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난 커서 어른이 되면 말이야」)
꼬꼬마 시절에는 할 수 없는 것이 너무 많다. 해선 안 되는 행동, 먹으면 안 되는 음식, 가선 안 되는 장소, 보면 안 되는 영화, 들어선 안 되는 말 등... 안 된다고 하면 더 호기심이 생기는 게 인지상정이다. 이 모든 걸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때가 언제일까. 아이가 바라보는 어른은 키가 크고 힘이 세다. 나보다 아는 것이 많으며 웬만한 문제는 바로 해결할 수 있다. 돈을 벌 수 있고 그 돈을 자유롭게 쓰는 것이 가능하다. 아이들은 무제한의 조건을 가진 존재로 어른을 바라본다(물론 환경에 따라 어른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가진 아이도 있겠지만). 아이들은 그래서 어른을 꿈꾼다. 어른이 된 나를 기대한다.
제약으로 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꿈을 꾸기도 하지만, 아이들은 타고난 상상력으로 어른에 대한 꿈을 꾼다. 책이나 미디어 등의 매체를 통해서, 만났던 인상깊은 사람들을 통해서, 자연과 함께 어울리는 경험을 통해서 아이들은 세상에 대한 인식의 범위를 넓혀간다. 마음을 일렁이게 하는 것과 대면했을 때, 곧장 상상의 날개를 펴들고 원하는 시간과 장소로 날아갈 수 있는 것도 아이들의 특권이다. 그곳에서 몇 시간씩 되고픈 것, 하고픈 일을 실컷 즐기고서 저녁밥 때 무렵 돌아올 즈음엔 마음이 충만해져 있다. 그리곤 생각한다. ‘진짜 어른이 되면 이 모든 걸 진짜로 다 할 거야!“라고.
영화에 나온 말 탄 사람이 멋져 보여 어른이 되면 카우보이가 되고 싶다. 말을 탄 나를 상상하니 맹수인 호랑이도 겁날 것 없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호랑이 사냥꾼도 되어보지 뭐. 호랑이를 상상하니 따라오는 동물들이 눈에 그려진다. 그런데 캥거루 주머니가 고장 나면? 펭귄이 감기에 걸려 춥다고 하면? 거북이 등딱지가 깨지면? 꽃게 다리가 부러지면? 뜬금없이 이어지는 걱정에 수의사가 되기로 한다. 마침 눈에 들어오는 멋진 탱크를 보고 있자니 돌연 탱크를 모는 사람이 되고 싶다. 차라면 뭐든 자신 있다. 그럼, 우리 학교 스쿨버스도 몰아 볼까?
황금 왕관을 쓰고 바닥을 쓸 만큼 넓은 폭의 드레스를 입은 공주가 되고 싶다. 하지만 공주로 우아하게 살고 싶지만은 않다. 비행기를 몰고 하늘도 날고 싶다. 어쩌면 세상 어디든 갈 수 있는 전용 비행기를 살지도 모르겠다. 우리 반 상냥한 선생님을 떠올리니 선생님도 되고 싶다. 선생님이 들려주셨던 교과서 밖 세상 이야기가 생각나면서 탐험가가 되고 싶어진다.
두 명의 아이가 등장한다. 어른이 되면 하고 싶은 일에 대해, 때론 ‘될 것’이라고 강하게 주장하는 일에 대해 생각의 줄기를 키워간다. 하지만 생각과 생각 사이에는 논리적 연결성이 없다. 아이의 생각은 갑자기 급 점핑하여 표현된다. 카우보이에서 호랑이 사냥꾼으로, 다시 수의사로 넘어가는 아이의 꿈 표현에 독자는 ‘그저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되고 싶어 하는구나’라고 오해할 수 있다. 실제 그림책 텍스트에는 ‘난 커서 어른이 되면 카우보이가 될 거야.’, ‘그리고 호랑이 사냥꾼도 될 거야.’, ‘어쩌면 수의사가 될지도 몰라.’라고만 쓰여 있다. 카우보이와 호랑이 사냥꾼, 그리고 사냥꾼과 수의사 사이에 있었을 징검다리 사고를 풀어헤치는 건 아이의 상상력을 쫓아가는 독자 상상력의 몫이다.
