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적으로 군인의 일과는 08:30~17:30이다. 나는 08:00 경에 출근하여 금일 업무를 파악하고 하루를 준비하는 시간을 보내곤 한다. 쌓인 메일을 확인하고 급하게 처리해야 할 것과 나중에 처리해도 되는 일을 구분한다. 급하게 처리해야 하는 일은 대대장님의 지시 사항이거나 상급 부대에서 급한 건으로 연락이 온 것, 혹은 타 부서/부대 협조 사항 등이다. 왜냐하면 이런 것들은 일과시간 내 빠르게 해결해야 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일과시간 내 해결하지 못할 경우 퇴근 이후에 연락드려야 하는데 이는 정말 지양해야 할 것이다. 당신이 퇴근 후 지친 상태에서 집에서 쉬고 있는데 갑자기 상대방이이 전화하곤 업무 관련된 내용을 말한다면 기분이 어떻겠는가? 물론 불가피한 상황이라면 어쩔 수 없겠지만 상대방을 배려한다면 지양해야 하는 것임은 분명하다. 이 외 나 혼자 여유롭게 처리해도 될 것들은 야근을 통해서 해결하거나 당직근무 때 처리하곤 한다.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은 다음과 같다. 예를 들어 교육을 위해 강사님을 초빙하고 할당받은 예산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교육 장소를 구해야 하고 통신장비 설치를 위해 통신소대에 부탁해야 한다. 또 상급 부대 예산 담당자와 지속적으로 연락하여 관련 서류를 준비하고 공문을 처리해야 한다. 교육 장소 청소 및 부족한 부분에 대해 병력 지원을 받아야 하며 미리미리 행사장 상태를 확인하고 준비해야 한다. 최소 3~4개 이상의 부서와 소통을 해야 하므로 가장 최우선으로 되어야 할 업무이다. 혹은 훈련 이후 유공자를 선정하여 상급 부대에 보고해야 할 일도 많다. 대대장님께서는 간부들의 한 해 동안의 상훈내역(상과 훈장을 수여한 내역)을 고려하셔야 하므로 이를 빠르게 종합해서 대대장님께 보고드려야 한다. 보통 유공자 선정에 대한 기한은 하루 정도로 매우 촉박한 경우가 많다. 대대장님의 시간 계획은 업무에 가장 우선시되어야 할 부분이다.
이렇게 미리 계획되어 있든 갑자기 생긴 일이든 일의 우선순위가 가장 중요하다. 먼저 해야 할 일을 처리하고 나중에 해야 할 일을 천천히 한다면 실수를 줄일 수 있다.
대대급 인사 담당자의 업무는 크게 인사, 복지, 재정, 의무, 법무로 나눌 수 있다. 상급 부대로 갈수록 병과와 직책에 따른 전문적인 업무를 수행하지만, 말단 대대의 경우 실무자 한 명이 얕고 넓은 분야를 커버해야 한다.
- 인사 : 휴가 관리, 인사 명령 작성(보직, 진급 등), 의무 시행 교육 관리(성인지, 인권, 인성, 자살 예방 교육 등), 사고 예방 활동(병 심리검사 실시), 전문 상담관 병영상담 관리, 행사기획/진행(각종 대외기관 행사, 진급식, 이취임식, 국기 게양식, 체육대회 등), 상훈 업무(표창장 제작, 상훈 건의), 당직 근무표 작성, 기록 변경 건의, 게시판 관리 등
- 복지 : 복지제도 홍보, 대상자 파악 및 신청 절차 처리, 간부 숙소 관리 등
- 재정 : 운영비 영수증 관리, 참모 부서 운영비 분배, 상근예비역 교통비/중식비 지급, 초과근무 관련 업무 담당 등
- 의무 : 병 건강검진 시행 관리, 진료목적 청원 휴가 심의 처리, 격오지 위탁 진료비 청구 등
- 법무 : 징계 처리, 군기교육대 입소 처리 등
대대장님께서는 인사업무는 서비스업이라고 하셨다. 모든 사람에게 친절히 응대하고 전화를 잘 받으라고 조언해 주셨다. 부대원의 군 생활에 중요한 보직, 진급, 기록 변경 등에 대한 업무도 많고 용사들의 복지에 대한 부분도 책임지고 있으니 부대 운영을 서포트하는 역할에 대해 책임을 다하라고 하셨다. 처음에는 이해가 되질 않았다. 나에게 걸려 오는 수많은 전화 중 대부분은 불만 섞인 목소리로 성인지 교육은 어떻게 이수하는 것이냐, 왜 초과근무가 입력이 안 되냐, 이런 자격증을 땄는데 어디에 도움이 되냐는 등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사사건건들에 응대하고 상급 부대에 문의하는 일도 나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였다.
우리 대대는 담당 지역의 예비군훈련을 받는 부대였다. 예비군훈련이란 전역한 우리 지역의 예비군들이 부대에 들어와서 훈련을 수료하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 부대 내비게이션상의 이름은 ○○ 예비군훈련장이었다. 하루 평균 200~300명의 예비군이 훈련에 입소하였으며 이 모든 사람이 사격, 수류탄, 화생방, 검문소 운용 등 여러 가지 관문을 통과한다. 이 많은 사람들이 이동하고 훈련을 수료하고 밥을 먹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훈련장에 위치하고 훈련을 도와야 한다. 그래서 예비군훈련이 있는 날이면 간부, 용사 할 것 없이 대대 전 병력이 예비군훈련에 투입되었다.
