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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은주 Oct 25. 2024

고요히 지나가도록

(그림책: 「미움」)

   ‘넌 왜 그렇게 속이 좁니?’ 나를 향한 비난의 말이 마음 한가운데 콕 박힌다. 길을 걷다 좁은 통로 앞에서 마음이 뒤틀린다. 서점에서 시집을 들춰보려다 길쭉한 판형에 화살촉 같던 목소리가 되살아난다. 구두의 좁은 입구로 비집어 넣은 발이 오늘따라 너무 아프다. 뱉지도 삼키지도 못하는 마음의 불편한 걸리적거림. 시원하게 내쳐버리거나 과감하게 꿀꺽 삼켜버리거나, 이도 저도 못한다면 잊기라도 해진다면 좋을 것을 도통 사람을 가만히 놔두질 않는다. 철퍼덕 들러붙어 어디를 가든 무슨 생각을 하든 찐득거림이 불편한 마음을 각성시킨다. 소화되지 않는 거북스러움. 미움이라는 감정이 서서히 마음을 장악해간다.




   심술궂은 표정의 아이가 등장한다. 처음부터 심술궂지는 않았을 것이다. 표지그림으로 추론해 보건대 목에 걸린 생선가시가 원인으로 보인다. ‘꼴도 보기 싫어!’라고 적힌 말풍선이 생선가시와 연결된다. 아이는 평화로웠다. 아이를 그리고 있는 파란색 크레파스가 평화로웠을 아이의 일상을 표현하는 듯하다. 빨간색 이물질이 몸 안에 박히기 전까지는 말이다. 비난의 말이 빨강으로 표현되면서 마음에 생채기를 내는 공감각의 이미지를 불러일으킨다. 상처받은 마음은 미움이라는 부정적 감정으로 자신을 방어하면서 검정의 장막을 배경으로 드리운다.


   분노를 불처럼 뿜는 빨간 얼굴의 아이가 이야기 첫 장면이다. 표지그림에 등장한 아이의 친구이다. 아이는 난생처음 이 친구로부터 알 수 없는 말을 듣는다. 너 같은 거 꼴도 보기 싫단다. 이유를 설명해 주지 않으니 답답하다. 처음엔 멍해지다가 점차 눈물이 쏟아질 것처럼 슬프다가 왜 자신이 그런 말을 들어야 하는지 화가 난다. 아이는 증폭되는 부정의 감정을 제어하기 어렵다. 결국 상대에게 그 마음을 반향 시키기로 한다. ‘나도 너를 미워하기로 했어.’


   똑같이 돌려주면 너와 나 사이가 마음의 등거리로 공평해질 줄 알았는데, 사람의 감정은 받은 만큼 돌려주는 식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었다. 밥을 먹을 때는 가시처럼 목에 걸리고, 숙제할 때는 생각 사이로 비집고 들어온다. 놀이를 할 때도 목욕을 할 때도 내게 퍼붓던 친구의 불같던 얼굴과 말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심지어 잠을 잘 때 끌어안은 토끼 인형조차 ‘꼴 보기 싫어!’라고 말하던 친구의 얼굴이 겹쳐서 쉽게 잠 못 들고 눈을 부릅뜨게 된다. 꿈속에서도 놓아주지 않는 ‘꼴 보기 싫어!’의 넝쿨에 갇혀 아이는 쉬지 않고 미움으로 대응한다. 넝쿨이 자라고 자라 아이의 발목을 휘감고 파리지옥으로 성장하여 아이를 잡아먹을 듯이 위협한다. 친구의 얼굴과 내뱉던 말이 또렷하고 생생할수록 아이는 더 기를 쓰고 감정으로 치받는다. 마침내 아이의 마음엔 미움이 가득 들어찬다. 미움의 감옥에 갇혀버린 것이다. 그런데 창살을 움켜잡고 있는 아이의 표정이 허허롭다.


