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착해야 하나요?」)
‘착해야 하나요?’ 도발적인 물음에 잠시 주춤해진다. 장난기 많은 아이의 의뭉스러운 물음 같기도 하고, 어떤 답을 들려줄지 어른의 마음을 떠보는 것 같기도 하다. 제목 위로 시선을 이동하면 혀를 내밀고 있는 여자아이와 딱 눈이 마주친다. 보란 듯이 착하지 않은 행동을 하고 있는 아이. 설거지 중인 엄마는 아이의 반대편으로 시선을 두고 있다. 아이의 행동을 외면하려는 것일까. 아니면, 엄마의 시선이 다른 곳을 향할 때 슬쩍 등장하여 깜짝 장난을 치고 사라지려는 순간인 것일까. 여러모로 궁금증이 기웃거리는 표지이다.
설거지 중인 엄마의 그림이 본문으로 이어지고, ‘유진 크라우스는 착한 아이였어요.’라는 글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다음 장을 펼치면 유진이라는 남자아이가 등장하고, 착한 아이로서의 행적이 그림과 글로 나타난다. 가장 싫어하는 채소인 브로콜리를 남김없이 먹고, 화장실에 다녀올 때마다 비누로 손을 씻으며, 떼를 쓰지 않고 잠자리에 들고, 토끼장 청소도 빠지지 않는다. 번갈아 가며 청소하기로 한 동생 제시는 늘 깜빡 잊는데도 말이다. 이쯤에서 표지의 여자아이가 제시였음이 밝혀진다. 이어지는 이야기에서 동생 제시는 착한 아이가 아니라고 선을 긋고 있으며, 그림 속 제시의 행동들도 유진과는 정반대이다. 그런데 유진이가 ‘착한 아이였다’는 과거형의 표현이 마음에 거슬린다.
토끼가 뛰어놀 수 있도록 토끼장을 청소하는 일 말고는 그닥 하고 싶지 않은 일도 묵묵히 참아가며 해내던 유진이다. 그런 유진에게 부모님은 착한 아이 배지를 달아주며 유진 스스로도 그 사실을 늘 기억하도록 한다. 착한 아이 인증인 셈이다. 그런데 유진의 마음속에 불만이 싹트기 시작한다. 동생 제시는 브로콜리를 먹지 않아도, 밤늦게 깨어 있거나 초콜릿 과자를 맘껏 먹어도 어른들의 제지를 받지 않는다. 착한 아이가 아니기 때문에 착한 행동을 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둘러대면서 어른들은 체념이나 포기로 제시의 나쁜 행동을 간과한다. 그러면서 착한 아이 인증을 받은 유진이 착한 행동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긴다. 유진은 생각한다. ‘착한 아이가 되어 봤자 좋을 게 뭐람?’
‘착해야 하나요?’ 이 물음은 유진이 던지는 궁금증이다. 착한 아이로 산다는 건 참아야 할 것, 지켜야 할 것투성이다. 착한 아이 배지는 자랑거리가 될 수는 있을지언정 뿌듯한 보상으로는 큰 의미가 없다. 오히려 배지를 다는 순간, 착한 아이가 아닌 행동은 절대 하면 안 된다는 올무에 갇힌다. 착한 아이여서 좋은 점이 없다면 나쁜 아이가 되어도 상관없을 것 같다. 아니, 그동안 참아왔던 것들을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 나쁜 아이가 되는 편이 훨씬 나을 것 같다. 유진은 착한 아이 배지를 떼어내 버린다.
이 그림책에서 화자는 객관적 서술자로서 이야기를 전개하는 한편, 위치를 바꾸어 그림책 밖에서 이야기를 부연 설명하거나 독자의 생각을 묻기도 한다. 글 텍스트 내에서 이는 검정과 빨간색으로 구분되며 주로 그림 하단에 배치된 빨간색 글이 매체 밖 화자의 목소리이다. 독자는 이 목소리를 통해 이야기의 세부적인 내용을 확인하고, 또 목소리가 던지는 물음에는 “그러게요.”라는 대답을 웅얼거리게 된다. 착한 아이의 딜레마에 빠진 유진의 이야기속에 더욱 몰입하도록 하는 장치이자 작가의 전략이다.