나는 주차장 주차 안내, 사격 훈련장 안전 통제, 총기 상하차, 훈련장 청소 등 보직과 관계없는 정말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였으며 이 외에도 대대 재정 업무 담당자로서 나에게 가장 중요한 업무는 예비군들에게 교통비/중식비를 지급하는 일이었다. 입소한 예비군의 신상정보가 확인되면 예비군이 수기로 작성하여 제출한 계좌번호를 엑셀 양식에 재입력하여 계좌 오류 여부를 검증한 후 훈련 이수 시간, 중식 신청 여부, 동명이인 여부 등을 확인하여 최종 지급액을 산출하는 일이다. 한번은 엑셀 파일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셀이 밀리면서 30여 명의 돈을 더 받은 예비군과 덜 받은 예비군이 발생하는 대참사가 생겼다. 내가 생각한 해결 방법은 돈을 더 받은 예비군에게 전화하여 돈을 회수 받고 돈을 덜 받은 예비군에게 입금을 해주는 방법뿐이었다. 그래서 해당 예비군들에게 상황을 정리한 단체 문자를 발송하였고 사과하며 돈을 회수 받았다. 예비군훈련은 23년 기준으로 없는 날보다 있는 날이 훨씬 많았을 정도로 대대의 가장 중요한 과업이었다. 하루 평균 약 200~300명의 예비군이 입소하였으며, 예비군훈련 때문에 책상에 앉아 있을 시간을 빼앗겨 야근과 주말 출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 점이 나를 정말 힘들게 했다.
“당직사령은 일과 이후 대대장 대리 임무 수행이야.” 당직근무 관련 교육을 받을 때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군부대는 언제 어떤 상황에서든 대비하기 위해 24시간 근무를 선다. 즉, 누군가는 남아서 부대를 지키고 있어야 하며, 그 당사자인 당직사령은 근무 중에 발생한 모든 일을 책임져야 한다. 보통 상급 부대의 경우 당직사령, 당직사관, 당직부관이 근무를 서는데, 우리 대대의 경우 작은 부대였기 때문에 당직사령 한 명만 근무를 섰다. 당직근무에 투입하게 되면 출타 병력(휴가, 외출, 외박) 복귀 현황 파악, 석식 급양 감독, 기타 근무 간 중요하게 파악해야 할 부분을 미리 파악한다. 저녁점호를 주관하며 점호 간 환자 파악, 생활관 정리 상태, 위생 상태 감독, 병력 특이 사항 파악 등을 하게 된다. 이후 순찰을 하고 야간 상황에 대비하여 근무를 서다가 다음 날 오전에 퇴근한다. 나의 경우 한 달에 2~3번 당직근무에 투입되었고 24년 기준 평일 당직(16:00~다음날 09:00)은 2만 원, 주말 당직(09:00~다음날 09:00)은 4만 원을 받았다. 당직근무 간 해야 할 일은 정말 많지만 가장 중요한 일은 우울증이 있거나 자살 위험성이 있는 병사가 누구인지 파악하는 것이다. 군에는 병사들의 신상기록을 파악할 수 있는 체계가 있는데 이 체계를 통해 누가 중점 관리의 대상인지 알 수 있다. 자살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당직 근무자가 해당 인원의 상태를 직접 확인하고 상황 발생 시 가장 빠른 조치를 취하는 것 역시 중요한 업무 중 하나이다.
당직근무 시 정말 다양한 사건/사고가 터진다. 기억에 남는 한 가지 일이 있다. 한 병사가 밤늦은 시간에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주의를 주기 위해 따라갔다. 그 용사는 사무실 불도 켜지 않은 채 사무실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 내가 따라 들어가 사무실 불을 켜고 뭐 하고 있냐고 물었더니 당황하며 두고 간 물건이 있어서 찾고 있었다며 횡설수설하다가 생활관으로 들어갔다. 불을 끄고 물건을 찾고 있었다는 게 이상하여 주변을 잠시 보았는데 바닥 구석에서 핸드폰을 발견하였다. 부대에서 용사들은 17:30~21:00 핸드폰을 사용할 수 있다. 이후에는 핸드폰을 제출하여 사용할 수 없다. 이 용사는 휴가 중에 핸드폰을 하나 더 반입하여 밤늦은 시간 몰래몰래 핸드폰을 사용하고 있었다고 진술하였다. 결국 정보기기 반입에 대한 규정 위반으로 징계처분이 이루어졌다.
나름 즐거웠던 추억도 있는데 22년 카타르 월드컵 당시 당직을 서는데 대대장님께서 모든 대원이 함께 축구를 볼 수 있도록 허락해 주셨다. 그날 보았던 경기가 내가 태어나서 보았던 그 어떤 축구 경기보다 재미있었다. 당시에 나는 축구에 관심이 없었고 잘 몰랐는데 용사들과 카타르 월드컵을 같이 보며 축구에 관심이 생겼고 이후 K리그까지 챙겨보는 사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