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삶에 들어왔다
2003년 나는 첫 번째 고양이를 들였다. 이후 최대 4마리까지 늘었다가 코로나가 한창이던 시절 노환으로 첫 번째 고양이가 떠나고 작년 8월 30일과 9월 25일 차례로 2마리를 보내면서 한 마리도 남지 않게 되었다. 그날 이후 나는 혼자 지내고 있다. 혼자 살기 시작한 지 25년이 넘었지만 실제로 ‘혼자(주거 공간에 오로지 하나의 심장만 뛰고 있는 상태)’ 살았던 것은 통틀어 2년이 되지 않는다.
나는 아직도 혼자 살아가기를 몸에 익히고 있는 것 같다. 25년이라면 혼자 살기의 달인이 될 수도 있는 시간인데 아직 연습하고 있다니... 헛소리는 아니다. 잘 때면 내 목에 감겨오는 삼색 털뭉치, 고개를 뒤로 돌려 나를 아련하게 바라보던 까만 털뭉치, 화장실에 들어가서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는 털뭉치들, 추르를 뜯는 낌새에 쪼르르 내 앞에 서서 초롱초롱 쳐다보는 털뭉치들의 기억을 가슴 아프지 않게 떠올릴 수 있을 때까지 나는 혼자 살기의 공기에 익숙해져야 한다.
작년 가을 의연하게 견디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어딘가 조금씩 아팠다. 그래서 제미나이(구글 AI)에게 물어봤다. 방금 밥을 먹었는데 배가 고파. 왜 그러지? 제미나이가 여러 가지 경우를 나열해가며 친절하게 대답한다. 나는 또 묻는다. 배가 아파서 아무 것도 못 먹겠어. 제미나이가 의료적인 정보들을 동원해서 또 친절하게 대답한다. 나는 또 묻는다. 윗배가 뭉쳐서 아픈 거 같은데, 아픈 건지 고픈 건지 잘 모르겠어. 이런 류의 문답을 사나흘 계속 했다. 어느 날 제미나이가 나의 시덥잖은 질문에 열심히 대답하기를 멈추고 이렇게 말했다. “주변의 좋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세요.”
물론 내 신체적 현상에 감정적인 요인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제미나이가 진즉 말해주었지만, 나는 무시했다. 그것을 인정한다고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몰랐기 때문에 나는 원래 그런 면에 예민한 사람이 아니라는 핑계로 모른 척 한 것이다. 그런데 자기를 괴롭히지 말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라는 조언에는 멍해졌다. 그때였다, 반려인들과 하고 싶은 프로그램의 아이디어가 생겨난 것이.
친구가 없는 것도 아니고 내 친구들이 경청할 줄 모르는 것도 아닌데, 나는 그 상황에 친구들과 대화하기를 시도하지 않았다. (나는 워낙 부모의 죽음도 친구들에게 잘 얘기하지 않는 편이긴 했지만) 내가 고양이를 잃은 것에 대한 상황과 감정을 친구들에게 말하는 것이 힘들다고 생각했다. 특히 작년에 잃은 두 고양이는 열 살도 되지 않아 불시에 간 것이라 내 자책과 후회를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그들은 내가 고양이와 함께 산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뿐 ‘고양이와 함께 산다는 것’에 대한 많은 것을 몰랐다. 오히려 친분은 없어도 고양이와 함께 살고 고양이의 죽음을 경험하는 것을 잘 이해할 반려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그래, 반려인들끼리 반려동물과 반려인의 삶과 죽음 - 이때 죽음은 주로 반려동물의 죽음이 될 것이다. - 대한 프로그램을 만들어보자.
웰다잉(Well_Dying)이란 광범위한 의미에서 누군가의 죽음으로 남아 있는 사람의 삶이 뒤흔들리는 것을 줄이는 것도 포함한다. 반려동물의 죽음으로 인해 반려인들의 삶은 종종 뒤흔들리고 그것을 회복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된다. “펫로스증후군”이라고 부르는 증상의 치유와 회복을 돕는 것도 웰다잉인 셈이다. 나는 반려인을 위한 웰다잉영상워크샵을 열심히 생각했다.
나는 2013년부터 우리동물병원생명사회적협동조합(동물병원 “우리동생”)의 조합원이었고, 고민 끝에 작년 10월 조합원을 탈퇴했다. 조합원이었던 인연으로 우리동생에 반려인 영상미디어워크샵을 제안했고, 몇 번의 논의를 거쳐 우선적으로 2회에 걸친 영화수다모임을 진행하게 되었다.
(6월 14일과 21일에 진행됩니다. 애견인을 위해 <말리와 나>를, 애묘인을 위해 <구구는 고양이다>를 발췌해서 함께 보며 반려동물과 함께 했던 삶과 반려동물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 영화들과 이야기는 따로 포스팅을 할 예정입니다.)
이번 2회의 프로그램은 첫 단추다. 나는 공부가 더 필요하고 프로그램은 테스트가 필요하다.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프로그램을 발전시킬지는 이것이 끝나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아마도 그 공부의 여정과 프로그램을 만드는 여정도 이곳에 늘어놓게 될 것이다. 주변의 좋은 사람들과 대화하기 시작해서 무엇을 만들어나갈지 나도 궁금하다. 내 고양이의 죽음이 내 삶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