   아이는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시원하지 않다고. 나를 싫어하는 친구에게 똑같이 미워하는 마음으로 응수했을 뿐인데 진창의 늪에 빠진 것처럼 괴롭고 허탈하다. 긁으면 덧나는 부스럼처럼 북돋울수록 마음이 더 버거워졌던 것은 아닐까. 오히려 가만히 기다리면 사라지게 되는 감정이었던 것일까. 발목에 묶인 족쇄를 뒤돌아보며 아이는 싫은 사람을 자꾸 떠올리면서 괴로워하는 일을 그만두기로 한다. ‘나는... 너를 미워하지 않기로 했어.’ 아이는 여전히 빨간 얼굴을 하고 있는 친구에게 이 말을 던지고는 총총히 사라진다. 족쇄를 떼어버리고 뛰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이 가볍고 경쾌하다. 이제 족쇄는 친구의 발목에만 아이의 얼굴 모양으로 채워져 있다. 안경 너머 보이지 않는 눈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아이처럼 족쇄를 떼어낼 것인지, 며칠 더 끌고 다닐 것인지 고민하고 있는 것일까. 마지막 장면의 그림이다.




   잔잔하던 마음에 파문을 던진 누군가의 말과 행동이 나를 분노하게 한다. 상대의 말을 수긍하고 나를 반성하기엔 순간 위축되는 감정 뒤로 반감이 치솟는다. 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 호의를 베풀기 힘들고, 나를 대놓고 싫어하는 사람에게 나 역시 싫은 감정을 감추기 어렵다. 그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부정적인 감정은 마음을 넘어 몸까지도 지치게 만든다. 잘 알면서도 누군가를 싫어하고 미워하는 감정을 가지지 않기란 참 많이 힘들다. 누군가 나를 공격하지만 않는다면 일생 평화로운 마음으로 지낼 수 있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나 또한 상대의 마음을 공격하는 가해자가 될 수 있음을 깨달은 건 그 생각으로부터 먼 뒷날이 아니었다. 실상 미워하고 미움을 받는 건, 상대도 나도 불편한 걸리적거림으로 마음이 절고, 귀찮은 찐득임으로 마음이 지체되는 괴로움의 상황이다.


   관계에서 빈번하게 벌어지는 마음의 치고받음에 대해 이 그림책은 말하고 있다. 상세하게는 미움이라는 감정을 관리하는 방법이다. 일상을 온통 잠식하는 감정의 분탕질에 휘말리는 대신 고요하게 지나가도록 그저 놓아두라고 말한다. 남을 미워하는 일에 마음을 쓰고 에너지를 소비하느라 소중한 일상을 간수하지 못한다면 결국 내 손해이고 내 어리석음을 깨닫게 될 뿐이다. 그러나 역시 쉽지 않은 일이다. 분출하는 미움의 감정을 억누르는 것은 아마도 화산 폭발을 정지시키는 일만큼 어렵게 느껴질 것이다. 억누르지는 말되 일상을 장악하도록 하지도 말자.


   미워해 본 사람은 안다. 나를 미워하는 그 사람이 지금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미움의 감정에 휩싸여 일상이 절룩거리고 있음을. 그림책의 아이가 묻는다. ‘너는 지금 나를 미워하고 있을까?’ 빨간 얼굴 아이의 발목에 채워진 족쇄에는 아이의 얼굴이 평화롭다. 미움이 고요히 지나가도록 내버려둔 아이의 표정이다. 친구가 어떤 마음의 결정을 내릴지 아이는 상관하지 않는다.




   이 그림책은 어린아이가 그린 것 같은 투박한 크레파스 그림이 두 아이가 대치하는 감정의 표현과 잘 어우러지면서 정겹게 느껴진다. 장면 중, 아이가 세로줄 무늬 옷을 입고 창살을 잡고 있는 그림은 영화 ‘빠삐용’을 연상시키면서 죄수와 감옥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미움이라는 감정의 감옥에 갇혔음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작가의 숨은 메시지이다. 누구에게나 있는 감정, 따라서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모두에게 유용한 마음 다스림 그림책으로 읽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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