지금까지 아이들의 꿈이 생각의 줄기를 타고 상상의 가지를 키워나간 것이었다면, 이후의 장면에서는 아이들이 생각하는 어른에 대한 상이 꿈으로 표현된다.
아이들은 호기심을 실행해 볼 수 있는 ‘자유’로운 인간으로서 어른을 꿈꾼다. 뭐가 있는진 모르겠지만 무조건 위로 위로 올라가 보고 싶다. 그리고 가장 깊은 아래로 아래로도 내려가 보고 싶다.
아이들은 뭐든 할 수 있는 ‘전지전능’한 인간으로서 어른을 꿈꾼다. 악을 정복하고 세계를 구원하는 슈퍼히어로가 되고 싶고, 이 세상의 모든 언어를 익히며 모든 곳을 구석구석 여행하고 싶다.
아이들은 온 세상의 주목을 받는 ‘중요한’ 인물로서 어른을 꿈꾼다. 국가를 통치하는 대통령이 되거나 모든 사람의 사랑을 받는 록스타가 되고 싶다.
아이들은 특정 분야에서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는 인간으로서 어른을 꿈꾼다. 축구 챔피언이 되고 싶고, 유명한 예술가가 되고 싶다.
되고 싶은 인물, 하고 싶은 일을 정했으니 이제 어른만 되면 되었다. 그런데 어른은 언제 되는 것일까? 두 아이가 고개를 한껏 치올려 엄마, 아빠에게 묻는다. 그림으로 표현된 아이와 어른은 키와 몸집에서 10배는 차이가 있다. 그 차이를 설명하듯 아직은 어른이 아니라고, 어른이 되려면 시간이 좀 걸린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아이들은 의기소침해지지 않는다. 아직은 아니지만 반드시 어른이 될 것이고, 좀 걸린다는 시간이 내일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오늘 밤 12시에 어른이 되어 있을지도 몰라. 그럼 우리, 밤 12시까지 깨어 있자!’ 아이들의 상상력이 귀여워지는 장면이다. ‘난 내가 어른이 되는 그 순간을 진짜 보고 싶어.’ 아이들의 기대가 순수하게 느껴지는 장면이다. 꼭 마주하겠다는 강인한 의지도 느껴진다. 몇 배는 크게 확대되고, 검정의 일관된 색을 벗어난 짙은 보라색 글을 통해 아이들은 외치고 있다.
마지막 장면은 양면 펼침면으로 그림이 표현되어 있다. 노란색 바탕 위에 한가득 아이들의 꿈이, 실현된 꿈이 그려져 있고, 오른편 하단에 이 꿈을 꾸고 있는 두 아이가 있다. 아이들은 12시까지 깨어 있지 못하고, 어른이 되는 순간을 보지 못하고 잠이 들어 버린 것일까. 잠을 자는 아이들의 얼굴에 미소가 스민 것을 보니, 아마 꿈속에서 어른이 된 자신을 만나고 있는 듯하다. 자고 일어나면 여전히 아이인 자신을 발견하겠지만 아이들은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어제 미처 떠오르지 않았던 더 많은 ‘할 일’과 ‘될 것’을 마저 상상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여길지 모른다.
그림 작가가 분명히 표지에 기재되어 있는데, 아이들이 그린 그림으로 그림책을 만든 것 같다. 어른이 아이처럼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것도 재능일 것이다. 아이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듯 아이의 생각과 그 너머의 상상력까지 아이가 크레파스를 손에 쥐고 그리듯 표현한 그림에 감탄하게 된다. 독자가 아이의 생각 줄기를 상상해 볼 수 있도록 설명을 나열하지 않은 글 또한 탁월하다.
꼬꼬마 시절, 내가 상상하고 기대한 어른이 나는 되어 있는가. 우리 아이들은 그림책 속 아이들처럼 어른에 대해 행복한 기대감을 가지며 꿈을 꾸는가. 독자 또한 그림책을 덮을 때 이 두 가지 물음이 뒤따라오는지, 나의 답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그림책 읽기가 되기 바란다.