착한 아이가 되어 봤자 좋을 것이 없다는 유진의 생각 아래에는 ‘아마 여러분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거예요.’라며 독자의 공감을 확인하는 목소리가 달려있다. 배지를 떼어 버린 후, 브로콜리를 먹지 않고, 손을 씻지 않고, 토끼장 청소를 하지 않은 유진의 행동 아래에는 ‘왜 꼭 해야 하지요?’라며 독자에게 착한 행동의 의미를 묻는다. 적극적인 상호작용을 시도하는 화자의 목소리로 인해 독자는 유진의 행동에 더욱 집중하고 나름의 생각에 골몰하게 된다.
나쁜 아이가 되기로 한 유진은 불만이 사라졌을까. 사라진 불만 대신 체한 듯 답답함과 좋지 않은 기분이 들어앉는다. 방치한 토끼장은 토끼가 뛰어놀지 못할 정도로 지저분해져 있다. 착한 행동 목록 중, 토끼장 청소만큼은 유진이 기꺼이 하던 일이었다. 나쁜 아이가 되었다고 해서 토끼장 청소를 안 할 이유는 없다, 깨끗해진 토끼장과 뛰어노는 토끼가 유진의 답답한 마음을 조금은 위로해주는 듯싶다. 대신 청소해주어 고마웠다는 제시의 말에 “착하다는 말을 듣고 싶어서 청소한 거 아니야, 토끼가 뛰어놀라고 그런 거야.”라고 대꾸하는 유진.
착한 아이여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로 사람들이 생각한다면 그 일을 흔쾌히 여기는 개인의 자발적 선택과 과정은 묻히게 된다. 착한 아이라는 인정이 아니어도, 착한 행동을 하는 아이들이 많다. 착한 행동이 착한 아이의 의무로 부과되어 의도와 자발성을 들여다보지 못한다면 아이는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 어떤 의미도 찾을 수 없다. 이때 아이에게 착한 행동은 의무를 넘어 책임으로까지 느껴진다.
유진은 나쁜 아이가 된 시점에서 착한 행동인 토끼장 청소를 통해 그 행동의 의미를 이해하게 된다. ‘착한 아이라고 해서 늘 착할 수만은 없어. 그래도 착한 일을 하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아.’ 자신에게 부과된 착한 아이라는 인증과 착한 행동과의 사이에서 유진은 자신이 드러나는 방식을 선택한다. 착한 아이니까 브로콜리를 먹어야 하고, 착한 아이가 아니라서 안 먹는 거라는 부모님의 이야기에 “우린 착한 아이가 아니에요.”라고 결연히 말한다. 이에 “나쁜 아이도 아니고요.”라고 덧붙이는 동생 제시. 그림책 밖 화자는 ‘그래요, 시키는 대로만 하는 착한 아이 노릇은 그만둬요.’라며 유진과 제시를 응원한다.
이 그림책은 그림이 감각적이다. 작가 특유의 콜라주 기법을 이용한 그림으로 인물의 옷과 배경의 패턴 표현에서 디자인적 요소를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인물의 표정이 장난기 가득하면서도 사뭇 진지하게 표현되었다. 이야기는 어른들에 의해 착한 아이, 나쁜 아이로 규정지어지고, 행동의 목록이 정해지는 것에 대해 두 아이가 의문을 제기하면서 전개된다. 착한 아이와 나쁜 아이의 양극에서 아이들은 혼란스럽다. 착한 아이니까 착한 행동을 해야 하는 것인지, 착한 행동을 해서 착한 아이인 것인지 그 모호함을 뚫고 적극적으로 질문한다. ‘착해야 하나요?’.... 이 질문에 ‘그럼, 당연하지’라고 답을 한다면 아이들은 다시 한번 물어올 것이다. ‘왜 착해야 하나요?’... 이 질문에 다정하고 성실하게 답해 줄 수 있는 어른인지 스스로 돌아보는 그림책 읽기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