에게서 받은 상처가 아니라 개와 같이 있을 때 사람들에게서 받은 상처에 대해 더 열심히 말했다. 일부러 다가와서 개를 자극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일상의 많은 부분을 개에 맞춰 바꿀 수 밖에 없었다고. 그런 외부의 ‘공격’을 둘이 겪어내야 했기 때문에 그녀와 개는 더 큰 유대감을 갖게 된 건지도 모른다. 그녀는 영화 속 안락사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티슈를 찾으며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었고, 그를 보낼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만 해도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영화 속 안락사 장면은 꽤 길었다. 병원과 집을 교차편집하면서 말리의 마지막 숨이 멎을 때까지, 그리고 그 시간을 견뎌야 하는 사람들의 감정을 세밀하게 보여주었다. 사실 안락사는 동물의 죽음을 사람이 결정해야 하는 것이라서 이렇게 해도 후회, 저렇게 해도 후회가 남기 일쑤다. 나는 적어도 마지막 순간을 공유할 수 있는 것은 좋다고 말했다. 그것은 마치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마지막 숨을 거두고 싶은 사람의 소망과도 같을 것이다. 존이 말리에게 계속 말을 해주는 것, 집에서 기다리는 제니와 아이들이 말리의 칼럼이나 말리와 함께 찍었던 영상들을 보면서 말리를 기억하는 것처럼, 이별을 막을 수 없으면 최선의 이별을 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야기를 아무 말 없이 듣던 이가 자신이 겪은 안락사 경험에 대해, 이제 그만 모임을 파할까 생각하던 즈음에, 어렵사리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예전에 안락사로 반려견을 보낸 후 들개를 구조해서 키우느라 서울을 떠나 한적한 파주로 이사를 갔다고 했고, 안락사에 찬성한다고 하면 비난을 받을지도 모르지만... 하면서 말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은 비난이나 찬반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에 모임의 모두가 동의했다. 동물의 안락사가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동물의 생명을 가벼이 여긴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반려생활에서 죽음으로 인한 이별은 사람의 죽음과는 또 다른 국면-소통-의 일이 생기기 때문에 죽기 전에 이별을 위한 여러 가지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에도 동의했다.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할 수 있을까?
어느 드라마에서 먼저 간 반려동물이 내가 저승의 입구를 지날 때 마중 나온다는 이야기를 다룬 적이 있다. 그 말에 많은 이들이 울었다. 얼마 전 또 다른 드라마에서 사람으로 환생한 반려동물과 재회하는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다. 대중문화에서 이런 이야기들이 늘어난다는 것은 반려생활에서 감정의 동요를 크게 일으키는 동물의 ‘죽음’이 사람의 삶에도 중요한 사건이 되었다는 말이다. 반려인들의 웰다잉에는 반려동물의 죽음을 준비하는 일이 아주 큰 비중을 차지할 것이며, 그것은 반려인들간에 많은 소통을 통해 구체적인 방법을 찾아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것이 또한 이 모임의 장기적인 목적이기도 했다.)
말리는 죽어서 마당에 묻혔고 반려견을 죽어서 팔뚝에 타투로 묻혔다. 그리고 나는 반려인들의 웰다잉을 도모하는 프로그램을 계속 하고 싶다. 내 경험 안에만 묻혀 있지 않고 더 큰 방법들을 찾아낼 수 있을 것 같다. 언젠가 먼저 간 내 고양이들을 다시 만날 때 “있잖아, 들어봐. 내가 이런 거를 했는데” 하며 달뜬 목소리로 말해줄 수 있을 것 같다. 나 잘했지? 하면서 으스대고 싶다.
(이 영화는 6월 14일 “우리동생”(우리동물병원생명사회적협동조합)과 함께 한 ‘반려인의 삶과 이별을 함께 나누는 영화수다모임’(https://brunch.co.kr/@dadamoomoo/6)의 첫 번째 회차에서 다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